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태워줘
하루의 끝, 귀는 소각장으로 퇴근한다
빨강 기름때로 범벅이 된 말
머리카락과 먼지가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말이 가득하다
밟아도 구져지지 않고
찢어도 찢기지 않는 말들을 안고
매일밤 납작한 소각장 안으로 들어간다
나를 태워줘
보라색 연기가 피어난다
사각사각 소각된다
일기장 속에서 재가 된 글씨들
그 안에서 하얗게 된 내가 종이에서 걸어 나온다
깨끗해진 나는
내일을 덮고 눕는다
할아버지의 몸은 텅 비어져 있다
우르르 몰려든 말들은 빠진 보청기에 걸려 넘어진다
용기 잃은 말들이 그의 곁에서 시든다
느린 구름처럼 버스에 실려 도착한 서점,
할아버지는 구석에서 편지지를 고른다
편지지 하나를 손에 들고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또 다른 편지지를 고른다
그 옆을 지나는 학생들의 소란함이 미끄러진다
책상 위에 펼쳐 놓은 편지지
이미 떠나간 말을 붙잡아 보려 해도 아득하다
몸속에 들어온 말이 없어 가난하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있는 줄 몰랐던
말들이 쏟아진다
‘사랑하는 손녀에게’
ㅡ
주제는 쓰레기.
마로니에여성백일장에서 쓴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