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인간 행동 지침
‘멸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매머드나 공룡의 멸종, 운석과 빙하기 등의 이야기는 현재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와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심지어 언론을 통해 몇몇 희귀종의 멸종 소식을 들어도 ‘나의 일’로 와닿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데서 그칠지도 모르겠다. 이때, 현재 여섯 번째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면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원인이 지구 외부로부터의 힘이나 지구 고유의 패턴이 아닌, 인류에게 있다면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쥐라기나 백악기는 아마 누구에게나 익숙한 표현일 테다. ‘기(Period)’는 지질학적으로 구분이 명확한 사건, 즉, 생물 형태의 변화와 지각 변동 등이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지층 형성 이후 지구의 역사를 나눌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기’는 필요에 따라 ‘세(Epoch)’로 구분된다. 그리고 우리는 1만 300년 전 시작된 신생대 제4기의 홀로세, 혹은 충적세에 살고 있다. 이에 2000년 폴 크뤼천은 인류세 개념을 언급한다. 인류가 과거 어느 시점부터 지구 생태계를 완전히 달리 만들어버렸고, 이에 홀로세와는 다른 독립된 지질 시기를 명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지질학적 개념을 도입해도 되는지에 관해서는 개념이 제시된 당시부터 논박이 끊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도 인류가 지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에는 동의했지만, 지질학적으로도 확실히 변화가 생기고 있는지 여부에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EBS 다큐 프라임에서 다루었듯, 우리가 모든 닭들을 핑크색으로 칠할 경우 이후 지적 생명체가 와서 지구를 살핀다면 분명 핑크색 지질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부분, 이미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플라스틱, 콘크리트, 알루미늄 등의 ‘기술 화석’이 퇴적층에 쌓이기 시작했다는 부분을 접한 뒤 지질학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인류세라는 개념의 정당성에 설득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인류세는 아주 최근에야 시작된 것일까? Steffen et al.(2011)은 인류세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전부터 Vernadsky, Chardin, Roy, James Lovelock 등의 학자들이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포착하기 위한 개념적 틀을 제시해 왔음을 밝힌다. 호모 에렉투스 당시부터 인류는 관찰과 시행착오, 불, 언어와 도구를 통해 여타 종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축적하고 확장해왔고, 자신의 의도대로 환경을 조작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이에 인류세의 시작점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거대 포유류가 대거 멸종한 마지막 빙하기나 신석기 혁명을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언급하지만, 여러 인과관계를 따져봤을 때 이러한 가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에 Steffen et al.(2011)은 석탄 사용량의 폭발적 증가를 동반한 산업혁명 시기, 즉, AD 1800년을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 사람들이 가장 체감하기 쉬울 듯한 인류세의 시작점은 아마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1945년일 테다. The Great Acceleration으로 대변되는 1945년에서 2000년 이후에 이르는 시기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자유주의 신조 하에 세계는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으로 통합되었으며, 인구수와 소비의 빠른 증가는 전례 없는 에너지 투입을 요구했다. 전쟁을 통해 급속하게 발전한 과학기술은 가용 에너지를 극대화하는데 쓰였고, 여러 온실가스의 농도와 지구의 기온은 이 시기 동안 급격하게 증가했다.
한동안은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경제 발전에 목맨 인류는 지구의 미세한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인류가 잠시 두 눈과 두 귀를 막은 사이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는 오존층의 파괴로 이어졌고, 빙하는 녹아내리기 시작했으며, 해수면은 빠르게 상승했다. 모두가 체감할 수 있었던 산성비나 미세먼지 문제도 인류를 놀라게 만들었다. 생태계에 대한 인류의 안일하고 파괴적인 접근이 다시 인류에게 칼을 겨누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가 지구 생태계의 변화로 인한 위험을 인식한 이래, 우리는 어떤 접근법을 취해왔는가? Steffen et al.(2011)에 의해 인류세의 세 번째 단계로 구분되는, 인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경각심을 갖게 된 2001년 이후, 각국과 전문가들은 주로 문제를 단순한 인과관계에 의한 것으로 분리해서 바라보고 공학적으로 해결하려는 접근법을 취해왔다. 대표적으로는 성층권에 인공적으로 에어로졸을 추가하여 기온을 낮추려는 접근이 있다. 그러나 사용된 에어로졸 중 하나인 황 입자의 경우, 인체와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오염물질로도 작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인간의 기존 문제 파악 방식과 기술만으로는 미처 포섭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Rockstrom(2009) 등은 지구 문제 해결을 위해 지구위험한계선(Planetary Boundary) 개념을 제시했다. 이들은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단순한 일대일 대응의 원인-결과 접근으로 바라보지 않고, 지구 자체를 하나의 통합된 복잡계로 이해한다. 또한, 생명체가 지구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9개의 하위 시스템이 인간의 개발 등에 의해 시스템 유지를 위한 역치 값을 침범당하지 않고 안전 범위 한계선 내에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이에 이들은 파리 기후 협약의 골자인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지구 기온 상승폭 2도 이내 유지’에 의문을 제시한다. 각국이 합의한 감축 목표 수준으로는 복잡한 지구 생태계의 양성 피드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게 비판의 주요 내용이었다.
기존의 공학적 접근은 생태계에 포함되는 요소들 각각이 무수히 많은 다른 요소와 네트워크를 형성했음을 간과하고, 블랙박스화 된 표면만을 다룬다. 이런 측면에서는 지구위험한계선에 기반한 시각이 훨씬 문제를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실제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요인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선 인류와 인류의 과학기술은 ‘불완전한’ 창조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전례 없는 변화를 야기한 생명체이지만, 이것이 곧 우리가 지구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지배자’ 임을 의미하진 않는다. 지구는 우리가 마음껏 실험실로 데려올 수 있는 실험대상이 아니며, 우리가 되려 지구 생태계 안에 붙박여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기다. 또한, 규제나 처벌에 기반한 국가 및 기업 중심의 문제 해결은 계속해서 공정성 논란이나, 이해관계에 따른 협약 탈퇴 혹은 불이행을 낳을 것이다. 과학적 맥락뿐만 아니라 법적, 윤리적, 사회문화적 맥락을 함께 다루고, 일반 대중과의 소통과 협력을 독려해서 모두가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행동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해관계를 따지는 해결책이 아닌, 도덕적 책무성과 연대에 기반한 해결책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류세’라는 단어가 자칫하면 인간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의미만을 강조하고, 기술을 신봉하며 변화를 위한 행동에는 참여치 않는 회의적인 시민을 낳지는 않을지, 약간의 우려가 남기도 한다.
*수업 제출용 에세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