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 호 -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걸까. 그걸 떠올리기엔 이미 너무 아득해져 버렸다. 어느 날 펼쳐 본 옛날 접착식 앨범들에 취해 시작했을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대리만족으로 시작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허세였을 수도 있다. 세간에 부는 아날로그 바람에 따라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 형편없는 사진 솜씨에 기죽어 뭔가 특별한 걸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필름 카메라는 무엇을 어떻게 찍든, 보정을 하지 않아도, 그 옛날 부모님들의 사랑이 담긴 솜씨를 그대로 구현해주니 말이다.
한동안 필름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덜컥 필름 카메라를 사(버리)도록 부추긴 건 코앞으로 다가온 제주여행이었다. 구체적으로 찍고 싶은 무언가가 있으니 추진력이 생겼다. 오랜만의 여행. 앞으로 졸업학년을 다니고 취업준비를 하다 보면 오랫동안 하지 못할 여행. 그래서 더 특별하게 남기고 싶은 여행. 여러모로 간절한 여행이었다. 이 여행만큼은 꼭 필름 카메라로 찍고 싶었다.
카메라 상가 앞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상점을 들락날락 모델을 알아보고, 가격을 알아보고, 그러다 결정을 못하겠어서 우선 저녁을 먹고, 다시 알아보고 한 끝에 내 첫 필름 카메라 minolta x-700을 만났다. 무엇이든 처음이란 건, 이토록 의미가 있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그러나 필름 카메라는 시작이 그저 시작이었다. minolta x-700은 수동 카메라여서 일일이 필름을 넣고 감고 빼는 법을 알아야 했고, 그 방법은 이상하게도 볼 땐 알 것 같다가도 막상 해보면 모를 것들이었다. 필름 종류도 아직 꽤 다양하게 남아 있어서 어떤 필름이 내 카메라에 어울릴지 고민도 해봐야 했다. 촬영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제주에서 한 롤을 채우고 나서 바로 카메라가 고장 나 버렸다. 셔터가 눌리지 않았다. 디지털 세대로 접어들면서 필름 카메라 생산이 중단되고 시중엔 중고만 남았다. A/S를 거쳐 새것처럼 재탄생했지만 중고는 중고, 이렇게 말썽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게 내 경우일 줄이야. 비행기를 타고 온지라 당장 수리하러 갈 수도 없었다. 속상한 마음을 안은 채 여행을 마저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필름은 여러모로 사진사를 참 속상하게 만든다. 촬영한 결과물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찍어야 할지, 아니면 이만 자리를 떠도 될지 고민이 된다. 디지털카메라처럼 그 자리에서 여러 장을 찍기엔 한 롤당 4~5천 원 가까이하는 필름과 스캔 값이 머릿속을 맴돌아 주저하게 된다. 어쩔 땐 정말 순간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했던 사진이 엉뚱하게 현상되기도 한다. 한 롤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속상함에 밤잠까지 설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필름 사진을 사랑한다. 예상과 달라 속상한 경우가 있는 반면, 예상외로 잘 나와 나를 기쁘게 하는 사진들이 작업을 계속하게 만든다. 요즘은 망친 사진이란 없다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필름 카메라는 필름을 잘못 감아 상처가 나거나 구겨진 사진이, 방심한 사이 빛이 새 불에 탄 듯한 사진이, 초점을 잘못 맞춰 흐리게 나온 사진이,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곤 한다.
흔히 보던 풍경도 필름에 담으면 남다르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일상 어느 한순간도 쉬이 지나칠 수 없다. 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얻은 셈이다. 오늘도 나는 필름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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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ing location is Je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