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의 99%는 멘탈 싸움이다
1. 영업은는 '왜'가 중요하다
“소심했던 내가 골드만삭스의 말단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오로지 ‘고객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신념 하나로 지금까지 일해 왔다. 내가 최고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_도끼 다이스케
해병대 장교로 전역을 하고 제약회사 세일즈 부서에 입사한 직후의 일이다. 포항에서 같이 근무하던 전 대대장께서 전역한 소대장들 입사 축하 기념으로 만나기로 했다. 그때가 7월 초 이었다. 대대장님은 술을 엄청 잘 마셨다. 나는 분위기를 맞춰 따라서 많이 마셨다. 대학교 생물 심리학 시간에 최준식 교수님께서는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뇌에 작용해 이성적 억제 작용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즉,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말 내가 그랬다. 기억으로는 1차에서 인당 소주 2병 정도 마시고, 2차에서는 인당 맥주 2000CC 하나 정도 마셨다. 어찌 보면 많고 어찌 보면 적지만 짧고 굵게 엄청 마셨다.
지하철 끊기기 전에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산행을 가야 했는데, 같이 차를 타고 가기로 한 차장님이 생각이 나서 내일 차 시간을 확인하고 늦지 않게 깨워 달라고 요청을 하려 전화를 했다. 입사한 지 1주일 만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기도 했거니와 아직 신입사원 이었던 내가 당시 차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깨워 달라는 것은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차장님은 나의 전화에 크게 화가 나셨다. 나는 전화 통화를 하며 술이 깨는 느낌을 받았다. 집에 너무 늦게 들어가서 일찍 일어나려고 바로 씻고 자려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술을 하도 많이 마셔서 샤워를 하다가 욕실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알았다. ‘내가 샤워하다 말고 쓰러져 잤구나!’
눈을 뜨는 순간 시계를 보니 아침 6시가 조금 넘었다. ‘아뿔싸! 7시까지 분당으로 가야 하는 데!!’ 서울 신림동에서 분당까지 택시를 타도 늦을 시간이다. 어떻게 집을 나왔는지도 모르게 등산복을 대충 챙겨서 바로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기사님께 늦었으니 빨리 밟아 달라고 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차는 덜 막혔지만 약속했던 7시보다 늦었다. 차장님에게 또 엄청 혼이 났다. 나는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모두 나의 불찰이었다. 술을 적게 마셨어야 했고, 일찍 일어나 잘 준비해서 스스로 왔어야 했다. 차장님은 신입사원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보고 본부장에게 얘기해 나를 내쫓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1주일 만에 쫓겨날 뻔했다.
세일즈 부서는 수평적인 질서가 아니라 위계질서가 굉장히 심했다. 해병대에서 위계질서가 너무 딱딱한 느낌보다는 합리적으로 일하고 수평한 조직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먼가 사람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안 맞는다는 느낌은 다른 사람들이 잘 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나의 마음의 방향을 정확히 설정해야 했다. 여기 남아 사람들과 잘 맞춰 지내던지 아니면 조직을 떠나던지.
나는 조직에 남아 사람들과 부딪히며 이겨내 보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한 가지 이었다. ‘내가 인간관계가 힘들어 조직을 떠난 다면 나는 어느 조직에 가서도 제대로 생활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힘들지만 이겨내서 좋은 인간관계로 다시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Finding Your Own North Star》의 저자 마사 벡은 ‘내부의 GPS’라고 언급했다. 나와는 절대 안 맞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나, 아주 나쁜 환경의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이건 아니야!’라는 느낌이 들 때의 기분을 묘사하는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전에 다니던 회사는 10번째 면접을 보고 통과했다.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와 생활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한 번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회사에서는 자선 행사 겸 금난새 지휘자를 초청해 다제내성 결핵 예방 캠페인 음악회가 열렸다.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팀원들의 표를 내가 한꺼번에 챙겼다. 선배들이 오면 나누어 주려고 손에 들고 있었다. 선배들이 보이는 순서대로 나누어 주었다. 어느새 마지막으로 온 선배만 주면 돼서 손에 들고 언제 오는지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저기 멀리서 가족들이랑 오는 선배가 보이기에 신나서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표는 없고 빈손 이었다.
분명 손에 들고 있던 표가 어디로 간 것일까?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입장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선배들 가족 표를 내 돈을 주고 얼른 사다 주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당시 연주회를 같이 보러 갔던 사촌 누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나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누나, 이게 하늘이 주시는 사인 같은 걸까요?” 외부 고객들과의 관계는 어려워 말도 잘 못 하였고 회사 내에서는 맨날 실수투성이 이었던 나는 이래저래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우왕좌왕하고 실수하고 정말 혼도 많이 났으니 말이다.
