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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인 May 28. 2018

[렉처콘서트]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후기

가곡 <죽음과 소녀>를 작곡한 1817년

슈베르트는 겨우 스무살을 넘겼다. 

아직은 희망을 가져도 좋은 나이, 

불과 2년전 그의 창작력은 정점에 달아올랐고 

수백개의 가곡이 쉴새 없이 쏟아졌다. 


아침이면 불꽃 같은 천재성이 그를 사로잡았지만,

저녁이면 가까운 숲속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앉아 있기를 좋아하던

애 티를 다 벗지 못한 젊은이 슈베르트는

그저 동네 청년 같았다. 

슈베르트는 시민들의 품 속에서 자라난 

시민 예술가의 대표와도 같았다. 

그의 존재 자체가 마치 

음악은 예술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모리츠 폰 슈빈트: 선술집의 슈베르트



그러나 삶은 쉽지 않았다. 

당시 작곡가의 커리어에서 아주 중요했던 장르는 

교향악과 오페라였다. 

그러나 교향악에서는 베토벤이라는 거인이 

오페라에서는 숱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대한 실전감각을 가지기 어려웠던 

그의 가난한 환경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그같은 가난은 예술가가 지나야 할 

세례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길러낸 예술가 슈베르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통 사람들의 말과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낭만주의의 본령을 이해하게 되었다. 

(낭만주의 Romantik 의 어원인 roman은 

본래 라틴어를 모르는 토착민의 말을 의미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피아노의 슈베르트 II>



보통 사람들의 삶과 고통이 낭만주의의 지향점이었으므로

밤과 환상 고통과 죽음도 똑같이 관심사가 된다

낭만주의가 말하는 죽음이란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종언을 뜻한다

지금의 삶을 격렬하게 거부하는 것은 

새로운 삶을 위한 필수적인 토대였고 

그것을 현실에서 꿈꾸고 결행한 것이 곧 혁명이었다. 


슈베르트 개인에게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종언이란 

기존의 작품들을 기악 및 실내악으로 다시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자작 가곡과 실패한 - 그러나 음악이 나빠서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 오페라의 부분들을 기초로 

실내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직 생계를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가곡 작품이나 

제작 상의 한계를 느낀 오페라를 바꿔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 결과 

방랑자 (D 489)는 피아노 솔로를 위한 환상곡 (D 760)으로 

송어 (D 550)는 피아노 5중주 (D 667) 로

로자문데 (D 797)는 현악 4중주 (D 804)로

물방앗간 아가씨에 나오는 시든 꽃 (D 795)은 바이올린 변주곡 (D 803) 으로 

재탄생되었다. 



작업 중인 슈베르트



그리고 1824년, 

원곡 가곡 (D 531) 이 나온지 7년 만에 

슈베르트 실내악의 최고봉인 <죽음과 소녀>가 

현악 4중주(D 810)로 작곡된다. 


이 7년의 세월 사이에 

그는 실연을 겪고 

오페라 초연에 실패하고

숱한 출판 거절을 당하고 

건강을 잃었다. 

'가곡'에서 아직 상징적이었던 죽음이 

점점 실체를 입고 다가오고 있었다. 



독일 뉘른베르크 시 조각작품, <인생은 난파선> 



무시무시한 죽음의 엄습과도 같은 1악장, 

원곡 가곡을 변주곡으로 바꾼 2악장, 

춤곡 악장인 3악장을 비롯해

죽음의 무도를 연상시키며 휘몰아치는 4악장까지 


그러나 슈베르트가 그려내는 죽음의 악상은 

단순한 도피나 비관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불만족스러움을 벗어나려는 격렬한 거부

그럼으로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혹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죽음이 필요하지 않은가. 

슈베르트의 간절한 악상은 굽이굽이마다

듣는 이들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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