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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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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Apr 19. 2024

먼 곳에서 은밀히 귀 기울이는 이에게

지극히 복잡하거나 섬세하거나 아름답기에



편지는 가장 호사스러운 문학이다.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쓴다. 



200여 년 전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그와 소중한 우정을 나눈 친구 실러를 만난 후에 집으로 갔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실러에게 편지를 썼다.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편지를 쓰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저녁에 친구와 나누었던 생각과 감정을 곱씹으며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편지… 오직 편지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강렬한 느낌과 긴 여운이 있다. 요즘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우편물은 각종 고지서나 홍보물이 대부분이다. 이 시대는 편지를 쓰는 기술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손 안에서 작성할 수 있는 짧고 빠른 메시지가 있다. 몇 번의 손놀림으로 즉시 주고받는다. 그렇지만 어떤 것들은 이런 것들로 결코 전할 수 없다. 


지극히 복잡하거나 섬세하거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전 시대의 음악가들은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편지들을 많이 남겼다. 슈만과 클라라 역시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한동안은 오직 편지로만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다.


음악이 세상에 공개하는 영혼의 비밀이라면 편지는 두 사람이 나누는 더 사적인 비밀이었다.


이들의 절절한 연애편지의 배경에는 두 사람의 교제를 결사적으로 반대한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가 있다. 



슈만은 독특한 정서와 독자적 사고로 낭만주의 음악의 새로운 페이지들을 채운 작곡가다. 그는 원래 위대한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슈만은 당시 가장 유명한 피아노 교사로 꼽혔던 비크를 찾아가서 배웠다. 그러나 무리한 연습으로 손가락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다. 내면세계가 누구보다도 풍부했던 그는 다른 표현 수단을 찾았다. 슈만은 1833년에 어머니에게 편지하며 작곡가로 전향하고자 하는 뜻을 밝혔다. “제 손가락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그것과 상관없이 작곡을 할 수 있으니까요… 연주를 못하는 것은 저의 환상을 전혀 방해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음악의 환상을 펼칠 용기가 생겼다고 할 수 있어요.” 

  

한편 클라라는 9살에 라이프치히에서 첫 공식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0대에 이미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된 천재였다. 또한 자신의 작품들을 출판한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했다. 클라라 역시 아버지 비크에게 음악을 배웠는데, 비크는 탁월한 교육자였지만 엄격하고 완고한 사람이었다. 홀로 클라라를 키운 그는 딸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했다. 클라라의 생활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생각까지 장악하려고 했다. 클라라는 일기조차 자신의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클라라가 써야 했던 일기의 내용은 아버지가 음악 사업을 위해 관계자들에게 쓴 공격적인 편지들을 필사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클라라의 일기라고도 할 수 없었다. 열아홉에 출가하며 클라라는 비로소 자신의 일기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집착하며 키워온 클라라가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연인 슈만은 비크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비크의 눈에는 창조적 상상력 외에는 모든 면에서 미심쩍은 젊은이였다. 그리고 그 재능마저 위험하게 보였다. 열정은 넘쳤지만 감정적으로는 불안했으며, 견실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는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것이다. 그는 헌신적으로 키워온 자신의 자랑스러운 딸을 그에게 놓아줄 수 없었다. 그러나 클라라는 달랐다. 그녀 자신이 훌륭한 음악가였던 만큼 슈만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오래 흠모해 왔다. 슈만 또한 꼬마 숙녀 때부터 감탄해 온 클라라를 언젠가부터 여인으로 마음에 품었다.      

   

비크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 슈만과 클라라는 음악과 편지를 통해 비밀스럽게 그들의 사랑을 키워갔다. 클라라는 슈만의 음악을 연주하며, 슈만은 클라라를 위해 작곡하며 위안을 삼았다. 먼 곳에 있는 서로를 갈망하며 그들은 연주와 작품에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음악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강한 끈이었으며 편지는 둘만의 구체적인 사랑의 확증이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비크의 반대와 방해로 그들은 만나는 것은 물론 편지를 주고받는 것조차 불가능한 시간을 보냈다. 비크는 슈만이 클라라에게 보내는 작품과 편지를 전해주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는 클라라에게 슈만과 만남을 이어간다면 권총으로 쏠 것이라는 협박까지 했다. 딸과 함께하는 장기 연주 여행 일정을 연달아 잡으며 비크는 클라라를 감시했다.    


슈만과 클라라는 같은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있을 때조차 서로에게 어떤 마음도 전할 수 없었다. 암흑과도 같은 긴 시간을 지나며 때로는 원망이, 때로는 의심이, 때로는 질투가, 때로는 체념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자신이 창간한 음악 평론지 『음악 신보』에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클라라를 당대 최고의 연주가로 찬탄했던 슈만은 이제 절망에 빠져 신문에 혹시 그녀의 결혼 기사가 났는지 초조하게 살펴보는 신세가 됐다. 다른 도시로 연주 여행을 다니던 클라라는 그녀의 마음이 결코 그를 멀리 떠날 수 없다는 것만을 괴롭게 확인해야 했다.     


   

1837년 8월에 클라라는 라이프치히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그녀는 슈만의 작품을 반드시 연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슈만에게 연주회 소식을 전해달라고 친구에게 미리 부탁해 놓은 터였다. 객석에 모습을 숨긴 채 슈만은 클라라가 연주하는 자신의 <교향적 연습곡>을 들었다. 그녀는 음악으로 자신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그날 밤 수많은 이들이 그녀의 연주를 들었지만, 오직 슈만만이 자신에게 은밀히 말을 거는 사랑하는 이의 음성을 들었다. 그녀의 음악이 곧 그의 음악이었다. 음악으로 하나가 된 그들은 같은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연주회가 끝난 후에 슈만은 벅찬 가슴으로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1년이 훌쩍 넘는 침묵을 깨고 다시 쓰는 열렬한 편지였다.        


“당신의 마음은 여전히 충실하고 확고합니까? 당신에 대해 저는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강한 마음이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아무 소식을 듣지 못할 때에는 방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수천 번 생각했고, 또 다짐합니다. 서로 소망하고 행동하면 끝내 이루어질 것이라고요. 당신이 당신의 생일인 9월 13일에 나의 편지를 아버지에게 전해드릴 수 있다면, 간단하게 ‘네’라고 써서 답장을 보내 주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네’라는 대답을 잊지 마십시오. 앞일을 생각하기 전에 저는 무엇보다도 이 확신이 필요합니다.”     


슈만의 편지에 클라라는 같은 열정과 단호함을 가지고 곧 답장을 썼다.      


“당신은 단순히 ‘네’라고만 쓰라고 하셨군요. 짧지만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끝없는 사랑으로 넘쳐흐르는 저의 마음, 제 모든 영혼이 어떻게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나의 고통과 뜨거운 눈물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운명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을 우리에게 허락할 것입니다… 당신의 계획은 조금 위험합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저 또한 우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저를 막을 수 없어요. 저는 아버지에게 이 마음을 당당하게 보여드릴 것입니다.”     






슈만과 클라라는 모든 것이 가로막힌 상황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이 만든 음악과 편지의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대담하고 자유롭고 진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확고한 마음을 나눈 이때의 편지는 두 사람의 관계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들의 편지를 읽는 지금, 슈만과 클라라가 내밀하고도 애틋하게 품었던 마음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오래전 단 한 사람을 위해 썼던 은밀한 편지가 먼 곳에서부터 여기 이렇게 도착했다.      







(주- 편지들은 전문에서 발췌해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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