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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Mar 17. 2024

낯선 이름

조용히 불러불 뿐

비가 내렸다, 그 날은.

그녀의 눈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녀와 함께 지낸 시간이 제법 긴 것 같은데, 서로의 깊은 곳 이야기는 별로 해 본 적이 없고 단 둘이 만나본 적도 없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유난히 밝고 명랑했던 것,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았던 것, 말을 재잘거리듯 했던 것, 항상 적극적으로 나서서 뭔가를 했던 것.     

 

이후에 친구들에게 전해 들었던 바에 의하면, 아프면서도 목소리가 여전했다는 것.     

비가 내리던 날, 그녀는 그렇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떠났다.      


몇 해 전, 아는 동생 두 명이 암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적이고 슬프긴 했지만, 그것이 내 것으로 체화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친구의 소식을 듣고는 온통의 슬픔이 내 속으로 달려들었다. 리트머스지가 물을 흡수하듯.     


그러고 보니, 동기들끼리의 단톡방이 만들어진 것도 그녀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친구의 소식을 듣기 위해,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누군가가 단톡방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간간이 그녀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치료는 잘하고 있는지 등의 대화가 오갔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몸이 저릿하게 아파와서 그 대화들을 피해버리고 싶었다. 누군가 아프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나는 그것이 마치 내 아픔이 되는 것처럼 온몸이 같이 아파오는 경험을 하곤 한다.      


2년 정도의 항암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중 아무도 그녀의 끝이 그렇게 빨리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겁이 나서 도저히 기도할 수 없었다. 너무 겁이 나서 기도할 수 없는 건 마치 너무 무서워서 아무 소리도 지를 수 없는 것과 흡사했다.      


흐린 바다를 두고 웅얼거리는 혼잣말처럼 어떤 것도 전하지 못하고 내 몇 마디는 세찬 흔적이 돼 버렸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슬픔은 한 데 모였다. 비를 머금은 흐린 바다 위로 떨어지는 별처럼 갑자기 떨어져 버린 그녀가 흐릿하게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비처럼 그 날 밤새 울었다.      


사진 속에서 그녀가 웃고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사진 속에서 그녀가 활짝 웃고 있었다. 친구들과 찍은 모든 사진들에 그녀가 없는 곳과 때가 없었다. 시절을 떠올리다 그때의 우리들은 그냥 그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을 사는 우리들은 그때의 우리들과는 단절된 다른 사람들인 채 현실을 살뿐이고. 우리는 어릴 적, 서로를 너무 사랑하여 모두가 한 건물에서 살자고 했었다. 각자 결혼을 하더라도 모두 한데 모여서 살자고 그렇게 맹세했다. 지금은 맹세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우리는 한때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였던 사람으로 더 이상 서로를 궁금해 하지도, 서로의 안부를 묻지도 않은 채 각자 살아갈 뿐이다. 어른들은 여기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 어리고 순수했던 너희들은 다른 시공간에서 함께 하고 있기를.     


여전히 그녀를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지고 뜨거워진다. 그녀와 나, 그녀와 우리 사이는 더욱 서럽다. 너는 혹시 저기 먼 바다로 떨어지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무서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너무너무 무섭다고 아무에게도 말 한마디 못 하고 그렇게 끝끝내 밝기만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것이 더 슬퍼서 몇 날 며칠을 엉엉 울면서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볼 뿐이었다. 생전 처음 불러보는 이름인 듯 그 이름이 그렇게도 낯설었다. 마치 우리의 세계가 그토록 멀리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쩌면 모든 관계란 죽음이 다가와서야 좁아지는 것은 아닐는지.     


지금 가장 후회되는 건, 전화 한 통도 해보지 못한 채 그저 메시지 한 번으로 안부의 모든 것을 끝내고선, 내 생활에만 파묻혀 성실을 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별은 이별이 와서야 이별로 자각될 뿐.      


우리는 모두 정해진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들이지만, 정해진 시간이 당장 코앞에 다가오지는 않는다며 오늘을 위안하고, 옆에 있는 이들을 외면한다. 그리 중요하지 않는 문제에 성급히 말라가고, 따뜻한 말 한마디 내뱉기가 그렇게 힘들어 차가운 육신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당장에 죽음이 나의 문제가 된다면 화가 날 일도 없을지 모르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영원의 사랑을 표현할 텐데... 그것을 알고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오늘의 복잡한 감정 속에서 휘몰아칠 뿐이다.    

   

나는 또 이렇게 무언가가 닥쳐야만 겨우 깨닫고 후회하겠지.      

그녀가 떠나고 우리의 단톡방엔 침묵만이 남았다. 

이후의 대화를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하든, 우리의 대화는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질 테니.     


그렇게 죽음 위에는 어떤 것도 쌓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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