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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로망 Feb 16. 2023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말이 터지기 시작한 아이를 위한 떡볶이와 근현대사

찬돌아 안녕?

오늘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1984년에 태어난 너의 아빠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이야기를 궁금해할 사람은 아마 너 하나가 유일할 거야.(뭐, 네가 동생이 생긴다면야 둘이 될 수도 있지만 그건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이고 흠흠, 이건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자.) 또한 너라는 존재가 있기까지 가장 가까운 역사의 증언자가 이 아빠이기도 하고… 이 이야기는 어쩌면 너라는 존재의 근현대사라고나 할까?

오늘 너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떡볶이에 관한 이야기란다. 갑자기 시작부터 웬 떡볶이 이야기냐며 어리둥절할 수는 있겠지만 학교 앞에서 팔던 떡볶이는 아빠의 유년시절을 설명하는 데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거든.


아빠가 처음으로 들어간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단다) 앞에는 하굣길의 학생들을 유혹하는 불량식품을 파는 포장마차와 노점이 가득했단다. 불량이라는 단어에서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찬돌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아줌마가 학교 앞에서 파는 음식들을 불량식품이라고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기 전에는 주머니에 있는 동전으로 누릴 수 있는 소확행, 그러니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단다.


조금 재미없는 이야기를 더하자면 이 박근혜 아줌마는 아빠가 태어나기 전에 17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통령 자리를 독차지하던 아저씨의 딸이란다. 너의 외할머니는 우리나라를 잘 살게 만들어준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아빠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아주 못된 독재자라고 배웠는데, 찬돌이는 학교에서 이 아줌마, 아저씨들에 대해서 뭐라고 배우게 될지 궁금하구나.


다시 떡볶이로 돌아와서, 당시 떡볶이는 초등학생인 아빠의 최애 음식이었단다. 물론 학교 앞에는 고깔모양으로 말린 신문지 컵에 담아주는 번데기나 고동도 있었지만 이 것들은 당시 가지고 있던 500원 남짓한 돈으로 사 먹기엔 양이 너무 작았거든. 그래서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배가 부른 떡볶이를 더 자주 사 먹곤 했단다.

아빠는 떡볶이를 살 때마다 아주머니에게 매번 "많이 주세요 많이"라고 늘 요구했지만 담아주시는 떡의 개수가 바뀌지는 않았어 다만 마지못해 떡볶이 국물 한국자 정도를 비닐이 씐 연두색 납작한 접시에 더 담아주셨지. 그래서 그 당시 아빠에게 세상의 인심은 떡볶이 국물 한 국자 정도였던 것 같아.


그 국물 한 국자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건 당시 초등학생에게는 500원이 줄 수 있는 무한한 행복이었기 때문이야. 부끄럽지만 아빠는 참으로 격식 없고 추잡스럽게도 혓바닥으로 남은 국물을 모두 핥아 먹었단다. 주위 사람들이 경악하는 눈으로 쳐다볼 때면 "이건 원숭이 권법이야!" 라며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그릇을 감싼 비닐에 묻어있는 국물을 남김없이 빨아먹었지. 너는 그러지 마라. 하긴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넌 풍족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말야.


그렇게 거리에서 500원에 먹을 수 있던 떡볶이 한 접시는 이제 3000원을 넘는 가격에 약간의 품질향상이 있었단다. 이제는 떡볶이와 국물에 모듬 튀김을 버무려주는 한접시에 6000원정도 하는 메뉴를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빠는 여전히 마지막 한조각을 먹고 난 뒤에 남아있는 떡볶이 국물을 볼 때면 지금도 그 어린시절이 생각나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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