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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우 Jun 25. 2019

명치유신은 음식혁명이었다.

교토 3박 4일 셋째 날

일본의 절밥 같은 연두부탕... 부실해 보이는 점심을 하고 료안지를 나왔다.      


교토 여행 3박 4일 마지막 저녁이 기다리고 있다. 


교토에 와서 육식(肉食)을 한 기억이 없다. 기껏 일본 라면에 들어있는 돼지고기 한 두 조각이 전부였다.      


일본은 고기가 귀한 나라였다.    이곳의 고기 맛이 궁금하다. 


일본은 1200년 동안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 먹지 않았다기보다 먹지 못한 것이다. 


일본 왕 덴무 천황(天武天皇)이 서기 675년, 살생과 육식을 금하는 칙서를 선포한 것이다.      


그의 불심(佛心)때문이기도 하지만, 농경사회의 생산기반인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후손들은 이 칙서를 충실히 따랐다.      


일본의 주식(主食)이 쌀과 채소였고, 충분한 수산자원이 있어 생선과 해산물로 단백질 섭취가 가능하니, 식생활에 큰 영향은 없었다. 


다만 수렵이 생업인 북해도 아이누족과 돼지고기를 즐기는 오키나와 원주민은 영향권 밖에 있었다.          

왼쪽 : 덴무 천황(天武天皇). 오른 쪽 : 명치 천황(明治天皇)

그러나 개국과 더불어 외국인이 몰려오면서 육식금지가 난관에 봉착했다. 명치유신(明治維新)이 시작한 때다. 


외국인들을 만난 명치천황(明治天皇)은 두 번 놀란다.      


거대한 체구의 서양인들을 보고 놀랐고, 그들의 주식(主食)이 고기인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일본인이 외소(矮小)한 이유가 식생활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차이를 극복하지 않고는 일본의 근대화가 어렵다고 생각한 명치천황(明治天皇).     


1872년 대신들을 불러 서양식 만찬을 열며,
1,200년간 지켜 왔던 육식금지를 거두고 백성들에게 고기를 먹게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식습관을 바꾸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정부는 육식 장려를 적극 추진 하지만 백성들은 머뭇거렸다.      


육식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 조리법과 먹는 법조차 몰랐다.       


그러던 중, 누군가에 의해 가장 일본적인 조리방식이 탄생한다. 


쇠고기를 냄비(나베)에 넣고 조린 규나베(牛鍋)다. 쇠고기 전골이다.      


이때부터 일본인은 고기 맛을 알게 됐고 규나베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명치유신은 일본의 음식혁명이었다.

료안지를 나와 59번 버스를 탔다. 두 정거장 가면 금각사(金閣寺)다. 


버스 안은 수학여행 온 학생들과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들은 모두 금각사로 가는 것 같다. 


지금 이 시각 금각사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무리에 끼어 관광을 하는 것도 즐거움 일지 모르겠지만 피로감이 따른다.  


나는 금각사를 포기하고 리츠메이칸대학(立命館大学)에서 내렸다.  50번 버스로 환승, 교토역으로 돌아왔다.


오후 3시. 다시 교토역 D1 버스 탑승장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기오미스미치(清水道)에서 내렸다.   


골목 사이로 법관사(法觀寺) 오층탑(八坂の塔)이 보인다. 


교토 히가시야마(東山區)의 랜드마크. 주변의 낮은 건물들 사이에 46미터의 목조 오층탑이 솟아있어 쉽게 눈에  뜨인다.      


석양 속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다. 


야간에는 아름다운 불빛으로 멋을 부리기도 한다.


대낮인 이 시각, 강한 햇빛으로 밋밋한 모습이지만,  뒤편 역광의 실루엣은 그림이 좀 다르다.  

오층탑 앞을 지나 돌아가면 니넨자카(二寧坂) 산네이자카(産寧坂) 갈림길이 나온다. 


산네이자카(産寧坂)는 키오 미스 데라(淸水寺)로 올라가는 길이고 니넨자카(二寧坂)는 코 다이지(高台寺)와 야사카신사(八坂神社)로 내려가는 길이다. 


니넨자카는 전통가옥 기념품 상가들이 늘어선 골목길,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스타벅스 커피점도 보인다. 

코 다이지(高台寺) 앞을 지나 야사카신사(八坂神社)에 들어섰다.


야사카신사(八坂神社)


매년 설날 정초가 되면 참배객이 100만 명이 몰리는 곳이다. 


