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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Mar 21. 2017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악 에세이 25 - 같지만 다른, 32개의 노래


한 노인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어부인 그는 84일째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 85일째 되던 날,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사투 끝에 마침내 거대한 물고기를 잡는다. 자기 배보다 더 큰 물고기를 배 옆에 달고 귀항하는데 상어 떼가 노인의 물고기에게 달려든다. 노인은 사력을 다해 상어 떼와 싸웠지만, 항구에 왔을 때 물고기는 머리와 뼈만 남았다. 집에 온 노인은 죽은 듯 잠이 든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흐가 음악을 사랑했던 헤르만 폰 카이저링크 백작의 불면증을 달래기 위해 작곡했다는 것이다. 카이저링크 백작은 이 작품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그의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요한 고트프리트 골드베르크에게 자주 연주를 청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 일화는 이 작품에 항상 따라다닌다. 그것은 이 작품이 효과적인 불면증 치료제로서 수긍할만한 일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 T. A. 호프만은 이 변주곡에 골드베르크라는 제목이 붙기 전에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어느 살롱 음악회에서 독한 술을 한 잔 마신 크라이슬러는 바흐의 변주곡을 연주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작품이 그곳의 분위기와 썩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크라이슬러는 "아마도 지루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연주를 시작했다. 변주곡이 연주되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비웠고, 마지막 30번 변주에 이르렀을 때는 살롱은 이미 완전히 비어있었다. 오직 피아니스트와 술잔, 그리고 그를 더욱 취하게 만드는 음악만이 남겨진 채로.



하나의 아리아가 노래된다.


느리고 우아한 사라방드풍의 아리아는 바흐의 아내인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1725년)에 실린 노래이다.


그리고 같지만 다른 30개의 노래가 이어진다.


아리아의 베이스 선율을 기초로 한 파사칼리아 타입 변주이다.  이  30개의 변주는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치밀한 음악적, 수학적 논리를 통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품의 이러한 건축적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이 작품 해석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30개의 변주가 모두 끝난 후에는 다시 처음의 아리아가 연주된다.  



아리아 2곡(반복)과 변주 30곡, 총 32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주제인 아리아는 32마디로 이루어져 대칭을 이룬다. 또한 32곡은 제16번인 프랑스풍 서곡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구조적으로 대칭을 이룬다. 즉, 전반부에 아리아와 15개의 변주와 후반부에 아리아와 15개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바흐가 작품의 중심부인 제16번 변주에 특별히 서곡(Ouverture)이라고 기입한 변주를 배치한 것에서 전체 변주곡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아리아 역시 16마디 단위로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대칭을 이룬다.


이와 동시에 30개의 변주들은 3곡 단위의 10번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흐는 3의 배수로 돌아오는 변주곡(제3곡, 제6곡, 제9곡 등)에 카논을 배치했는데, 이 카논은 처음에는 유니즌 카논으로, 두 번째는 2도 카논, 세 번째는 3도 카논 등으로 점차 발전되어 마지막 카논인 제27번 변주에서는 9도 카논에까지 이르게 된다. 바흐가 만들어낸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음악적인 사고를 따라가는 것은 단순한 정신적 여흥을 위해서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치밀하게 구성된 음악적 유희 끝에 마지막 제30번 변주에서 바흐는 놀라운 음악적 유머를 보여준다. 즉, 이 변주곡의 3의 배수의 마지막 변주곡인 제30번 변주곡은 카논이 아니라 쿼들리벳인 것이다. 쿼들리벳은 17, 18세기 당시에 유행하던 음악형식으로, 대중적인 노래들을 재미있게 결합해서 만드는 노래이다. 이로써 바흐는 변주곡의 마지막에 이르러 노래와 춤곡이 어우러진 흥겨운 축제를 만든다.            

                                               




 

글렌 굴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끝도 시작도 없는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끝과 시작이 같은 음악이다. 그 사이에 30개의 변주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것은 망망대해와 같다. 어부인 노인은 바다로 나간다. 매일같이 나가는 바다다.


노인은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집 다시 도착다. 러나 그는 떠나기 전의 그가 아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궤도가 있다. 그는 무수한 이야기를 얻는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처음과 마지막 아리아는 동일하다. 그렇지만 30개의 변주를 지나고 나면 마지막 아리아는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출발지가 목적지로 변모다. 극적이고 오묘하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에 끝없이 빠져드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주제로 나날이 변주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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