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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록원 Jun 08. 2019

어느 집사의 귀여운 상상

도서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 리뷰


고양이를 기르는 집사들이라면 도대체 고양이들이 무슨 생각을 아는지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일명 '집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초보 집사인 나도 우리 집 냐옹이 '리온이'를 보며 매번 고양이 번역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나에게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이란 책은 제목부터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다른 고양이들을 위해 고양이가 직접 쓴 책이라니..! 물론 설정이겠지만, (나의 동심은 그렇게 순진하진 않다.) 어디 한번 뭐라고 하는지 볼까?!라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책은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에 아주 충실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길냥이 출신으로 집사를 '간택'한 이 책의 저자(고양이)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고양이들에게 조언을 한다. 어떻게 집사를 선택하고, 어떻게 인간들을 접수하고, 집을 장악할지 말이다. 한결같이 '독립적이고 시니컬한' 태도로 인간과 인간과의 생활에 대해 말한다. 그렇다. 그녀에게 인간들은 정말 '멍청'하다.


그런 멍청한 인간들과 어떻게 생활하는지 '팁'을 알려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지만, (그렇다고 하자) 사실 이 책의 매력은 "어떻게 인간을 구워삶는지"보다, 고양이의 눈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과 고양이들의 행동에 있다.


일단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 자발적으로 고양이를 받들며 고양이를 중심으로 모든 걸 생각하게 되는 집사들의 모습이 그대로 나와있고, 사람들이 없을 때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들의 비밀 이야기 '토이스토리'가 재미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마냥 귀엽고 미스터리 했던 고양이들의 행동이 사실은 다 계산적인 행동이라는 설정은 오히려 고양이의 귀여움을 극대화시킨다. "진짜 고양이가 이렇다면"이라고 상상하면서 각자 모시는 고양이를 생각하며 피식피식 웃게 된다.


특히 '태도와 자세' 파트에선 인간을 접수하기 위한 귀여운 자세 팁이라는 명목으로 고양이들이 하는 귀여운 행동들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어찌 귀엽지 않을 수가..!


"고양이는 쉬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중략- 효과적인 자세로는 앞발 하나를 코 위에 대고 자거나, 앞발을 모두 눈 위에 올리고 자는 것이다. 또 다른 추천 자세는 앞발 하나를 머리에 베고 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선 실제로 이렇게 자는 우리 집 리온이의 모습과, 그 모습을 열정적으로 찍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TML로 리온이는 옆으로 누워서 팔을 얼굴 앞에 접고 자주 잡니다.)


갑분우리고양이자랑


무겁지 않은 책이긴 하나, 책 중간중간 씁쓸한 부분도 많이 있다. 인간을 멍청하다고 하긴 하나, 잘못하면 당장 다시 쫓겨날지도 모르니 이것만은 주의하자며 충고하는 부분이 여러 번 나온다. (말만 깔보지, 결국 작고 약한 존재인 고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언제나 '인간 중심으로' 생각한다며 이야기하는 부분도 뜨끔한다.






아쉬운 점은 현실 고증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아 물론 고양이의 행동이나 고양이와 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에 대해선 집사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실제 상황이 그대로 묘사되지만, 중간중간 이 책의 저자(고양이)가 말하는 태도는 누가 봐도 인간 중심적이다.


웬만하면 이것만은 어기지 말라는 '주의사항'은 (병원과 의사를 무서워하지 말 것. 카페트에 토하지 말 것.) 너무나 인간적이고, 저자(고양이)의 성격도 집사들이 고양이를 받드는 자신들을 자조적으로 농담할 때 등장하는 "독립적+시니컬+사실은 다 알고 있음"이라는 고양이 캐릭터 설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게다가 사실 이 전형적인 고양이 이미지는 실제 고양이들과 좀 다르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고양이들이 얼마나 외로움을 많이 타고, 그걸 자신들만의 표현방법으로 표현하고, 집사에게 의존하는지 말이다. (특히 집고양이는 더 심하다.)



저자 고양이의 캐릭터는 둘째 치더라도 내용 자체가 사실과 다른 경우도 꽤 있었다. 예를 들면 고양이가 먹어선 안 되는 음식을 고양이라면 먹고 싶은 음식이라고 표현하거나, 떠돌이 생활을 자유롭다고 묘사하는 부분 등이다. 고양이 음식으로 몇 번 등장하는 (사람들이 먹는) '우유'는 실제로 고양이가 먹으면 탈이 난다. 그래서 아예 고양이 전용 우유가 따로 있다. 또 계속 집에서 살았던 집고양이가 (야생 경험 X) 길로 나가게 되면 생존경쟁에서 밀려 목숨을 잃기 쉬워 '자유로운' 길 생활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고양이의 눈으로 보는 인간의 모습이 너무 단편적이고 일반화되어있다. 인간 중에서도 주로 부부 사이인 '인간 남자'와 '인간 여자'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남자'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이고 소리만 치는 멍청한 일인자로 묘사되고, '여자'는 지배받고 있지만 남자를 이용하는 (고양이와 비슷한) 영민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실제 대사도 자주 등장하는데, '인간 남자'의 대사는 대부분 소리치고 반말에 명령조이고, '인간 여자'의 대사는 대부분 그 명령을 따르며 존댓말이다. 이것 말고도 책에는 중간중간 성별 간의 서열관계가 자주 등장한다. 미디어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편견 중 하나인 '고양이를 기르는 노처녀'에 대해 묘사하는 구간도 등장한다. 맙소사.


"마지막으로 독립심도 없고, 자긍심마저 빼앗긴 어느 슬픈 고양이의 이야기로 이 장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자식 없는 어느 외로운 인간 여자의 집에 살면서 자식 대용물로 만족하며 지내던 고양이가 있었다."


이 책의 실제 출간 연도가 1964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고양이를 기르기 위한 참고서적같이 도움되는 정보가 가득한 책이 아니라, 고양이를 사랑하는 어느 집사의 귀엽고 재밌는 상상이 담긴 책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읽는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기왕이면 집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현재 자신들이 모시는 고양이를 상상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writer 심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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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직접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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