세일즈를 하다 보면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질 때가 생긴다. 특히나 세일즈 조직 내에서는 외부 세일즈를 하다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내부 조직에서 강한 척, 권위를 앞세워 대우를 받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급부의 심리로 영업을 하며 낮아진 자존감을 가정에 들어가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아닌 척하다 보면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본인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해 보이려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낮은 자존감 회복을 위해 술을 마시며 다른 사람에게 비이성적으로 풀거나, 욕심을 부리며 물건이나 음식에 집착하는 경우도 생긴다. 나도 한 때는 잘못된 방법으로 나의 스트레스 에너지를 발산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으로 처음 발령받은 지역에서 세일즈를 하면서 “내가 인천지역의 영업 총괄이다.”라는 오너십을 가지고 일을 했다. ‘나의 세일즈 실적에 대해 내가 책임진다. 그리고 나의 실적과 나는 하나다!’라는 모토 아래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서 일했다. 특히나 경구용 혈당 강하용 신제품 리스팅을 계획하면서는 더욱 주도적으로 해야 했다. 세일즈 영향력이 큰 병원에서부터 기회를 만들고 마케팅 전략에 맞게 타깃 환자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신약을 리스팅 시켰고 가장 탁월한 세일즈 성과를 이루어 냈다. 덕분에 나는 회사에서 다음과 같은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세일즈 리더십 교육 과정 발표 최우수 수상
제품 프레젠테이션 콘테스트 베스트 수상
신제품 조기 리스팅 어워드 수상
세일즈 향상 프로젝트 단독 수상
“마음을 사로잡는 1분 엘리베이터 스피치” 세일즈 팀 사내 강사
세일즈 성취력을 극대화하며 빠른 혁신을 추구했다. M 병원의 경우에도 기존에 없던 인슐린 펜을 코딩시키고 세일즈를 창출했다. 경쟁사의 초속효성펜이 대부분 많이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사 인슐린 펜이 경쟁품보다 환자들이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경쟁사에는 없는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이 자사 제품을 사용할 경우 환자들에게도 이득을 줄 수 있는 장점에 대해서 충분히 설득을 하였다.
병원에서도 자사 신약 인슐린 펜이 출시되었을 때 신약 리스팅 성공 경험이 있다. 빠른 신약 리스팅을 통해 식후 혈당이 높은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고객들을 설득하였다. 제품 설명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적합한 환자 군에게 고객들이 성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나는 2년 6개월 만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고 대리로 조기 승진할 수 있었다. 빠른 승진은 불굴의 의지로 세일즈 성과를 이루어 낸 업무 성취 능력 때문이라 생각한다. 당시 팀장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근 님의 능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빠른 적응력이다. 영근 님은 타고난 리더이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었지만 이러한 말들이 나의 장점을 대변해 준다고 믿고 싶다.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에서 스스로 “세일즈 영업 총괄이다. 모두 책임을 진다.”라는 사명이 있느냐 없느냐는 세일즈 하면서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세일즈를 하는 철학이 흔들리면 어떤 고객과도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안 좋았던 관계도 모든 관계를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는 불굴의 의지가 있는지 자문해 보자. 고객들과 세일즈 결과에 대해서도 훌륭한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 관계를 쌓아 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로 세워야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나를 완성하기 위해 세일즈를 했다.
2. 영업 성공은 이미 내 안에 가지고 있다
“당신 자신을 믿어라. 그러면 그 무엇도 당신을 막지 못할 것이다.”_에밀리 과이
초등학생 3학년 때 처음 세일즈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세일즈를 본능적으로 할 줄 알았나 보다. 초등학생 때는 용두암 앞바다가 나의 놀이터였다. 여름엔 아침 먹고 나가서 바다에 나가 놀고 있으면 어머니가 “점심 먹어라~!” 그랬다. 점심 먹고 또 나가 바다에서 놀고 있으면 “저녁 먹어라~.” 하셨다. 어릴 때부터 나는 바닷가에서 자주 놀고 했기 때문에 여름에는 바닷물 먹은 피부에 썬텐을 해서 엄청 까맣다. 밤에는 사촌 누나들이 눈동자랑 이빨 밖에 안 보인다고 놀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생활하며 많이 하얗게 됐고 외부의 태양을 피해 다녔다. 당시만 해도 바닷가에서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하루는 수경을 끼고 얕은 바다에서 놀고 있는데 병뚜껑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 병뚜껑이 뭉탱이로 지나가기에 수경을 끼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병뚜껑을 팍 움켜쥐었다. 검정 먹물을 물속에서 뿜어 대는 게 아닌가. 문어였다. 물밖으로 꺼낸 문어는 먹물을 뿜어내는 시늉을 하며 오물 짝 오물 짝 거렸다. 신기하게도 물밖에 나온 문어는 물 안에서처럼 위력적으로 먹물을 뿜어 내지 못했다. 게다가 빨판에 강하게 붙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병뚜껑도 쉽게 제거가 되었다.
