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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록원 Nov 20. 2019

사람냄새나는 잡지들


나는 불과 1년 전까지 잡지에 대한 아주 피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잡지-매거진 하면 떠오르는 건 직접 구독하지 않아도 이름을 대면 다들 아는 유명 패션잡지였다. 한마디로 '매거진'하면 '패션'이 떠올랐고, 연예인들의 멋진 화보가 떠올랐고, '유행'이란 두루뭉술한 단어가 떠올랐다.


옷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유행의 선두에 앞장서고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진 않았기에, 나에게 잡지는 딱 그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다. 어쩌다 들춰보긴 하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는.


그러던 와중에 디자인 매거진 CA라는 잡지를 읽게 되었다. (뒤에서 소개하겠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신세계였다. 첫 번째로 '패션잡지'와 '잡지'를 동일시하던 나에게 새로운 주제의 (디자인이라는 주제의) 잡지라는 사실은 신선함을 주었고, 두 번째론 페이지마다 꽉꽉 담겨있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양질의 정보와 인사이트였다.


그 순간부터 '잡지-매거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개념이 재구성되었다. 새로운 잡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잡지의 매력이 뭘까. 개인적으로 양질의 정보가 담긴 콘텐츠를 얻을 수 있는 최적의 매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패션'잡지 역시,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 호를 볼 때마다 두근대며 이번 시즌의 패션 동향이 어떤지, 어떤 아이템들이 새로 나왔는지 눈과 머리에 새기며 눈여겨볼 것이다.


뭣보다 잡지를 선택하는 과정 자체는 내가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관심 있는 주제의 양질의 정보라니 얼마나 좋은가. 계속 콕 집어 '양질의' 정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정보 범람의 시대에서 내가 찾는 정보 그것도 좋은 정보를 찾기가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보급화되면서 다양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인터넷의 단점 역시 그것이다. 너무 정보가 많아, 내가 찾고 싶은 정보를 발견하기 힘들다. 어떤 정보는 가짜고, 어떤 건 너무 얕고, 어떤 건 이거다! 싶었지만 훼이크였던 경우가 부지기수. 얼마 전 읽은 『독서 주방』이란 책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과 같다. (중략) 인터넷이 일상화된 정보화 시대에 들어왔지만 오히려 나는 이전보다 훨씬 무지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손에 뇌가 들려 있는 꼴이었다. (중략) 그러니 만약 요리사가 되거나, 요리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부디 요리를 인터넷으로 배우지 말길 바란다. 많긴 한데 뭐가 더 중요하고, 뭐가 우선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책부터 먼저 손에 잡아야 한다. 그때 인터넷은 책을 찾는 최적의 도구다.


그 '책'중에서도 더 읽기 쉽고 재미있는 글과 콘텐츠가 담겨있는 책이 바로 잡지다. 유익하거나 흥미로운 정보가 담겨있으면서 또 재밌다. 여기서 잡지의 또 다른 매력이 등장한다. 잡지는 (책이라는 형태로 출판되는) '글'과 '이미지'라는 요소를 이용한 다양한 기획의 콘텐츠를 살펴볼 수 있다. 한 명의 저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고, 콘텐츠를 만들고, 그걸 정돈하고 다듬는다.


특히 최근에는 독립출판'이란 분야의 관심이 커짐과 동시에, 흥미로운 독립매거진이 다수 등장했다. 기존의 틀과 형식에서 벗어나 있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잡지들이 등장했고, 독립매거진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좀 더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시선에 의한 콘텐츠들이 담겨있다.


이 잡지들에게서 최근 대두되는 키워드는, '사람'과 '삶'이다. 사회보단 개인, 화려함보단 소소함, 완벽한 커리어보단 누구나 공감할만한 살아가는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춘 잡지들이 많아졌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 꼭 하나씩 있는 잡지인 (거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되는 것 같기도) '킨포크' 잡지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미 독립매거진이라기엔 세계적으로 커져버렸지만, 킨포크 잡지 역시 소소한 일상에 초점을 맞춘 사람 냄새나는 잡지 중 하나다. 사회가 요구하는 틀보다도 '나'의 행복과 삶에 집중하고자 하는 문화가 반영되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이런 사람 냄새나는 잡지들은 사랑받고 있다.


