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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Mar 15. 2017

뉴욕 인간 생태계 관찰기

삼주차 뉴요커다. 

오늘은 눈폭풍이 불고 눈이 60센티나 쌓일거라는 일기 예보 덕분에 학교랑 회사들이 대거 문을 닫았는데, 눈이 많이 오지는 않았고 강풍에 우박 알갱이들이 회오리를 타며 날아다니고 있다. 

임시로 머무는 학교 기숙사는 맨하탄이라 하기도 부끄러운 할렘 위 비루한 동네에 있다. 뉴욕에서 제일 큰 병원과 의대 캠퍼스말고는 밖으로 나가면 영어가 제2외국어인 것 같은 라틴 아메리카의 작은 도시같은 느낌이다. 이번주 주말에 드디어 이사를 가는 곳은 여전히 할렘이긴 하지만 그나마 조금 더 시끌벅적한 동네다. 학교가 조금만 더 밑에 있었으면 긴 출퇴근을 감수하고서라도 브룩클린으로 갔을텐데. 정말이지 내노라하는 힙스터들은 모두 브룩클린에 산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학교에만 있으면 여기가 뉴욕인지 중국인지 알 수가 없다. 건물에 중국인이 정말 많다. 보건통계학부가 있는 6층은 교수부터 학생까지 거의 모두가 중국인이다. 우리 층은 정책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백인이 많다. 그래도 콜럼비아 의대에 제일 많은 외국인은 한국인이라고 하더라. 오피스 바로 옆 병원 본관에 매일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갈 때 마다 한국인같이 생긴 사람들이 꽤 많다. 뉴욕 자체에 한국인이 정말 많은 것 같다. 파리에 이년가까이 있으면서 만난 한국인들보다 여기서 삼주만에 만난 한국인들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몇 년 살아놓고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도 많다. 다들 내가 불어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하면 당연한건데 깜짝 놀란다. 나는 그 반응이 더 놀랍다. 특히 교포들은 내가 미국에 산 적이 없는 유학생이라고 하면 더 놀란다. 유창한 영어를 못하는 유학생들을 약간 측은하게 느끼는 교포들의 부심이 있는가보다 생각했다. 교수님은 내가 못배운 미국인들보다 영어를 훨씬 더 잘한다고 하셨다. 미국은 이상한 나라다.

뉴욕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왜그럴까. 여자들은 관심없어서 잘 모르겠고, 2,30대 남자들은 대부분이 대학생, 변호사, 금융맨, 의사, 연기자, 뮤지션, 디자이너인 것 같다. 좀 웃기다. JP Morgan에 일하는 사람들 진짜 많다. 사람들은 개를 과도하게 좋아하는 것 같고, 돈 좀 벌고 배웠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운동에 미쳐있다. 특히 남자들은 데드리프팅을 안하면 남자 축에 못끼는 정도다. 마른 남자를 찾아보기가 제일 힘들고, 뚱뚱하거나, 통통하거나, 어깨가 너무 넓은 근육돼지들이 많다. 기숙사에 딸린 짐이 공짜라서 한번 내려갔다가 짐승처럼 운동하는 사람들에 기가 죽어서 다시 안갔다. 방에서 요가매트 깔아놓고 앱 틀어놓고 조용히 운동한다. 날 좋아지면 조깅도 다시 시작해야지.

미국인들은 모르는 사람들한테 말거는 걸 정말 좋아한다. 공항에서 줄 서 있을 때 부터 시작해서 지하철을 타도, 바를 가도 모르는 사람이 말을 안 거는 날이 없다. 바텐더들과 스타벅스 직원들과 건물 보안요원들하고도 만날 때 마다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어주어야 하는 피곤한 나라다. 상대방은 내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못하면 미안해져서 그 날의 손톱 색깔이나, 옷 같은걸 칭찬해주고 넘어간다. 지하철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옆 사람들이 말을 건다. 얼마 전에는 친구랑 둘이 걸어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 친구하고 악수를 하면서 남자가 찻길 쪽으로 걷다니 젠틀맨이라 악수를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사람 열명은 나란히 설 수 있는 보행자 도로 한가운데 였는데. 이 사람들은 남들한테 술을 사주는 것도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몇 번을 주중에 심심한데 맥주 딱 한잔만 하자 하고 친구를 만났다가 옆 자리 사람들, 바텐더들이 건내주는 공짜 샷을 마시고 흥이 올라 새벽에 들어왔다. 

음식은 양이 정말 너무 많고, 사람들은 콜라나 소다를 입에 달고 산다. 요즘은 라멘과 만두를 먹는게 약간 대세인 것 같고, 좀 힙하다 하는 아이들은 수제 맥주, 위스키, 칵테일에 좀 과하다싶을 정도로 진지하다. 할렘은 겉으로 보기엔 아직 후지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꽤 많이 일어나 숨은 진주같은 곳들이 많아 그런 것들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브룩클린은 이제 윌리엄스버그는 너무 대중화되어 힙스터는 윌리엄스버그에 사는 걸 부끄러워할 정도라고 한다. 부쉬익이나 그린포인트, 아니면 더 바깥 동네로 약간 흐름이 옮겨가고 있다. 

뉴욕은 동성애자의 20%가 HIV 양성 보균자라고 한다. 워낙 심각한 문제라 뉴욕 시에서는 테스트부터 치료약, 예방약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HIV가 별 것 아닌 것이라는 인식이 심어져서 오히려 멋있어보이려고 양성이 되거나, 보균자인걸 뽐내려고 몸에 자기들만 알아볼 수 있는 문신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이건 옆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다. 

빨래 다 됐다. 빨래 가지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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