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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로망 Sep 08. 2022

욕망의 진화 5 : 이 노래 녹음해두고 싶다.

나의 노래를 녹음해 둔다는 것

그저 악기 하나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로 시작한 욕심은 어느덧 이 노래를 카세트테이프, MD, CD, 혹은 MP3 Player에 녹음해서 남겨두고 싶다는 욕심에 다다르게 됩니다.


처음 자신의 연주를 녹음해서 들어본 경험은 새천년의 어느 즈음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겨우 8비트 기본박을 익히고 겁도 없이 록밴드에 들어가 드럼을 치기 시작했는데, 당시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친구가 소유한 소니 MD플레이어에 마이크를 연결해서 학생의 날 공연 실황을 녹음해주었는데요, 보통 플레이어에 연결된 이어폰에서는 라디오나 기성 음반의 노래만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에 귓가에 울리는 제 자신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전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지금 귓가에 내 연주가 흐르고 있어"


 지금 생각해보면 실수투성이에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형편없는 연주였지만 친구에게 잠시 MD플레이어를 빌려 녹음된 나름 공연 실황을 듣는데, 자꾸 무대 위에서 느꼈던 흥분이 가시질 않아 잠을 못 이루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정작 제 노래를 녹음해 보는 것을 시도해 본 것은 2002년 대학에 들어가서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레코딩이라는 것을 해본 첫 장비 : KORG PXR4


2002년 당시에만 해도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제게 MTR(Multi Track Recorder)의 존재는 무작정 녹음이라는 세계에 입문하는 데에 훌륭한 디딤돌이 되어주었습니다. 요즘이야 워낙 휴대폰의 마이크 성능과 녹음 기능 자체가 좋아져서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작곡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자체 기타/보컬 이펙트를 내장하고 심지어 내장 마이크까지 보유하고 있던 이 녀석이 늘 휴대하고 다니던 아이디어를 스케치해두는 휴대용 메모장/녹음기 역할까지도 담당했습니다.(그 시절은 LG CYON이 꽤나 잘 나가는 휴대폰이었고, 전화에 아주 제한적인 기능들이 추가된 피쳐폰의 시대였으니까요.) 


아무튼 이 장비 하나만 있으면 바로 기타나 마이크를 연결해서 최대 4 트랙까지 멀티트랙 녹음을 할 수 있었으니 당시 악기의 편성이 보컬 / 통기타 / 베이스 / (때로는) 일렉기타 로 비교적 단출했던 원 맨 밴드인 저로서는 이 장비의 기능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조금 더 트랙을 쌓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면서 녹음하고자 하는 트랙이 4 트랙을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DAW 소프트웨어로 넘어가긴 했지만 그 전까진 거진 3년간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이장비를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신나게 녹음을 했던 추억이 담긴 장비입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무작정 지른 것 치고 역대급으로 뽕을 뽑은 장비 중 하나인 것 같네요.


당시 이 장비로 녹음했던 곡들은 보컬이나 연주에 후보정도 불가능했고, 원테이크로 녹음을 해야 했기에 완성도에 있어서 조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렇게 녹음해서 Mixdown 된 MP3 음원에 작사/작곡/장르 정보들을 담은 TAG 정보를 추가하고 그 파일을 MP3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했을 때, "제목 - 아티스트" 정보가 표시되면서 귓가에 나의 작업물이 재생되던 순간의 감동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 물론 시중에 판매되는 음원에 비해 음압도 떨어지고, 아마추어 티가 팍팍 나는 아주 Raw 한 음원이었지만요.


그렇게 MP3 플레이어에, CD 플레이어에, PC의 윈앰프 플레이어에 내 노래가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되고 스피커로, 이어폰으로 노래가 흘러나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은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만 참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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