같이 놀던 동네 형들을 불러 신기해하며 문어를 손에 쥐고 바닷가를 뛰어다녔다. 어느 한 신혼부부가 문어를 보더니 신부가 말했다. “어머 쟤내봐~.” 신랑은 그 문어를 자기한테 팔라고 했다. 나는 “얼마 주실 건데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당시 하루 용돈이 100원 이었다. 그래서 20배인 2000원을 불렀다. 시장 조사 없이 부른 가격이었다. 신랑은 검은 비닐을 가지고 와서는 문어를 담아 갔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나의 물건을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팔았던 기억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세일즈 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김 가공 공장을 제주에서 운영하셨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대학 때까지 했으니 상당히 오래 한 편이다. 소규모 식품 가공업이라 직접 생산부터 품질관리, 경리 및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꼼꼼히 체크하고 직접 돌보셨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아버지가 어떻게 일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고객을 만나러 돌아다니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판매를 꾀 오래 하셨다. CJ의 전신인 제일제당 시절부터 도매 총판을 하시며 직접 영업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업종을 바꿔 김 공장을 직접 운영하셨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판매직에 종사했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사업가적 세일즈 본성과 부지런한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직접 주문을 받고 배달을 나가셨다. 당시 봉고차 뒤에 김 박스를 싣고 아버지를 따라 같이 시장이나 중소마트에 판매를 하러 다녔다. 아버지는 거래처를 여러 군데 가지고 계셨는데 아버지의 영업 방식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여태껏 매일 10시 이전에 주무시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신다. 30년 넘게 매일 아침을 조깅으로 시작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거래처를 돌아다녔다. 거래처에서 반품이 있거나 급하게 물건이 떨어져서 주문이 들어오면 신속하게 가져다주었다.
아버지는 당시 육지에 있는 대기업 김 가공 업체보다 제주 현지에 있는 장점을 살려 거래처에 더 빠르고 맛있는 김을 공급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김으로 가장 유명한 완도에 직접 가서 김 재료를 골라 가공했으니 품질은 단연 좋았다. 수시로 완도를 오가며 김 원료를 선별하고, 밥상에서도 김의 상태를 보려고 머리 위로 김을 들어 빛에 비춰보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거래처를 늘리기 위해 소개를 받았다. 한 거래처를 만족시키고 나서 아버지는 다른 거래처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모임도 많이 다니고 정직하게 약속을 잘 지켰기 때문에 단골 거래처에서 다른 거래처를 소개해 주었다. 거래처들은 점점 늘어갔고 생산량도 늘어났다.
아버지는 경쟁사들과도 상당히 친하게 지냈다. 좁은 제주도 바닥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 봐야 큰 이득이 없음을 서로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지금도 아버지는 당시 경쟁사 김 공장 사장님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나도 세일즈를 하며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고객과 약속을 잘 지키는 신용을 쌓아 고객 만족도를 높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처럼 단골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게 제품에 대한 믿음을 주고 내 스스로가 빠른 고객 응대를 하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공장을 할 시기부터 집에 빚이 있었다. 기계 값으로 수천만 원을 임대비와 공장 설비를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성실함과 신용 덕분에 김 공장은 잘 되었다. 주문량에 따라 생산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주말에도 가족들끼리 추가로 일을 하기도 했다. 평일에는 공장에 아주머니들이 일을 했지만 주말까지 초과 근무를 할 수 없으니 누나들과 내가 부모님의 일을 도왔다. 우리 가족은 주말에도 성실하고 꾸준하게 생산과 판매를 한 덕분에 몇 년 만에 빚을 모두 청산했다. 그리고 김 공장을 초기 투자 때보다 더 큰 액수에 다른 분에게 되팔 수 있었다.
내가 세일즈를 하면서 가끔 아버지에게 힘들 때마다 조언을 구하곤 했다. 세일즈 현장을 경험해 보신 아버지는 내가 좌절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이 너의 뜻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냐?”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해 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욕심을 조금 버리고 순리를 따라가라는 말씀 같았다. 아버지는 가끔 한 두 마디를 통해 큰 깨달음을 주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먼가 혼란스러울 때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 커피와 맛있는 거 먹으면서 편안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다. 몸이 피곤할 때는 자연스럽게 잠이 온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생각을 정리하며 잠을 잘 때는 정말 행복하다. 짧게 자고 일어나도 상당히 기분이 좋아진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내용들이 전전두엽을 자극하면서 상당히 스펙터클한 꿈을 꾸기도 한다. 생각이 정리될 때의 기분은 정말 좋다. 내 몸과 마음을 충분히 충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부지런한 DNA를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근면, 성실, 정직 3가지를 가훈으로 여기셨다. 특별히 이 말을 가훈으로 쓰겠다고 말한 적도 없고, 집에 적어 걸어 놓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몸소 보여주신 모습에서 나는 이 3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이미 부지런하게 생활하고 있고, 일하는 규정과 업무 시간에 맞게 성실하게 임했으며, 고객과 나 자신에게 정직하려고 노력했다.
고객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힘은 이미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나는 내 안의 성공 가능성을 바탕으로 성공을 이뤄냈다. 내 스스로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해 몇 가지를 지속했다. 세일즈를 하면서도 하지 말아야 할 리스트를 작성하고, 과거 실패 트라우마 멈춤 기술을 이용하고, 시간 낭비하는 생각들을 멈추었다. 나 자신과 대화하고, 상품과도 대화를 시도했다. 고객은 나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나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판매 성과로 이어진다. 고객은 제품이나 서비스 이전에 사람을 우선 본다. 고객에게 어필하는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선 자기 지신을 먼저 사랑하자. 세일즈 성공은 외부에 있지 않고 이미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