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사랑이다
올해 7월은 평일이 5주나 꽉꽉 차 있어서 유독 다른 달보다 길었다. 여름이라 후덥지근 날도 덥고 길고 긴 한 달간의 출퇴근도 끝나서 8월 1일 하루 휴가를 썼다. 아무런 계획도 일정도 없었지만 그냥 쉬기로 했다. 모처럼 아이도 유치원에 가서 없고 혼자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귀한 하루를 집에서 멍하니 보내긴 시간이 아까웠다.
휴가 쓰기 전날 묘한 무기력감과 우울함을 느껴 이대로라면 빈둥빈둥 누워만 있다가 시간을 다 보낼 것 같았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생각해 보다 전부터 해보고 싶었지만 육아 이슈로 못했던 '고양이 카페 봉사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유기묘들을 돌봐주면서 입양도 보내고 일반 손님들이 방문할 수 있게 고양이 카페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일일 봉사활동도 할 수 있어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땀 흘리며 보람찬 일도 하고 고양이도 실컷 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작고 소중한 단 하나의 일정을 잡아놓고 나니, 씻고 집밖으로 나가는 게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설렜다. 방문한 곳은 2층짜리 단독 건물이었다. 일반 아파트 집처럼 마룻바닥이 펼쳐져있었는데 단지 가구와 방이 없었고, 고양이들이 계단을 왔다 갔다 하며 2층까지 사용하였다.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네다섯 마리 고양이들이 일제히 다가와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얼굴을 갖다 대고 부비부비하는 것이 아닌가!
쓰다듬어 주니 손길을 피하지 않고 좋아하였다. 이 고양이들, 사랑이 고팠나? 아니면 고양이 카페라서 일반 손님들하고도 자주 마주하니 사람이 낯설지 않았나 보다. 봉사 시간이 카페 오픈 전이었던 덕분에 혼자서 그 많은 고양이들의 관심을 받고 간택당한 기분이란! 묘한 쾌감과 뿌듯함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삶에 권태기가 찾아왔다고 죽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도 사람이 활기를 얻을 수 있구나 싶었다.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였다. 고양이 밥그릇, 물그릇 설거지하고 밀대로 바닥 밀기.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19kg 아들도 번쩍 드는데 유리로 된 고양이 그릇은 왜 그렇게 무거운 건지. 손목과 손이 욱신거리고 저리더니 결국 다음날에도 왼쪽 손과 엄지손가락, 손목이 아프고 힘을 줄 수 없었다. 그릇들이 무거운 줄 모르고 처음에 유리그릇을 겹쳐서 한 손으로 한꺼번에 옮기려고 했던 순간을 후회한다... 그때 분명 손목에 무리가 갔나 보다.
사람 손목이 고장 나든 말든 그릇들을 옮기고 있으니 고양이들이 밥 주는 줄 알고 "야~옹"거리며 다가왔다.
"후후, 속았지? 밥 주는 거 아니야. 저리 비켜~ 그릇 씻고 올게~!"
혼자서 외치고는 8~9개의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개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치 도깨비들이 밥을 먹는다면 이런 그릇을 쓰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무게여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설거지였다.
다 씻은 그릇은 탁자 위에 올려두고 이제는 밀대를 들고 1층과 2층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2층에는 유리벽으로 된 작은 방이 있었는데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 4마리가 살고 있었다. 엄마 고양이가 "냐옹"거리며 나를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순순히 들어오게 해 주었다. 아기 고양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고양이 놀이기구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이고야. 여기가 진짜 더럽네! 언니가 깨끗하게 닦아줄게~!"
쓱-싹 쓱-싹. 밀대가 앞뒤로 왔다 갔다 움직이니 아기 고양이들의 머리도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며 눈은 밀대를 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집도 이렇게 밀대로 빡빡 안 닦는데 이 고양이들은 아주 값비싼 노동력을 자기들에게 쓰고 있는 줄 아무도 모를 거다.
고양이들에게 혼잣말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밀대를 미는 행위는 집에서 육아하고 청소할 때와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집에서는 365일 육아, 집안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니 항상 '아-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일은 하면 티가 안 나지만 안 하면 티가 나는 일이니까. 잠깐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이니까. 하지만 1시간 동안 순수한 선의에 의하여 이 고양이들이 지내는 환경을 깨끗이 하는 일은 무척 보람찼고 뭔가 작지만 큰 일을 해낸 느낌이 들었다. 귀여운 고양이들을 보니 힐링도 되고 말이다.
집안일보다 체력이 더 소모되는 노동을 하는데도 기분이 좋다니... 역시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나? 주체적으로 일하면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고, 해야 하니까 억지로 하면 지루함, 권태로움, 짜증이 생긴다. 집에서 설거지나 청소 등을 할 때도 '오늘도 설거지해야 하네. 아 힘들어.'라고 생각하기보다 '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서 가족들이 이제 깨끗하게 지낼 수 있겠다~ 역시 나는 부지런하고 집안 관리를 잘해!'라고 생각하면 적어도 능동적으로 기분 좋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매일 긍정적인 마인드셋 하는 건 어렵지만, 우리 집에 더 귀여운 남편 고양이, 아기 고양이를 위해서라면 난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지겨운 노동이 아니라 선의에 의한 봉사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좀 더 편하려나.
1~2층과 계단 바닥 닦기가 끝나고 1층 카페 마룻바닥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으니 어느새 손님들이 들어와 있었다. 가족, 학생, 어린이 손님 등 다양하게 찾아와 고양이들과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나밖에 몰랐던 고양이들도 순식간에 새로 온 손님들에게 가 귀여움을 잔뜩 받고 있었다. '이 녀석들, 누가 바닥을 다 닦아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고양이 같으니라고!' 조금은 질투가 나려는 순간 하얗고 까만 얼룩무늬 고양이가 다가와 내 양반다리 위에 턱 앉았다. 따뜻한 고양이 몸통의 온기가 느껴졌다. 아아, 이거 이거, 고양이는 사랑이구나.
흐뭇한 표정으로 고양이들과 놀아준 후 집으로 돌아오기 전 돌돌이로 온몸의 고양이털을 떼냈다. 다음에 또 오고 싶었다. 최근에 누군가를 위하여 어떠한 기대도 바라는 것도 없이 온 힘을 다하여 내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쏟은 적이 있던가?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아기를 키울 때조차 이렇게 밥 먹여주고 씻겨주고 다 하는데 왜 떼를 부리고 말을 안 듣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대할 때조차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지? 집안일을 왜 더하지 않지? 하고 뭔가를 바라고 따지고 내가 좀 더 득을 보고자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계산하고 따지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조성모의 가시나무 노래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았나 보다. 다른 사람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고 그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봉사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았다. 나만 힘들고, 나만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 오로지 내 위주로 생각을 했었다.
고양이는 사랑이지만 내 진짜 사랑은 누구지?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서라면 나한테 득이 되는지 따지지 말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열렬히 사랑하자.
그럼 고양이 카페에서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다 에너지 있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삶에 권태로움이 찾아와도 그것이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지 말고, 주위에 사랑과 관심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나씩 찾아보자. 그럼 다시금 하루하루 견딜 힘이 생기고 활기차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