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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로망 Sep 19. 2022

악보 없이 반주가 가능한 사람들

악보 없이 즉석에서 반주가 가능한 스킬에 관한 이야기

반 충동적으로 입학한 경남 어느 읍에 위치한 기숙사 고등학교는 신기하게도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태어나서 경상도는 물론이고 대구, 부산을 가본 적도 없던 저로서는 강하고 특색 있는 영남 방언을 사용하는 동급생들이 꽤나 신선한 문화충격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반대로 서울깍쟁이 말투를 쓰는 제가 신기하게 보였겠지만요. 아무튼 다양한 지역 출신의 친구들과 기숙사에 모여서 생활하는 경험은 전에는 접하지 못하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부산 출신 친구가 내가 하는 말 끝마다 "맞나?"라고 되묻는 것이 사실의 진위여부를 가리고자 하는 반문이 아닌 추임 세라는 것을 깨달을 즈음, 부산 출신 친구들이 주로 모인 15호실에 놀러 가서 엄청 신기한 친구를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부산의 유서 깊은 모 교회의 목사님 자녀로 추정되는 이 친구는 오랜 시간을 교회에서 보낸 탓인지 절대음감을 소유하고, 못 다루는 악기가 없었던 신기한 녀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친구의 능력 중에 가장 부러웠던 능력 중 하나는 "알고 있는 노래나, 멜로디를 한 번 듣기만 하면 악보 없이도 척척 기타로 반주를 해내는 점"이었습니다. 아니, 누구는 악보가 있는 곡이라도 열심히 코드 운지와 스트로크를 반복 숙달해야 겨우 노래의 형식을 분간할 수 있는 정도의 연주가 가능한데, 마치 주크박스, 혹은 노래방 반주기처럼 신청곡을 말하면 척척 반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그 친구의 스킬은 미스터리의 영역이었습니다.


그의 스킬이 너무나도 탐이 나서, 어떻게 하면 나도 그 스킬을 터득할 수 있는지를 물었지만 역시나 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채 의문뿐인 답변을 듣게 됩니다.


"이 곡 저 곡 연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코드 진행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당시 기타 초보인 제 관점에서는 다장조에서 C 코드 다음에는 F 가 오기도, Dm 가 오기도, G 나 Am 가 오기도 하는 등 경우의 수가 너무나도 많은데 이게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는 것인지, 그저 이 비기를 쉽게 전수해 주지 않으려는 친구의 회피성 답변으로 밖에 안보였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C 키 곡들을 둘러보며 공통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여전히 자연스러운 그 어떤 법칙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습니다. Canon에서는 C 다음에 G 가, 날아라 병아리에서는 C 다음에 Dm 가,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는 C 다음에 F 가, 아주 먼 옛날에서는 C 다음에 Em... 이게 도대체 무슨 법칙이 있다는 건지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더욱 혼란만 가중되었습니다.


무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다시금 용기를 내어 그 친구에게 너의 그 비기를 전수해 달라고 삼고초려하자 갑자기 그 친구는 마지못해 화성학이라는 외계어로 뭐라 뭐라 설명해주었습니다.


"5도에서 1도로 회귀하려는 경향과 4도에서 5도로 전환되는 경우, 여기서 2도는 4도의 대리 화음의 역할을 하며, 2 - 5 - 1로 바뀌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음... 저는 뭐라도 알아듣는 듯한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그 친구의 장황한 외계어를 경청했지만 결국 "이게 다 뭔 소리란 말인가?"라는 의문뿐인 결론을 얻으며 아직은 내가 이 세계를 이해할 때가 아닌가 보다 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갑자기 읍내에 장을 보러 가야겠다며 15호실을 나왔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3년 동안 저는 그 친구가 선사한 그 근사한 스킬을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대충 어림잡아서 "이 코드 다음에는 관례적으로 이런저런 코드들이 정황 상 오는 경우가 잦더라" 정도의 약간의 눈치가 생긴 것이 대학교에 들어가서 3년 차가 되었을 즈음이니 시간 상 6년에 가까운 기간이 제게는 필요했던 셈입니다.


완전하진 않지만 "악보 없이 반주하기"스킬을 본격적으로 터득하기 시작한 것은 이 스킬을 간절히 필요로 하던 환경에 처하면서부터 입니다. 2005년 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스리랑카에 파견되어 2년 남짓한 타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요, 동기 단원들이 주말에 모여 술 한잔을 하게 되면 음주가무의 민족의 피가 흐르는 형님과 누님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옛 노래들을 부르기를 갈망했고 그때에 여지없이 호출되던 반주자는 출국했을 때 기타를 챙겨 온 막내 단원인 저였습니다.


김광석으로 시작해 이상은, 안치환으로 이어지는 기타에 어울릴 법한 포크송들이 신청곡으로 들어오면서 반주자인 저로서는 기억을 더듬거리며 시행착오들을 거치며 이 여흥이 가시지 않도록 반주를 이어가는 훈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코드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코드만 피해 가면 된다. 잘 모르겠으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대중적인 루틴(흐름)으로 가면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술자리에서 반주자의 역할은 적확하고 세련된 코드를 치는 것보다 이 취흥이 깨지지 않도록 분위기만 잘 따라가 줘도 절반 이상은 하는 셈이니까요.


이쯤 되니 반주자에게 상으로 돌아오는 한 잔의 술과 함께 묻는 형님의 "어떻게 악보 없이 이렇게 반주를 할 수 있어?"라는 질문에 저 역시 이렇게 답하게 되더군요.


"뭐랄까 다음에 이런 코드로 가야 할 것 같은 대충의 흐름이 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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