이곳에 모시는 신의 정체는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으나 신년 초에 참배객이 몰리는 것을 보면 새해 복(福)을 주는 복신(福神)인 모양이다.      


야사카신사(八坂神社)의 원래 이름은 기온신사(祇園神社)였다.     


인도 석가모니 고향에 있는 기원정사(祇園精舍)의 신(神) 고즈텐노(牛頭天王)가 일본으로 넘어와 기온신사(祇園神社)가 만들어진다. 

고즈텐노(牛頭天王)와 야사카신사(八坂神社)

불교(佛敎)와 신도(神道)가 섞인 신흥종교(新興宗敎)가 탄생한 것이다. 이를 신불습합(神仏習合)이라 했다. 


중세 이후 이런 신불습합(神仏習合)이 급격히 늘어난다. 


근세에 이르러 명치천황(明治天皇)은 신불분리령(神仏分離令)을 내려, 신불습합(神仏習合)을 금지한다. 그리고 신사에서 불교의 흔적을 없애려 했다. 신도(神道)에 다른 종교가 침투하는 것은 일본 전통 유지에 심각한 문제라 생각 한 모양이다.   


이때 기온신사(祇園神社)는 이름을 야사카신사(八坂神社)로 바꾼다.  신사의 뒷산 야사카산(八坂山) 이름을 따왔다. 


기온(祇園)


야사카신사(八坂神社) 서쪽 문을 나오자 교토의 번화가 기온(祇園) 거리가 쭉 뻗어있다. 신사(祇園神社)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동네 이름은 그대로 남아 기온(祇園)이다. 


상가, 식당, 극장이 즐비하고, 마치야(町屋)가 잘 보존된 동네다.

     

기온(祇園)은 신사 참배객을 수용하기 위해 전국시대(戰國時代) 건설된 유흥가였다. 현재는 일본에서 게이샤로 유명한 동네가 되었다. 기온의 게이샤를 게이코(芸子)라고 부른다. 

     

하나미 코지(花見小路)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골목이다. 이곳에서 게이코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오른 게이코. 그리고 게이코를 보기위해 몰려든 관광객들.

기온 거리를 지나 가모가와(鴨川) 강을 건너는 시조 대교(四条大橋) 위에 오르니 강변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머리 위로 폰토 조(先斗町) 주점 발코니들이 보인다.

   

가모가와 강은 교토 남북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폰토 조(先斗町)는 유명 주점 골목으로 가모가와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석양이 아름답고, 시원한 가모가와를 바라보는 주점들의 술맛. 안주가 필요 없을 것 같다. 


야끼니꾸(燒肉) 전문점 규각(牛角)


가모가와(鴨川)와 폰토조(先斗町)를 뒤로하고 폰토조 다음 골목에 있는 고깃집으로 왔다. 


규각(牛角)이라는 체인점, 牛角 京都四条河原町店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교토 여행의 마지막 저녁식사로 야끼니꾸를 선택했다.   

    

깔끔한 일본인들은 연기가 나는 야끼니꾸(燒肉)는 먹지 않았다. 옷에 냄새가 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연기를 흡입하는 불판이 나오면서 일본인들도 즐겨먹기 시작하는데, 야끼니꾸(燒肉)가 쇠고기 요리 중 최고의 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당은 한국의 고깃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파는 쇠고기는 일본산 와규(和牛)다.

牛角 京都四条河原町店

갈비세트 200g, 1,380엔이다. 뼈가 포함된 것이 아닌가 했는데 접시에는 순 살만 200g이 담아 나온다. 우선 저렴한 가격에 놀랬다.      


갈빗살을 부위와 칼질 방법에 따라 이름표가 붙어 나온다. 갈비를 이렇게 여러 종류로 분류할 줄은 몰랐다. 우리 입맛으로는 잘 구별이 되지 않지만, 전문가는 구별이 가능 한지 모르겠다.   

흔히 볼 수 있는 불판에 구워 먹는다. 연기나 냄새는 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갈비세트 400g과 냉면을 먹고 나왔다.      


해가 저문 교토의 시조거리(四條). 가모가와(鴨川) 강 건너에 화려한 불빛이 보인다. 

京都四條 南座

극장(京都四條 南座)이다. 기온에는 여러 개의 극장이 있어 축제가 있을 때마다 공연을 한다.  


오늘도 피곤한 하루였다. 


24,000보, 13Km를 걸었다. 


자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내일 오전 11시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오후 1시 리무진 버스에 탑승, 교토를 뒤로하고 간사이공항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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