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하는 것들은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된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최근 <캐치 티니핑>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다. 만화의 캐릭터가 다양해서 장난감을 사주느라 부모가 등골이 휜다며 티니핑을 '등골핑'이라고도 했고, 유병재가 조카와 티니핑 퀴즈 대결을 하는 영상도 알고리즘에 떴다. 그걸 아이에게 보여주니,
“우리 반에도 쉬는 시간에 티니핑 이름 맞추기 퀴즈 푸는 거 봤어. 우리 해볼래?”라고 말했다. 중학생도 티니핑에 관심이 있다니... 세대를 막론하고 요즘 티니핑이 핫하긴 핫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았더니 티니핑 mbti, 티니핑 도감 책까지 나와 있었다. 장난감, 스티커북, 유튜브 콘텐츠까지 티니핑의 세계관은 방대했다. 그중 나의 눈길을 끈 건 티니핑의 이름이었다.
언제 어느 때나 긍정적인 (샤샤핑), 다정하고 상냥한 순수의 (포실핑), 흥미로운 걸 찾아다니는 (뿌뿌핑), 지치지 않고 발랄한 (말랑핑),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캔디핑), 서로 붙어있고 싶게 만드는 (샌드핑), 성실한 올바름의 (바로핑), 쾌활한 즐거움의 (라라핑), 용기의 (아자핑), 착한 마음의 (차캐핑) 등 캐릭터의 성격에 핑만 붙이는 구조가 눈에 띄었다. 이걸 기록에 접목하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티니핑 이름 만들기> 땡땡핑을 주제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직접 기록한 땡땡핑
- 연말이 되면 물욕이 고개를 들어 쇼핑을 많이 하는 00 언니는 <쇼핑핑>
- 요즘 인플루언서의 논란에 대에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내가 그 상황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며 논란에 무조건 중립을 박는다는 딸은 <중립핑>
- 마음에 들어서 산 모자를 보며 가족들이 나를 인민군이냐고 놀리던 날은 <인민군핑>
- 요즘 달리기에 꽂혀서 무슨 대화마다 “달리기 해”라고 마무리하는 남편은 <러닝핑>
- 2학년 조카가 갑자기 중학생 딸에게 카톡으로 물어 온 질문 <8x8x8x8 핑>
- 지인에게 부탁할 때나 층간소음으로 집에 찾아온 할아버지에게 어려운 말을 할 때에 귀여운 목소리가 되는 친구는 <음성변조핑>
- 나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본 아이가 “수능만점자 같은데..”라고 해서 과거의 나는 <수능 만점자핑>
- 최화정이 입은 레드 체크 셔츠가 예뻐서 구입해 한껏 꾸민 날에는 <최화정핑>
- 아이가 간절기 감기로 콧물이 나던 날에는 <줄줄핑>
- 아이 친구가 내가 쓴 블로그의 글 <하이킹 걸즈> 책 후기를 보고 혹시 너네 엄마냐고 물어와서 놀란 날에는 <너네엄마야핑>
- 이건 이렇게 하는 건 어때라고 말하면 늘 이렇게 말하는 <내가 알아서 할게핑>
- 5학년 조카 노트에서 발견한 낙서 <인생참쓰다핑>
- 늘 여행의 최저가만 찾아다니며 뿌듯해하는 동생은 <최저가핑>
- 요즘 흑백요리사의 정지선의 화장법에 꽂혀서 집에서 눈에 두껍게 선을 긋는 <정지선아이라이너핑>
- 친구들이 날마다 이벤트를 기획하며 산다며 <기획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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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가을에 태어난 00아. 너를 보러 가려고 해 언제 시간 되니?
어머, 판교 한강(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답게 문장 몇 개로 감동을 주네. 나는 화, 목 둘 다 좋아. 종로 마실 와 주는 거야? 아름답다.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에 기분이 좋아서 딸에게 보여주니
- 테무한강?이라고 했던 날은 <테무한강핑> (사춘기랑 대화하면 나만 다침)
어떤 특징적인 상항에서 핑만 붙이면 되니 하나의 놀이 같아서 일상이 맛있어졌다. 어릴 때, 때 내 별명은 늘치였다. 걸을 때, 흐느적, 흐느적거린다며 붙여진 별명이었다. 타인에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별명으로 확일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붙인 별명은 스스로를 다각적으로 보게 했다. 사실 심도 있는 관찰보다는 이름으로 별명을 붙이는 경우가 더 흔했다. 오지은은 오징어가 별명이었고, 안영식은 안영식빵이 별명이었다. 얼마 전, 나태주 시인님의 초등학생 제자들이 자신을 보며 이렇게 불렀단다. (나)좀(태)워(주)세요. 시인의 제자답게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었단다.
어릴 때는 삶에 위트와 유희가 함께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진지해져 유희가 멀어졌다. 티니핑 덕분에 지인들의 별명을 짓고, 가족이 나의 별명을 지으면서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핑인지, 또 주변에 떠오르는 00 핑은 누군지 궁금해진다. 스스로 별명을 지어도 좋고, 지인의 별명이라도 지어보는 건 어떨까? 우리 모두 매력적인 00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