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터지기 시작한 아이를 위한 세기말 입시와 근현대사
찬돌아 안녕? 오늘 너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아빠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기 위해 입시를 준비하던 90년대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
아빠가 학생일 때 바라보던 세상은 이분법,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이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은 곳처럼 보였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인문계냐 실업계냐의 두 갈래 길이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문과와 이과라는 두 갈래 길이,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니 정시냐 수시냐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던 것 같아. 요즘같이 대학을 가는 방법이 수백 가지에 이르는 시대를 사는 네가 진학을 할 때 즈음이면 훨씬 더 선택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복잡해지겠지만 아빠가 학생일 때는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만 바라봤던 것 같아.
그 당시에는 이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위험한 일인지 몰랐단다. 얼핏 보면 대상을 검은색과 흰색, 우리 편과 상대편, 선과 악과 같이 구분하면 훨씬 명쾌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지만 세상은 이분법 혹은 사지선다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곳이었기 때문이야.
아빠가 서른 즈음에 다니던 교회에 고등부 교사를 맡으면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피부로 와닿았던 한 가지 사실은 "고등학생의 세상은 문과 / 이과로 구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구나"였어.
함께 하는 친구들과 서로 간단한 소개를 주고받으면서 "너는 문과니 이과니?"라는 나의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지
어떤 친구는 디자인 특성화고에 다니고 있었고
어떤 친구는 홈스쿨링을 하며 검정고시 준비 중이고,
어떤 친구는 EDM음악을 작곡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그나마 그중에 몇몇이 문과나 이과로 진학한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철도대학교에 가서 기차를 운전하고 싶다는 문과생과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과생을 보며
"당최 문과냐 이과냐를 물어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세상의 모든 색을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이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이 세상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세상을 문과 아니면 이과라는 제한된 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바라보는 다양한 직업과 신분은 얼마나 제한적이었을까?
아빠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이해찬이라는 아저씨가 교육부장관이었던 시절이어서 아빠또래에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했던 사람들을 "이해찬 세대"라고 부르곤 했는데, 당시 "수능 없이도 특기만 있으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며 파장을 일으킨 이 아저씨였어. 그 시절 아빠는 이 아저씨를 매우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대학 가는 길은 내신 아니면 수능밖에 없다"라고 굳게 믿던 아빠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깨뜨렸기 때문이었어. 사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학생들을 하나의 시험과 하나의 점수로 줄 세우기를 하던 당시의 입시제도가 비상식적으로 보이지만 말이야.
결국 아빠는 당시 세상이 정해준 문과 아니면 이과라는 두 갈래 길을 정상적으로 걸어가지는 못한 것 같아. 글을 쓰는 것이 좋아 문과를 갔는데 오히려 대학에 들어가 보니 대중매체에 대한 수업보다 C 프로그래밍 / UNIX 수업이 더 재미있었거든. 결국 다른 이과 출신 친구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운 이과 수학을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공부하고 아빠는 지금 일하고 있는 전자회사의 개발자가 되었다.(지금 찬돌이가 들으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아빠는 대학교 들어가서 Sin Cos 함수가 미분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아빠는 찬돌이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색과 색 사이 경계를 지으려 하지 않고 수많은 다양함의 그라데이션(은찬이가 수박 먹다가 흰옷에 수박물이 퍼져나가는 그런 거)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아빠는 어렸을 땐 그러지 못했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