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행하는 자는 그것을 폭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해자는 자신이 가해자인지 모른다.
본인이 피해자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은 세상에 넘쳐나지만,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러니다.
피해자의 숫자만큼, 가해자가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해서,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수많은 일상이 범죄가 되었다.
내 학창 시절의 학교폭력은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는 말로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지금은 범죄가 되어, 학폭 가해자는 사회에서 설 곳을 잃어간다.
그 시절의, 가벼운 농담은,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발감이 되었다.
예전엔 인정되지 않았던, '가스라이팅'이란 명명이 생기고 범죄로 규정된다.
흑인노예를 짐승취급하던 게 너무나 당연한 시대가 있었지만, 흑인의 인권이 높아지고 흑인 대통령이 나오는 현대 사회를 당시에는 상상할 수 있었는가.
앞으로도
지금 우리가 별생각 없이 행하는 많은 것들이 더 빠르게
범죄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도 무의식적인 가해자인지 의식하는 것을 시도해봐야 한다.
현재 나의 너무나 정당한 논리가,
미래 세대의 사회 감정으로는 처참히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인정한다.
대표적으로, 가장 가깝고 편한 가족에게 가해자였음을.
아무리 얘기해도 바꾸지 않은 어린 자녀에게 감정이 들어간 말로 훈계를 했는데.
'수백 번 말해도 바뀌지 않는 자녀에게 어떻게 감정이 섞이지 않을 수가 있냐'라고 정당화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 아닌 사랑의 매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감정으로 매를 들었는가.
그리고, 못 하는 것을 수백번말하지 말고,
잘하는 것 하나를 칭찬해 주는 게 부모가 해주어야 할 역할이란 것을.
이렇게 글을 써놓고도
또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정말로 죄송합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사람과 지구 위 존재에게
사과합니다.
일 순간에 모든 걸 바꾸지 못해도 계속 시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