킨포크(KINFOLK)는 소박한 모임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커뮤니티다. 그들은 우리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화려한 파티나 1년에 한 번 열리는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친구들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음식을 나누고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 삶이 얼마나 충만해지는지 잘 알고 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여유를 즐기는 그들만의 방식을 알리고자 잡지를 출간하게 되었다. 《킨포크》에 실린 글과 사진들에는 일상의 기쁨이란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라는 그들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킨포크》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전시장인 동시에 가족, 이웃, 친구, 연인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정신이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잡지라는 매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끽해야 몇 가지 비율의 몇 가지 크기가 전부인 핸드폰과 노트북 화면이 아닌 손에 만져지는 다양한 크기의 종이에, 종이를 넘겨가며 읽는 방식을 고려한 다채로운 편집 디자인과 언제든지 기억하고 싶은 글귀를 직접 펼쳐 확인할 수 있는 잡지의 아날로그적인 면모를 좋아한다.


하나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도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지만 책에는 그들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 것에 비해, 잡지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으며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도 좋다. 그들의 취향과 시선이 짙게 배어있는 글들도 좋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나보다 더 깊이 덕질하고 있는 사람의 축적된 지식과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좋다.


내 취향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파하는 걸 행복해하는 1인으로써, 내가 찾은 흥미로운 잡지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이 잡지들은 참신하고 새롭다. 이미 이 잡지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아직 모르고 있을 분들에게 - 나처럼 피상적인 이미지로 잡지를 알고 있는 분들에게 새로운 발견의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디자인 매거진 CA


처음 잡지의 매력을 알게 해 준 잡지.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잡지를 싫어할 리가 없다. 활동 중인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인터뷰가 담겨있음은 물론이고, 작업 과정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수많은 디자인 예시가 가득하다. 잡지에 모아놓은 다양한 디자인 예시만으로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생각한다. 더불어 디자인 트렌드와 디자인에 관한 깊이 있는 생각이 담겨있는 글들도 많아 읽는 내내 감탄사를 내뱉었던 잡지.




뉴필로소퍼


철학잡지다. 그런데 "멀지 않은" 철학잡지. 내가 철학과를 나와서 더 반가웠던 잡지. 철학이 너무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철학과를 나온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철학의 긴 역사와 방대한 지식만큼, 학부시절 배웠던 철학은 가깝다기보단 저 멀리에서부터 시작되는 무언가에 가까웠다. 분명 삶에 도움이 되고, 너무 좋은 지식과 생각도 많았지만 그 시작은 항상 저 멀리에 있었다.


'뉴필로 소퍼'는 "일상을 철학하다"라는 문장을 표지부터 적어놓았다. 기존의 딱딱하고 어려운 철학을 쉽게 그리고 가깝게 느끼도록 노력한 흔적이 잡지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저 멀리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 진짜 일상에서 시작한다. 과거의 철학자가 아닌 동시대의 생존해있는 철학자들의 다양한 칼럼을 읽을 수도 있고, 평상시에 가끔 떠오르지만 그리 깊게 붙잡고 있지 않은 삶과 세상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고민과 지식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시간'에 대한 다양한 사고라든지.) 일명 '생각 덕후' 그리고 지식에 대한 갈증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Favorite


최근에 알게 된 잡지다. '좋아하는 일을 의미 있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잡지 소개 문구에 걸맞게, 잡지는 '인터뷰' 형식의 글과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콘텐츠 구성 자체는 (인터뷰 형식) 단순한 편이지만, 단순한 만큼 잡지에 소개되는 사람의 생각과 삶을 더 잘 담아냈다. 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개인 혹은 소규모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담겨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들인 만큼 인터뷰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바, 개성, 취향 등이 드러나는 점이 아주 매력적! 진짜 사람 냄새나는 잡지다.




브로드컬리


로컬 숍 연구잡지라는 주제에 아주 충실한 잡지. 실제 자영업이란 주제에 대한 생각들이 알차게 담겨있다. 위에서 소개한 favorite 잡지와 같이 인터뷰 형식의 구성이라, 잡지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생관, 경영 마인드 등을 좀 더 가깝게 그리고 공감하며 접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이라면, 그리고 자영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실 자영업에 관심이 없더라도 자영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통 '자신의 일'을 하려 하는 마음이 있다는 점에서, '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많은 이들에게 재밌게 읽힐 듯하다.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울 듯. 가게란 것이 무언가를 파는 것을 생업으로 한다는 점에서, 마케팅 전략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출 법도 한데, 이 잡지는 한결같이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역시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긴 사람 냄새나는 잡지라는 게 큰 매력.







writer 심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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