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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Nov 23. 2020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지 않으려면

과학에 대한 참여와 책임


 

 19세기에 출간된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기술로 탄생한 존재—괴물—이 손쉽게 인간을 해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보내오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괴물이 아니다. 인간에게 해를 가한 괴물의 이면에는 과학자의 섬뜩한 욕망과 피조물에 대한 방기가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모습의 존재와 마주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로부터 그리 쉽게 도망치지 않았다면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소설 속에서 괴물은 인간처럼 사고하지만, 차마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든 외형을 가진 채 태어났다. 즉, 괴물은 잡종적 존재였다. 괴물은 은유적으로 과학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비인간들을 모두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인간은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더욱 복잡하고 두려운 존재로서 인간에게 다가온다. 역사를 돌아보면 과학자가 이러한 잡종적 존재에 대해 최대한으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결말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과학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들어낸 예상치 못한 실험 결과에 후회나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요구된다. 그들 역시 잡종적 존재의 모든 것을 알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그 존재의 최초의 모습을 가장 잘 알 테니까 말이다. 실험에 참여한 이들이 존재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순간 남은 사람들끼리 문제를 해결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역사 속의 과학자들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얼마나 닮아 있을까? 놀랍게도 우리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보다 훨씬 섬뜩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과학이란 이름 뒤에 숨어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비윤리적인 네트워크들을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가스를 개발한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 2차 세계대전 시기 인체 실험을 서슴지 않은 731부대 책임자 이시이 시로, 맹목적으로 우생학을 신봉하며 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빼앗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내과의사 요제프 멩겔레, 명확한 응용 목적 없이 머리가 두 개 달린 개를 만든 러시아 의사 블라디미르 데미호프, 미국 터스키기에서 흑인들을 속여 매독균을 주입한 의사들까지. 이들은 자신이 자행한 실험의 결과에 공포심을 느끼고 도망치기는커녕 더욱 적극적으로 비윤리적인 행위에 몰입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과 달리 비윤리적인 의도로 똘똘 뭉쳐 있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자신이 참여해서 개발한 잡종적 네트워크가 나아가는 방향에 적절한 후속 조치를 취하지도 않은 경우 역시 찾아볼 수 있다. 폰 노이만이나 파인먼처럼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자기 눈 앞의 ‘과학적’ 문제 해결에만 집중한 사람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나 나노 기술, 원자력 기술 등의 개발에 참여했으나 이 기술이 야기할 생명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지는 않은 이들이 그러하다. 



 반면, 자신이 관여한 잡종적 네트워크에 책임감을 갖고 최대한 개입하고자 노력한 이들도 있다. 영국 과학자 조지프 로트블랫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중,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을 견제할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연구가 계속되는 상황에 윤리적 책임을 느끼고 참여를 중단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원자무기를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원폭 반대 과학자 조직인 퍼그워시 회의의 창립멤버가 되었으며, 이후 회의의 활동은 핵무기 확산 금지조약 체결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원폭 개발 연구 소식을 들은 직후, 아인슈타인과 레오 실라르드는 미국이 원자탄을 개발이라는 맞대응을 통해 독일을 견제해야 한다며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이후 원자 무기 개발 연구의 방향을 지켜보며 반핵 운동에 뛰어들었다. 실라르드는 과학자들을 조직하여 일본에 원폭을 사용하지 말자는 내용의 편지를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 어디에서도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비윤리적인 실험을 주도적으로 자행한 과학자들에게는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할 테다. 그러나 과학자 개인은 비윤리적 의도를 갖지 않았던 사례들은 어떨까? 부분적으로 관여한 실험이 종국에 야기한 결과에서, 대체 얼마만큼을 과학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가는 네트워크를 과학자들은 어떻게 쫓아가야 했을까? 원자폭탄의 사례로 돌아간다면, 원자폭탄 투하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E=mc2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이나 임계질량을 계산해낸 과학자들이 모두 일본의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책임을 갖는가? 



           칸트에 따르면 특정 네트워크의 확장은 인간만의 자유의지의 결과가 아니므로, 그에 대해 책임질 필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레비나스에 따르면 책임의 원천은 타인의 상황에 대한 배려이기에, 특정 네트워크의 확장으로 인한 타인의 고통을 막기 위해 그 네트워크와 관계된 모든 이가 최대한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정 인물이 져야 할 책임의 '경계'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은 것이다. 그러나 실라르드가 과학자들을 조직하여 발송한 편지가 미 당국을 설득하지 못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과학자들의 연대만으로는 과학기술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거나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때때로 사려 깊은 과학도 절박한 과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 사회과학자, 운동가, 언론 등, 대항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양심을 실천으로 옮길 때에야 과학자로서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완성될 수 있다. 자신의 실험이 야기할 비윤리적 결과를 예측하고 혼자만 연구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지속적인 성찰이 가능한 조직 문화나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실라르드가 소속되었던 시카고 연구소는 핵폭탄 개발의 중심지 중 하나였으나 로스앨러모스에 비해 바쁘고 급박한 분위기가 덜했고 일상적인 연구가 주로 이뤄졌다. 이러한 실험 환경이 시카고 연구소에서 과학자들의 반핵운동을 촉발한 프랑크 보고서의 탄생이 가능했던 이유이지 않을까? 그곳에는 ‘성찰을 위한 여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의문은, 실험 환경에 성찰적 분위기가 전제되었다면 의도적으로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른 과학자들 또한 섬뜩한 연구를 자행하지 않았을지에 관한 부분이다. 만약 양심이나 도덕성이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면, 그리고 그들이 그저 도덕성이 크게 결여된 인물이었다면 우리는 앞으로 과학자들의 양성에 있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혹은 양심과 도덕성 역시 예비 과학자들에 대한 교육적 개입—STS에의 노출 등—을 통해 길러낼 수 있는 특성인 것일까?




*<과학기술학의 이해> 수업 제출용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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