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생신이어서 온 가족이 모였다. 그날의 메뉴는 백숙과 닭볶음탕이었다.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위한 음식선정이었다. 식탁위의 콩나물, 꽈리고추무침, 동치미, 고사리무침, 양파피클 등 밑반찬이 윤기가 났다. 반찬만으로도 밥 한공기를 비울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조카는 백숙과 닭누룽지를 먹으며
궁금증이 생겼다.
ㅡ 왜 백죽이 아니고, 백숙이야?
아이 앞에 놓인 건 닭고기가 뜯어진 죽처럼 보였다.
ㅡ백숙은 한자어야. 큰엄마가 무슨 뜻인지 사전 찾아볼게.
흰(백) 익힐 (숙)이라는 한자네
백숙이란 닭볶음탕처럼 빨갛게 양념하지 않고, 물에 닭을 넣어서 익힌 음식이야. 그러자 ㅇㅇ이는
ㅡ 라면만 끓이는 거?
ㅡ 라면?
아, 라면에 스프를 넣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
아이만의 시선으로 백숙의 개념을 익혔다.
그동안 살면서 얼마나 많은 백숙을 먹어왔던가? 한 번도 백숙은 왜 백숙인지 궁금해본 적 없었다. 조카의 궁금증을 통해 나도 백숙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느낌으로만 사는 세상의 문을 조카가 노크했다. 정확한 세상으로 넘어오라고 손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