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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밤 Mar 28. 2017

우리는 밤을 새고, 밤하늘을 그리다

-제 5 호 - 



'오로라' 빛, 물, 색으로 그려낸 첫번째 밤하늘. All_rights_reserved_by.HayanBam





하늘.  


 땅에 발을 붙이고 매일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하늘이라는 단어를 뚝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니 갑자기 낯설다. 저 머리 위, 커다란 장막처럼 드리운 채 우리를 내려다보는 저게 하늘이라는 걸 언제쯤 알았을까. 엄마가 내 엄마이며 폐가 부풀 때마다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게 공기이고 학교를 가지 않으면 결석이라는 것들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듯이, 자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하늘은 앞서 말한 것보다 더욱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걸지도 모른다. 


 내게 하늘은 줄곧 공상의 대상이었다. 공상을 저장해두는 창고이기도 했다. 특히 푸른 낮 하늘 보다, 어둑한 밤하늘 쪽이 더 취향에 맞았다. 과학에 취약한 뼛속까지 문과생 혹은 예능생이 밤이 되어도 빛이 아주 없는 게 아니라 그 강도가 약해질 뿐이라는 걸 알 리가 없으니, 밤의 하늘은 완전히 검정일 것이란 통념에 벗어나 이따금 적당히 푸르스름한 밤하늘이 펼쳐질 때면 야 이거 참 기묘하다며 홀로 경탄에 빠지곤 했다. 딱 머리위에 뜬 하얗고 뿌연 달덩이는 마치 내 마음에 담긴 공상의 원천이 저런 모양일 것만 같아 괜스레 동질감을 갖기도 했고, 아무튼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굴리길 좋아하던 열몇 살의 꼬마에겐 참으로 좋은 말벗이자 친구가 아닐 수 없었다. 








'물결' 빛, 물, 색. 세가지로 그려낸 두번째 밤하늘. All_rights_reserved_by.HayanBam





밤하늘을 담고, 찍고. 


 사진을 찍고 관련 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하나의 강박증이 생겼다. 뭐든 내 미감에 맞다 싶으면 찍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증. 이건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의 독특한 면을 잡아낸다는 것과, 시간이 흐르면 당연하게도 떠올리지 못하는 지나간 과거를 요모조모 추억할 수 있다는 순기능을 하기 때문에 많은 습관 중 결코 관둘 수 없는 습관으로 아주 자리 잡았다. 개중에서도 밤하늘이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2G 핸드폰을 쓰던 어릴 때와는 달리 DSLR 못지않은 기능을 가진 아이폰 카메라로, 이젠 단순히 공상만 하는 게 아니라 아껴뒀다가 낮에도 보려고 찍어둔 밤하늘 사진이 거뜬히 수백 장은 넘을 거다. 


 너는 왜 밤하늘을 이렇게 좋아해? 

 하늘이 잔뜩 찍힌 내 사진첩을 넘겨보던 친구가 그렇게 물었다. 그러게. 자아 없는 대답을 하고 보니 스스로도 궁금했다. 무슨 생각으로 좋아하고 찍어서 간직하는 건지. 드문드문 흩어져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 생각을 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단순히 찍기만 하는 걸 넘어서서 '나만의 밤하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어두워서 눈부시지 않다. 낮엔 쨍한 빛 때문에 제대로 하늘 보기가 어렵다.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은 어쩔 땐 윤기 자르르 흐르는 비로드 같기도 하고, 또 어쩔 땐 거칠거칠한 사포 같기도 하고. 특히 좋은 이유는 반짝거리는 별이 우수수 흩어져있기 때문인 것 같다. 별자리를 찾아 손으로 그어보고, 하나 반짝 떠서 빛나는 저게 금성인지 북극성인지 엉망인 상식을 갖다 붙여보기도 한다. 손톱 달이 천천히 쪄올라 보름달이 되고, 보름달이 또다시 야금야금 선으로 그은듯한 반달을 지나 손톱 달까지 주기적으로 달살이 쪘다 빠졌다 하는 게 꼭 다이어트를 성공했다 실패했다 반복하는 나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어느 것 하나 머물러있지 않고 계속 변하고 바뀌는 모습이 꼭 누군가가 밤하늘이 잘 굴러가도록 관리하는 느낌이랄까.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리면서 뭐 하나 그대로 머무르는 것 없이 매일 새롭도록. 그런 변화무쌍함을 바라보며, 영감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갖다 붙이기엔 너무 보잘것없지만 아직까지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나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오로지 나만의 밤하늘을 만들고 싶어서. 

 


'오로라2' 빛, 물, 색으로 만들어낸 세번째 밤하늘. All_rights_reserved_by.HayanBam



 누군가 예술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전혀 동떨어진 요소를 조합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한 플래시 빛, 색 필름, 물이 가득 담긴 투명한 페트병이 만나 천정에 새로운 밤하늘을 그려냈다. 어룽거리는 파장은 빛이자 물결이었다. 온몸 가득 녹색 오로라가 드리운 하늘 아래에 와있는 것 같았고, 푸른 물이 가득 채워진 수조를 구경하는 것 같기도 했다. 천정에 발려진 벽지가 반짝거리는 입자를 머금었다는 것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건 참으로 그 시간과 그 순간에 온전히 나 홀로 가진 유일한 자유였다.


 결국 내게 밤하늘이란, 이 좁고 답답한 현실엔 절대로 풀어놓을 수 없는 재능이 그나마 맘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자, 싹을 틔울 수 있을 때까지 남몰래 꼭꼭 숨겨둘 수 있는 비밀스러운 금고다. 무한한 공상과 상상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 또 그걸 비밀스레 저장해둘 수 있는 창고. 밤하늘을 바라보고 관찰한다는 건 결국 내가 가진 조그만 재능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각자만의 밤하늘을 가질 수 있도록, 그렇게 또 하나의 생각을 내 밤하늘에 풀어본다. 







공상이 가득 담긴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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