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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인 Apr 30. 2016

일곱째날. 인터메조

2016년 2월 26일 밤. 저녁

일곱째날.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뮌헨. 레스토랑 벨라 이탈리아


어느덧 다시 하루가 저문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나의 마음은 다시금 말을 잊고 고요해진다.


그 어떤 시절을 나는 살아왔었나.

내 앞에 앉은 강운이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 

자신의 피아노에 대해 묻지만 

나는 미안하게도 지금 강운이 나이 때의 

내 뮌헨 시절의 모습을 하염없이 떠올린다.


그런 방황이야 

유학 나오기 전에 

결혼하기 전에 

끝냈어야 할 것을.


내 삶과 선택의 결과가 그래도 견딜만큼 가벼웠던 시절이 

너무나 부지중에, 황망스럽게 흘러가 버렸다.

나는 내 삶이 여전히 가벼웁던 시절에 

여러 선택을 제대로 못 해 본 것이 아직도 아쉬운데,


알고 보면 내게 주어지지 않았던 

그 많은 선택지들이 또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이 

내 삶을 만들어간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더 이상 내 삶을 아쉬움으로 채울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그를 바라 본다. 

그는 이미 너무나 좋은 피아니스트이다. 

다만 그에게는 약간의 성공이 적시에 꼭 필요할 뿐이다. 

그의 음악에게는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으리. 그깟 콩쿨이 무에 그리 중요하냐고. 

그러나 그의 삶 앞에서는 그를 기쁘게 해 줄 무슨 일이라도 반드시 일어나 

그의 삶에 쏟아지는 희락의 음률에 나도 흠뻑 함께 젖어보고 싶을 뿐이다.

샐린저가 홀든에게 아낌없이 내려준 그 소낙비를 

나도 그의 덕에 한 번 따갑도록 함께 맞아 보고 싶을 뿐이다.


나는 사실, 

그의 싸인을 받고 싶다. 

그는 이미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이다.




그와 그 시절 함께 먹었던  

벨라 이탈리아의 파스타를 먹는다.

스파게티 까르보나라는 

여전히 5유로 90센트이다. 

여전히 그 시절 그 주인 아저씨가 있고 

여전히 그 시절 파스타 속에 죽은 벌이 들어가 

공짜 카푸치노를 얻어먹은 일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기억은 아름답다. 

우리가 만일 열 배나 우리 삶의 지평이 넓어져 

스파게티 까르보나라를 59유로를 주고 먹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그와 함께 벨라 이탈리아의 5유로 90센트짜리 

까르보나라의 맛을 기억할 것이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밤. 

맥주를 따르고 한 모금 한 모금을 넘긴다. 

한 모금 한 모금이 이제는 아쉽지 않다. 

뮌헨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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