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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May 27. 2024

집이 좋은 사람 (8)

식물을 기르기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쯤 되었다. 벌써 아는 척 하긴 이르지만 그래도 입문자일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는 법이다.


당신이 식물 킬러가 되었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3일에 한 번 물주라던 식물 가게 아저씨 때문이었을 거다. 아저씨는 알고 있다. 어떻게 물을 줘야 하는지. 아저씨는 식물 만렙인데 모를 리가 없지. 아저씨의 젊은 시절. 의기양양하게 화원을 열었을 때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었을 거다. 하지만 손님들은 진실을 마주하면 지레 겁먹고 ‘어우 난 못 키우겠다. 왜 이렇게 복잡해요?’라고 했을 거고. 아저씨는 낙담했을 거다. 화원 아저씨도 사람이다. 흙만 먹고살 수는 없지. 아저씨는 전략을 바꿨다. 식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나마 순둥한 식물을 소개해주고 말한다. ’3일에 한 번씩 물만 주세요.‘ 라고. 기분 좋게 식물을 사러 온 당신은 ‘좋아! 잊지 않고 3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물 주고. 건강하게 키워야지!‘  라며 뿌듯해했을 거다.


운이 좋다면 당신의 식물은 여름이 지날 때까지는 괜찮았을지 모른다. 당신은 꼬박꼬박 잊지 않고 3일에 한 번씩 물을 주었고 당신의 식물은 그 물을 먹고 쑥쑥 자란다.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 당신의 식물은 그게 당신의 사랑이라고만 여겼다. 나는 운이 좋은 식물이라고 주인을 잘 만났다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비극은 일어난다. 당신이 당신의 식물을 잊어서 일어난 일은 아니다. 이번엔 꼭 잘 키우자고 다짐하던 당신은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될 때까지 꾸준히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고. 당신이 쏟은 번지르르한 애정 비슷한 것에 식물은 질식사한다. 당신의 식물은 당신을 원망하게 죽어갔다. 당신은 또다시 낙담한다.


식물은 사랑으로 키운다고 한다. 사랑으로 키운다는 건 꼬박꼬박 며칠에 한 번씩 물을 준다거나 영양분 많은 비료를 왕창 퍼준다거나 귀도 없는 식물한테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해를 얼마나 봐야 잘 자라는 식물인지. 통풍이 얼마나 필요한지, 원래 살던 곳의 환경은 어떤지, 물을 얼마나 잘 빨아들이는지, 잎이 마르거나, 떨어지거나 쳐지지는 않는지. 뿌리가 얼마나 튼튼한지, 잎의 색깔은 어떻고 새 잎은 잘 돋아나고 있는지. 벌레는 안 생기는지 화분 크기는 어떤 게 좋을지. 새로 옮긴 곳에 잘 적응하는지. 가지치기를 해줄 때가 되지 않았는지. 온도는 적절한지. 너무 건조하지 않은지. 웃자라지는 않는지. 뭐 이런 것들을 보고 사랑으로 키운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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