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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Aug 04.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크레타

따뜻함, 신화, 문화

2015년 11월 16일


이라클리온 공항 앞 노을


따뜻함- 베네치아 요새


니스가 잘 발달된 관광지였다면 여기는 정말 개발을 안 시킨 자연 그대로의 관광지였다. 그러다 보니 해안선에는 가로등도 없이 깜깜했고 간혹 지나가는 차의 불빛만이 비출 뿐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별들을 보니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해안선에는 야자수도 보이고 반대편 해안선 건물들의 불빛도 보였다.

드넓고 끝이 없는 바다와 별들 그리고 불빛. 이런 것들이야 말로 내가 평소엔 맛볼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93'


크레타 섬은 유럽여행 중 무리를 해서 일정에 넣은 곳이었다. 그리스는 아테네가 위치한 발칸 반도 외에도 수많은 군도가 밀집되어 있는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고 제주도 면적의 4배 이상 되는 거대한 크레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스 본토 여행은 기차나 버스와 같은 육상 교통수단으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키클라데스 제도나 크레타 섬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페리나 항공 이동이 불가피하다. 보통의 경우 배낭여행자들은 값 비싼 항공 이동보다 저렴한 페리 이동을 선호한다.


하지만 나의 그리스 여행에 문제가 생겼다. 10월까지의 성수기는 페리 운항이 정기적이지만 11월 이후에는 일부 페리 회사들이 운행을 중단하고 운항 편수도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 말인즉슨 내가 그리스의 섬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항공 이동이 강제적이라는 것을 뜻했다. 그리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테네, 산토리니 섬, 크레타 섬 어느 한 곳도 일정에서 뺄 수 없었기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아테네와 그리스의 섬을 오가는 항공편을 예약했다.


아테네 공항


그리스 여행은 처음부터 평탄치 않았다. 빈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에 도착한 후 다시 비행기를 환승하여 크레타 섬의 주도 이라클리온에 도착했다. 워낙 항공 이동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 터라 이라클리온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예약한 숙소가 위치한 레팀논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라클리온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비수기의 이라클리온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공항에서 택시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나는 결국 걸어서 버스 터미널로 이동하기로 했다.


11월임에도 불구하고 크레타 섬의 날씨는 후덥지근했고 배낭을 멘 나의 어깨는 깨질 듯 무거웠다. 나의 양 팔에는 물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나는 이빨을 꽉 깨물고 혼신을 다해 걸음을 옮겼다. 공항에서 30분 정도 걸어 나오자 이라클리온 시내가 나타났다. 나는 이동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라클리온 버스 터미널의 위치를 물었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된다고 위치를 가리키면서 대략적인 소요시간을 알려주었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영어를 할 줄아는 사람을 찾아주며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크레타섬 사람들은 친절했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았다. 10분이면 나온다는 버스 터미널은 30분을 넘게 걸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벌써 날은 캄캄해지고 도로를 따라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걷기엔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지만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계속 이동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에게해의 바닷바람이 시원해지려는 무렵 내 앞에 조그마한 이라클리온 버스 터미널이 나타났다. 나는 숙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피곤에 지쳐 곯아떨어졌다.


이라클리온 버스 터미널
레팀논 버스 터미널 앞


레팀논의 숙소에서 짐을 푼 후 나는 뭔가 하나라도 보고 와야 될 것 같아서 습관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나는 레팀논의 부둣가에 있는 베네치아 요새로 이동했다. 이곳은 옛 베네치아 공화국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나는 이 곳에서 크레타 섬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덥다고 느껴졌던 에게해의 바람이었지만 다시 한번 느끼는 바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깜깜한 밤하늘 안에서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레팀논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레팀논에서 바라본 크레타 연안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조용함 속에서 크레타의 따뜻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베네치아 요새



2015년 11월 17일


크노소스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


신화- 크노소스 궁전


궁전은 대부분 종교적인 제사를 지내는 곳이 많았다. 물론 다른 목적을 가진 곳도 많았다. 왕이 거주하는 거처나 학교 등도 있었으니까.

