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화장실을 갈 때면 꼭 친구들이랑 손을 붙잡고 갔다. 먼저 볼일을 보고 나오더라도 친구를 기다려줬다. 심지어 화장실을 가고 싶지 않을 때조차 친구랑 같이 가서 기다려주기만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여학생들을 남학생들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사소한 것도 혼자서 한다는 건 뭔가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대학에 갔을 때 한 친구가 혼자서도 병원을 잘 다니는 것을 보며 '저렇게 혼자서도 병원에 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건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학생이었을 때조차 병원만큼은 혼자서 갈 수 없었다. 아니, 걸어다니는 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 친구만큼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다녀본 적도 없는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아이의 때를 지나 어른의 때에 접어들면 인간은 누구나 홀로설 준비를 한다. 물론 아이일 때부터 그러한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이미 홀로선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자명한 것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컸든, 그렇지 못했든 모두 어른이 되면 자립을 하고, 독립을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다다라야만 한다. 이는 간혹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 어른이 되기가 너무 싫었다. 모든 걸 이제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게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독립적이 된다는 것은 곁의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있지만, 곁의 누군가가 없을 때도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아기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아기들은 엄마가 잠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불안해한다. 첫 아이를 키울 때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했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문을 열어놓고서 볼일을 봐야만 하는 상황은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기는 점점 자라서 엄마가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울지 않게 된다. 이를 대상항상성이라고 한다. 이는 어떤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대상이 실존하고 실재하는 것을 알게 되고, 물리적으로 떨어져있어도 곁에 있는 것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몸은 어른이 되었어도 이 대상항상성을 갖지 못한 심리적 미숙아들이 꽤 많다.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느낌에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귀던 사람이 이별 통보를 하면 자신을 배신한 나쁜 사람으로 결론내리고 저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는 나를 차버린 사람을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너 때문에 내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것이 두렵거나 잘 안 되면 상대를 헤치기로 작정하는 사람들까지도 있다. 이러한 사고나 태도는 상당히 분열적이다. 분열적이라는 것은 모 아니면 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인식하거나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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