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사이 국제의료산업에 흘러들어 관련 정부사업에 대한 법률자문을 시작한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 동안 많은 정부관계자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산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였던 중앙행정기관 공무원들과 산하기관 종사자들의 고민과 애환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직 행정사무 종사경력이 많지 않거나 혹은 경력이 많다 하더라도 규제분야에서만 경력을 쌓아왔던 중앙행정기관 종사자의 경우에는 산업진흥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철학적 혼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아직 민간산업이 자리잡지 못한 미개척 신성장 산업분야에 첫발을 내딛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정책을 실시하는 경우 이러한 양상이 더 도드라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리 비전있는 산업분야라 하더라도 국가가 직접 산업주체가 될 수는 없다 할 것인 반면(철도, 수도, 전기와 같은 국가기반사업을 배제한다), 정부가 과감하게 주도하여 해당 산업을 끌고 가지 않는다면(속칭 '멱살 잡고 끌고 간다'는 것) 개별 산업주체들은 각종 리스크(경영상, 규제상의 위험성) 등을 이유로 해당 산업에 대한 진출을 꺼리게 되어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결과가 발생하게 될 것인바, 중앙정부는 해당 산업에 대한 적극적 포지션과 소극적 포지션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 산업진흥정책을 실시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 다반사인데,가장 큰 문제는 그 '균형점'이 어디인지를 찾는 것이 난해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균형점을 찾기 위한 고민 끝에 선택하는 솔루션 중 하나는 '보조금 사업'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행정부처가 보조금 사업을 실시하는 이유는 중앙행정기관이 개별 산업분야에 직접 뛰어들지 않으면서도 민간산업 주체에게 해당 산업분야에 진출하기 위한 체력(자금)을 보충하는등 실패의 위험을 덜어줌으로써 최종적으로 해당 분야의 민간시장기반을 형성하는데 나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이와 같이 오랜 시간 노하우가 축적된 사업을 실시하는 경우와 달리, 새로운 유형의 사업을 실시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와 같은 관행적 관점만으로는효과적인 사업 방법을 수립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할 것인바, 이 경우에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산업진흥정책에서 국가가 담당하는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한다할 것이므로, 이하 이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사실 이에 관하여 절대불변의 진리같은 것은 없겠으나 관련 내용을 최대한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다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기술하게 되었다.
한 때 즐겨했던 게임 중 [오버워치]라는 게임이 있다. 6명이 한 팀이 되어 상대팀과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으며 거점을 쟁탈하는 게임인데, 팀원은 크게 3가지 포지션으로 분류되며 세부적으로는 [탱커(Tanker), 딜러(dealer), 힐러(healer)]로서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탱커(Tanker) : 공격력은 약하지만 높은 체력과 팀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벽을 가지고 있다. 주로 공격에 유리한 위치에서 방벽을 들어 상대방의 공격을 버텨줘서 후방에 있는 딜러와 힐러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2) 딜러(dealer) : 공격력이 강하지만 체력이 낮아 탱커와 힐러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상대방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한다. 반면 탱커가 열어준 공간에서 적절한 공격을 한다면 승리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3) 힐러(healer) : 공격력도 약하고 체력도 낮다. 그렇지만 탱커와 딜러의 체력을 지속적으로 보충해줌으로써 팀원이 낙오되는 것을 막는다.
이 게임에서 승리를 하기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팀원이 각자의 포지션에 맞게 플레이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공격력이 약한 탱커가 방벽을 내리고 공격을 하겠다고 덤비거나, 체력이 약한 딜러가 탱커의 보호 없이무모하게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거나, 아군의 체력을 보충해줘야 할 힐러가 공격을 하고 있을 경우, 그 게임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위와 같은 팀 구조와 역할은 산업지원정책의 추진체계와도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다. 신산업분야에 발을 내딛는 민간기업은 딜러(dealer) 포지션으로서 비록 체력은 약하지만 결국 게임의 승부를 가르는 칼날을 쥐고 있는 존재라 할 것이며, 중앙정부는 이와 같이 딜러가 게임의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방벽을 들고 산업활동을 위한 공간을 열어주는 탱커(Tanker)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간혹 정부가 개별 산업분야를 육성하겠다며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플랫폼(애플리케이션 등)사업을 시도하겠다고 선언하는 경우가 있으나 실제로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사업초기에는 정부의 강력한 주도 하에 해당 산업이 육성되는 것과 같은 외관이 형성될 수 있으나, 해당 산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국 민간기업의 유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미 정부가 해당 산업에 깃발을 꽂아버리면 후발 기업이 발을 내딛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실무상 공공기관이 이러한 영리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도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탱커가 상대방 딜러를 잡겠다고 적진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데, 라인하르트의 망치로 적군 위도우메이커를 잡을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라 할 것이다(게임을 모르는 분께는 죄송;).
정리하면, 신산업 분야의 진흥정책을 실시함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아직 체력과 유지력이 약한 민간기업이 해당 산업분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산업적 공간을 열어주고(자금지원, 규제완화 등의 조치), 외부(특히 대기업 또는 외국기업)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적정 범위 내에서의 방벽(중소기업 보호조치 등)을 구축함으로써 해당 산업분야가 정부의 보호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성장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하다보니 게임의 예를 들었으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산업진흥정책에서의 정부역할론이 이와 같이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며, 실무를 담당하는 정부행정관료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더 나은 철학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어디에서도 칭찬 한 마디 듣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정책을 고민하고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 모두를 응원한다. 그런데 칭찬 좀 안들으면 어떠한가? 비록 정확한 내부사정을 모르는 국민들이 비난의 화살을 퍼붓더라도, 서로 칭찬하고 다독이며 각자가 인식하고 있는 직업적 사명을 실천해나가는 것이 관가의 숙명아니었던가? 다 함께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