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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16. 2024

처음,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다.

브레이크 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덕질생활이 끝났다. 지난 일 년간 아이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토카드를 수집하기 위해, 날마다 편의점 반값택배를 이용했다. 얼마나 자주 갔던지 편의점 사장님과도 친해진 모양이었다. 김 같은 밤에도 택배를 보내러, 또 받으러 편의점에 갔다. 너무 늦었으니 내일 가라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삶의 일 순위는 덕질이었다.


덕통사고라는 말처럼,

그 일은 부모가 뜯어말릴 수 없었다. 그저 옆에서 다른 가치관을 바라보는게 최선이었다. 무엇이 아이의 마음에 그렇게 강렬한 불을 지른 건지, 그 동기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 열정이 평생 갈 줄 알았건만 콘서트를 다녀온 몇 달 뒤, 사랑이 점점 식어갔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열정이 드라마로 옮겨갔다. 덕질의 운전이 아이돌길을 달리다 드라마길로 방향을 틀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내가 다 서운했다. 하지만 아이는 두 사람을 한 마음에 품을 수 없다는 듯, 드라마에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슬의생을 몇 번 반복해서 보고, 대사를 외우고, 배경음악을 다 익혔다. 다행히 드라마는 우리와 접점이 있었따. 슬의생의 노래들은 우리에게 낯익은 것들이 많았다. 차에 타면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고, 아빠는 원곡의 가수를 함께 찾아 주었다. 그 과정에 추억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 다음의 과정은 대본집이었다. 슬의생 대본집이 없어, 다른 드라마의 대본집을 사서 그 안에 놓인 감정들을 면밀히 읽고, 대사를 연습했다. 하나에 빠진 아이는 주체적으로 주제를 확장해 갔다.


드라마에 빠져 있는 동안, 과거에 열광했던 이이돌 굿즈들의 쓸모가 빛을 잃어갔다. cd, 포토카드, 캘린더 응원봉을 중고마켓에 팔기 시작했다. 포토카드를 열심히 사던 중고마켓에, 열심히 팔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살 때는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꼈다. 소비자에서 판매자로 바뀌었을 때 느끼는 것들이 달랐다.


하루는 씩씩대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오늘까지 입금한다고 해 놓고선 아직도 입금을 안 해."라고 했다. 자기는 무언가를 살 때, 바로바로 입금하는 성격이어서 그런 사람들을 대하기 어려워했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것 일일이 화내면 너만 손해야. 어쩔 수 없잖아. 다른 사람한테 팔아."

"아는데, (그동안 공들인) 내 시간이 아깝잖아."

언제 입금하나 계속 확인하고,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는 일. 나도 겪어본 일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24시간 안에 입금하지 않은 시에는 다른 사람에게 판매됩니다.라는 글을 달아. 계속 신경 쓰지 말고, 하루 지나서만 딱 확인해."


며칠 뒤,

"엄마 내가 어떤 특징을 발견했어. 중고장터에서 입금을 미루는 사람들은 결국, 제대로 보낸 적이 없어. 답이 없거나, 탈퇴하더라고...."


그 말을 듣는데 일리가 있었다. 나의 경우도 중고거래를 할 경우, 꼭 살 마음이 있으면 다음 사람이 그 제품을 가져갈까 싶어서 빨리 입금했다. 그리고 혹시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는 언제 입금한다고 미리 연락을 한다. 임급을 미루면 망설인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이는 그동안의 중고상품 거래를 통해 사람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자기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아갔다.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자기주도학습이었다. 비록 교과서공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문제집으로 푸는 공부대신, 학교 밖에서 사람공부를 했으니, 어디선가 쓸모가 있길 바란다. 워런버핏이 어린 시절, 자판기 옆에 버려진 캔뚜껑을 주으며 투자감각을 키웠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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