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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실물보관소 Mar 07. 2023

3. 가해자는 없다.

사회 감정은 변한다.

폭력을 행하는 자는 그것을 폭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해자는 자신이 가해자인지 모른다.


본인이 피해자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은 세상에 넘쳐나지만,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러니다.


피해자의 숫자만큼, 가해자가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해서,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수많은 일상이 범죄가 되었다.


내 학창 시절의 학교폭력은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는 말로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지금은 범죄가 되어, 학폭 가해자는 사회에서 설 곳을 잃어간다.


그 시절의, 가벼운 농담은,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발감이 되었다.


예전엔 인정되지 않았던, '가스라이팅'이란 명명이 생기고 범죄로 규정된다.


흑인노예를 짐승취급하던 게 너무나 당연한 시대가 있었지만, 흑인의 인권이 높아지고 흑인 대통령이 나오는  현대 사회를 당시에는 상상할 수 있었는가.


앞으로도

지금 우리가 별생각 없이 행하는 많은 것들이 더 빠르게

범죄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도 무의식적인 가해자인지 의식하는 것을 시도해봐야 한다.


현재 나의 너무나 정당한 논리가,

미래 세대의 사회 감정으로는 처참히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인정한다.

대표적으로, 가장 가깝고 편한 가족에게 가해자였음을.

아무리 얘기해도 바꾸지 않은 어린 자녀에게 감정이 들어간 말로 훈계를 했는데.


 '수백 번 말해도 바뀌지 않는 자녀에게  어떻게 감정이 섞이지 않을 수가 있냐'라고 정당화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 아닌 사랑의 매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감정으로 를 들었는가.


그리고, 못 하는 것을 수백번말하지 말고,

잘하는 것 하나를 칭찬해 주는 게 부모가 해주어야 할 역할이란 것을.


이렇게 글을 써놓고도

또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정말로 죄송합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사람과 지구 위 존재에게

사과합니다.


일 순간에 모든 걸 바꾸지 못해도 계속 시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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