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봄에 태어났다. 생일 즈음엔 제철을 맞은 봄나물 요리들이 식탁에 올라온다.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해주는 쑥떡, 그리고 쑥전을 특히 좋아한다.
환절기인 3월은 내게 고비인데, 추운 겨울 내내 별 탈 없이 지내다가 날씨가 풀리면 꽁꽁 얼었던 몸의 긴장도 풀려서인지 크게 아프곤 한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우리 딸이 쑥을 안 먹어서 그런가'라 되뇌며 식사에 더 신경을 써주셨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내가 쑥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무탈하게 봄을 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게 쑥은 부모님의 사랑과 봄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일종의 소울푸드랄까.
올해 생일에도 어김없이 쑥떡과 쑥전을 먹었다. 그제야 비로소 봄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유의 향긋함과 적당한 쌉쌀함이 추운 계절은 지나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찰기가 묻어있는 쑥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자니 바람에 살랑거리는 초록 들판이 떠올랐다.
엄마가 해주신 나의 소울푸드, 쑥떡과 쑥전
우리 집 쑥 요리에는 사람의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바깥에서 먹는 어떤 것과도 대체될 수 없는 힘이 있다.
우선 쑥을 시장에서 사지 않고 아버지가 자주 다니는 산과 들에서 직접 채취한다. 아버지는 쉬는 날에 친구를 따라 산 이곳저곳을 다니며 약초와 산삼을 캐는 취미가 있다. 종종 어머니도 따라가서 산에서 몇 박을 하고 오는데, 집에 돌아올 때는 어김없이 큰 자루에 약초를 가득 담아오셨다. 그 후 며칠간 거실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각종 약초를 말렸다. 잘 말린 재료들은 냉동실 등으로 보내져 일 년 내내 요긴하게 쓰인다. 봄이 되면 쑥을 가득 캐고, 절반은 방앗간에 맡겨 쑥떡을 만들고 절반은 잘 보관했다가 전을 부친다.
쑥을 찹쌀가루와 5:5 비율로 섞어 떡을 만들면 찰기가 가득하면서도 쑥향이 진한 쑥떡이 탄생한다. 어느 한쪽의 주장이 강하지 않고 적당히 조화로운 맛. 그야말로 황금 비율이다. 이렇게 만든 쑥떡을 냉동실에 보관하여 봄과 여름에 걸쳐 생각날 때마다 먹는다. 콩고물을 묻혀 고소하게 먹기도 하고, 꿀을 발라 달콤함과 윤기를 더해 먹기도 하며, 납작하게 펴서 기름에 부쳐 전처럼 먹을 때도 있다.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너무 맛있어서 금새 한 그릇을 뚝딱하기 십상이다.
쑥전은 말끔히 씻은 쑥에 찹쌀가루를 버무린 후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구워 만든다. 우리 집에선 부침가루나 밀가루를 쓰지 않고 찹쌀가루를 소량 묻히는 수준으로 더하는데, 이런 조리법이 쑥 본연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준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쑥에 쫀득함이 더해져 코와 입이 즐거운 맛이다. 이것도 먹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기에 한 번에 최대 두 장만 만든다. 여기에 가끔 새우, 오징어 등 해물을 더하기도 하는데 쑥과 해물의 조합이 꽤 좋다. 시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해물파전보다 식감과 향이 더 좋다고 해야 하나?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거다. (아버지가 만든 해물쑥전 쿠킹로그)
곧 추석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을 앞두고, 문득 부모님의 사랑이 듬뿍 들어간 쑥떡과 쑥전이 먹고 싶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