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페로망 Aug 08. 2022

방금 아이가 잠들었다, 맥북을 열고 기타를 잡자

40대 워킹데드(Working Dad)의 고군분투 음악 작업일지

그때가 좋았지

여유 있을 때 실컷 해둬 취업하고 직장 다니기 시작하면 끝이야 - 입사 전 인생 선배曰
싱글일 때 실컷 해둬 결혼하고 같이 살면 다 끝이야 - 앞서 결혼한 인생 선배曰
그래도 둘만 있을 때가 차라리 나아 애 생기잖아? 그럼 정말 끝이야 - 앞서 육아에 입문한 선배曰


삶에서 무언가 취미를 가지는 것은 음주가 허용되는 나이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어려워집니다.

마치 나의 클래스가 학생 > 직장인 > 유부남 > 워킹데드 로 바뀌면서 급격히 높아지는 삶이라는 게임의 난이도는 자연스럽게 "그때가 좋았지"를 되뇌며 기존에 영유하던 취미/부캐를 포기하고 싶게 만듭니다.


특히 작곡과 녹음은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는 연속적인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취미이기 때문에 수시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아이의 동태에 시선과 집중을 할애하면서 노래를 만들거나 녹음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기타를 치면 빌런이 등장한다

출퇴근길에 틈틈이 써놓은 가사에 멜로디를 붙여보려고 방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기타를 치다 보면 어느새 방문을 열고 빌런이 나타납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최근 걷기 시작한 이 빌런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악기와 악기가 내는 소리에 관심이 많아 악기의 존재와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제가 기타를 잡으면 이 친구가 다가와서 매우 격양된 표정으로 기타를 치는데 문제는 문자 그대로 격렬하게 기타를 "친다"는 점입니다. 2012년에 사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는 기타를 이 친구 손에 뒀다간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이내 곡 작업을 포기하게 됩니다.


물론 아이가 악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평소 악기와 장비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두어야 한다는 점은 작업의 동기를 유발하는 면에서 치명적입니다. 아무래도 손이 닿는 곳에 항상 악기가 있고 작업을 위한 맥북 또한 항상 가까이에 있어야 틈날 때 언제든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악기와 장비의 신변보호를 위해 늘 은폐 엄폐를 해야 하다 보니 잠시의 여유가 생겼을 때 당장 손에 잡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가지고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네요.


만약 음악이 본업이었다면 따로 작업실을 구해서 아이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작업을 할 수 있겠지만 싱어송라이터가 부캐인 저로서는 본업과 육아의 책무를 등한시하지 않으며 시간을 짜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부터는 급격히 작업시간이 줄어들어 신곡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곡 작업을 지속하기 위한 육아 이슈에 대한 대책

이미 태어난 아이에게 좀 더 나중에 태어나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작업을 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하루 중 제가 악기를 만질 수 있는 시간은 주요 3대 일과인 수면, 근무, 육아 시간을 제외하면 아이가 잠들고 난 뒤의 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퇴근 후 아예 여유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깨어 있는 한 그 여유는 조각모음 되지 않은 하드디스크 같아서 무언가에 충분히 할애할 분량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육퇴를 하고 나면 아내와 또 하루를 살아 냈다는 자축의 세리머니로 맥주 한잔을 해야 하고 또 그러다 보면 한잔이 두 잔이 되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음악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뭔가 노래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서, 감자칩에 맥주 한잔하는 모습을 곡에 담고 싶었습니다. 노래 제목처럼 인생은 참으로 달콤 쌉싸름하네요.


누구나 힘들었단 시간을 지나
그대와 살아가는 평일과 주말
맛있고 멋있고 듣기 좋은 음악을
가장 먼저 나누고픈 누군가

안주 거리 들고 퇴근하는 길
센서의 반응을 지나 문을 열면
온기와 불빛 뭔가 분주한 소리
수고했어 오늘도 그대도

나 그대와 함께 사네
익숙한 말투로 서로를 부르며
불안했던 날들 지나왔기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걸 알아
나 그대와 함께 사네
그대로 충분한 배경과 음악
별 다를 것 없는 오늘 하루에
마주한 그대와 함께 건배

이슈가 끊임없는 세상에서
별 탈 없는 하루를 사는 건
그걸로 꽤 의미 있는 것 같아
수고했어 오늘도 그대도
마주한 그대와 함께 건배

수고했어 오늘도 그대도

- 조대득밴드 : Honey Bitter Chip(2018) 中

https://youtu.be/kS-NZ1s_qyA

Honey Bitter Chip, 조대득밴드


작가의 이전글 이별의 경험을 노래를 만드는 사람의 심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