곳곳에는 돌 항아리와 프레스코화들이 있었다. 이 프레스코화들은 복원된 복제품들로 진품은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크노소스의 또 하나의 특징은 검은색과 붉은색을 사용한 기둥들이었다. 프레스코화들도 검붉은 색을 위주로 사용했다. 크노소스의 상징인 황소 그림도 볼 수 있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94'


크노소스 궁전은 크레타 섬에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 할 장소 중 하나이다. 크레타 섬에 온 목적 중 하나가 크노소스 궁전이었기 때문에 나도 하루를 할애해서 궁전에 방문했다. 궁전은 로마의 여느 유적지 같이 폐허처럼 보였다. 궁전은 왕의 거처라는 주거적 기능뿐 아니라 종교적 기능도 같이 수행했다. 이 때문에 궁전 내부에는 황소를 형상화한 프레스코화와 조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크노소스 궁전뿐만 아니라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도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굴된 대부분의 유물들이 대부분 여기에 있다.


크노소스 궁전
크노소스 궁전


크노소스 궁전의 특이한 점이라면 적흑의 기둥들과 황소를 형상화한 많은 조각들과 프레스코 화이다. 크노소스 궁전에서 황소에 대한 상징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BC 2000년경 크레타 섬을 통일한 미노스 왕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바칠 황소를 선물 받는다. 하지만 황소에 욕심이 생긴 미노스 왕은 황소를 바꿔치기하고 이에 대해 분노한 포세이돈은 미노스 왕의 아내 파시파에 에게 괴물을 임신하게 한다. 이 괴물이 바로 반인반수인 미노타우로스다. 미노스 왕은 이 괴물을 가둘 미로를 만들게 되고 현재의 크노소스 궁전으로 남게 되었다. 후에 이 이야기는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는 신화 속 이야기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아테네의 영웅인 테세우스가 크노소스의 상징인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는 것은 그리스 본토의 헬레니즘 문명이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을 정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고고학 박물관 한쪽에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변화한 크레타 섬의 조각상들을 전시되어 있었다. 헬레니즘의 영향 하에 들어온 크레타 섬에는 더 이상 2차원적이고 적흑의 색상을 이용한 프레스코화가 지속될 수 없었다. 크노소스 궁전이 발굴되지 않았더라면 미노아 문명은 영원히 신화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5년 11월 18일


하니아 부둣가


문화- 그리스 한류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스 사람이냐고 물어봤더니 그리스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리스 나프폴리온에 사는데 크레타 레팀논에서 대학을 다니다 잠시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간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갑자기 놀라 했다. 한국에 대해서 안다고 하더니 갑자기 F4 이야기를 꺼냈다 ㅋㅋ 꽃보다 남자를 봤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피노키오도 아는 거였다 ㅋㅋㅋ 나는 나보다 더 잘 아니까 놀랐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95'    


크레타 섬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하니아는 이라클리온, 레팀논과 다르게 건물들이 깔끔하고 관광지스러운 느낌이 강한 곳이다. 흰색 건물 위주인 크레타 섬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이곳의 건물들은 다채로운 색상이 많이 사용되었다. 하니아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하니아를 반드시 들러야 했기 때문에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나는 하니아의 성벽에 올라 잠을 청하며 휴식을 취했다.


하니아 도심의 그리스 정교회


하니아 버스 터미널에서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버스에 탑승했을 때의 일이다. 버스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겨우 남아있는 자리를 찾아 앉게 되었다. 내 옆에는 그리스인처럼 보이는 학생이 타고 있었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내 옆에 앉아있던 사람은 그리스 나프폴리온 출신인데 레팀논에서 공부를 하다가 잠깐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녀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놀라워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한국 드라마와 K-pop을 즐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꽃보다 남자, 피노키오와 같은 한국 드라마와 빅뱅, 샤이니 등의 아이돌 그룹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연예계 소식까지 꿰고 있었다.


중국, 일본, 동남아 지역의 한류는 이미 그 파급력이 입증되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K-pop 노래와 가수들의 콘서트에 열광하는 팬층은 날이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가 없던 서구권에서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엔 그리스, 터키와 같은 중동 지방이나 러시아를 포함한 동구권 국가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종영된 지 얼마 안 된 태양의 후예는 대한민국에서의 인기와 함께 한류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문화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이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세계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정보의 창이며 소통의 창이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우리가 중국을 생각하면 판다, 쿵후, 만리장성을 떠올리고 일본을 생각하면 벚꽃, 만화, 오사카 성을 떠올리듯 문화의 내용물은 그 나라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한류를 직접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는 뜻은 한국 문화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우리의 책임도 막중해짐을 의미한다.


하니아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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