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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실물보관소 Mar 08. 2023

기사 1. 우리마을 이장님

2012년 5월 뜬봄샘(귀농인 잡지) 기사임을 밝힙니다.

기획특집 1> 우리 마을 이장님- 김일한


봄볕 따스한 날, 계북면 <삵다리, 압곡마을> 김일한이장님을 찾아 나선다. 아무 사전 정보도 없었던 터라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도착한 <압곡마을(윗마을)>의 전경은 조금은 황량한 아주 작은 마을. 그곳의 하천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 하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장님이 지금 <삵다리마을(아랫마을)>에 계시다는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내려간다. 그렇게 뵙게 된 이장님은 조금씩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이장님. 마을을 소개해주세요...


고속도로 교각을 중심으로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나뉜다.

윗마을의 이름은 압곡마을이다. 기러기(오리)가 노니는 계곡이란 의미에서 말해 주듯, <압곡마을>은 물이 맑은 곳이었다. 10여 년 전, 마을 위에 골재생산공장이 들어선 후, 마을하천은 하얀 물이 흐르는 오염된 마을이 되었다. 이제 발도 못 담그고, 농업 용수로도 못 쓰게 된 마을 하천을 살려보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아랫마을의 이름 <삵다리 마을>은... 유난히, 삵이 많았고, 마을 뒷산이 삵다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마을 뒷산으로 고속도로교각이 뚫리면서 삵다리 모양도 변하고, 해를 가려 마을이 볕이 부족해졌다.


이곳은 참 낙후되었다. 사람은 적고, 평균연령과 문맹률은 높고,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다. 마을 규모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득위주의 지원 사업에서 신청기준에 조차 미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삶의 질을 운운하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돌봐주신 이곳의 어르신들에게 삶의 마지막을 사람답게 살게 해드리고 싶다.


이장님의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이장님의 선조는 160여 년 전, 경남 하동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오셨다. 전직  역사 선생님답게, 선조들의 행적을 줄 줄 외우고 계셨다.


이장님이 살고 계신 집과 행랑채, 비석(걸인들이 은복을 잊지 않고 마당 한 켠에 비를 세워주었다), 돌담...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이 지면을 통해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장님은 전주 모 고등학교에서 37년간 역사 선생님으로 재직하시다 정년퇴임하셨다.


"사람이 하늘이다. 이곳이 천국이다."


교사는 많으나 스승은 적고, 학생은 많으나 제자가 적은 세상. 점수 따는 기계가 되어 세상에 나가면 돈 버는 기계로 전락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참된 교육활동을 하기 위해 이장님이 사재를 털어 1995년도에, 지은 수련원 <학우정>에 걸려있는 푯말이다.


죽어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있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겠다. 란 이장님의 말씀에, 젊은이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란 생각이 들며 조금 부끄러웠다.


제자가족들이 학우정을 찾아 농촌을 경험하고 장수지역을 알고 가는 캠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뜻이 좋은 일이라면 얼마든 공간을 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농촌을 살리려면 귀농보다 고향을 잃은 도시민들이 고향을 다시 찾게 해야 한다. 그것이 무너져가는 농촌에 일조하는 것이다.


"나 하나의 혁명과 실천"


2010년 이 마을 이장을 하게 되면서, 마을은 변화하고 있다.


폐허가 된 마을을 꾸며보자. 한 포기라도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제외하고 남은 땅에는 꽃을 심자. 이장님 지인의 마을에서 철쭉 수백 그루를 얻어와 언덕에 심어놓았다. 어디서 버리는 화분이라도 있으면 모두 가져와서 마을을 꾸미는데 쓰신단다. 곧 아름답게 피어오를 꽃동산이 눈앞에 그려진다.


전기마저 끊길 위기에 있던, 낡게 방치된 윗마을 회관을 보수하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아랫마을 회관에 실내화장실을 만들었다. 마을 입구, 급경사의 굽은 길에 신호등을 설치하는 등... 시설적 보완을 했다. 행정당국에서도 이런 이장님의 여러 노력을 도와주었다고 감사해하신다.


정보와 문화 부분에서 소외된 어르신들의 눈과 귀가 되기 위해, 면민의 날, 군민의 날 등 각종 행사에 어르신들을 개인차로 직접 모시고 다니고, 몸이 아프신 어르신을 위해 병원에도 자주 다니데 되었다.


내외분이 모두 연금을 받고 계시기 때문에 마음이 여유롭다. 농사는 적게 짓는다. 돈은 모으지 않는다.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신나고 기쁜 하루하루를 역어내고 있을 뿐... 69세의 젊은 이장님의 아름다운 정신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박수를 보내드린다. 앞으로 이 마을이 어떻게 변할지 다 같이 꿈꾸어 보자. 이장님의 혁명과 실천이, 우리들의 그것으로 번지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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