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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석변호사 Jun 22. 2022

#Scene2-한계를 인정하다.

결핍이 있어도 당신은 충분히 가치있는 사람이다

https://www.lifehack.org/



0.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오랜 시간 지속된 가정의 불화 끝에 결국 부모님의 이혼을 겪게되었던 그 시절의 나는 도저히 가정 내에서 안전과 사랑을 느낄 수 없었기에 일상의 모든 것을 학교에 의지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나의 모습은 내 정체성의 전부와 같았고 이러한 이유로 교내에서의 활동은 언제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그러다보니 중학교 1학년 때 학생회부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고, 어느덧 2학년이 되어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기에 이르렀다



1.

학생회장 선거에 함께 출마했던 경쟁자는 당시 가장 가까운 친구(시쳇말로 '베프')였고, 우리는 선거유세기간 중 치열하게 선의의 경쟁을 펼쳤으며 드디어 투표일에 이르게 되었다. 개표는 양측에서 각 선정한 동수의 개표위원들이 참여하여 진행하였고, 약 1시간 가량의 시간이 경과한 후 개표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30여표 차이의 신승. 내가 이겼다. 선거 시작때부터 누가 이기든 관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우리 둘다 서로 고생했다며 어깨를 토닥이고 친구는 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사건은 그로부터 약 10분 후에 벌어졌다.



2.

개표결과가 교무실에 보고된지 대략 10여분이 지난 때였을까. 학생주임 선생님이 개표장으로 들어오신 후 무효표와 기권표에 대한 재분류를 하겠다는 말을 전달하였고, 혼자 칠판 앞 넓은 책상에 앉아(개표장은 학교 2층의 가사실습실이었기에 책상이 넓었다) 표를 다시 분류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표를 분류한 후 뒷면 칠판에 개표 결과를 다시 기재했고, 개표결과는 달라졌다. 50여표 차이로 내가 졌고 친구가 당선되었다



3.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친한 친구가 당선된 것은 축하할 일이었고 실제로 축하를 전하기도 했지만, 갑작스러운 재개표에 당선인이 변경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재개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고민을 했다. 함께 선거운동을 했던 친구들도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나의 의사를 물었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경과한 뒤(10분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고 친구의 당선을 확정하였다.



4.

비록 중학교 2학년의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가정환경과 학생에 대한 평가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학생회장의 부모가 육성회장으로 선출되어 학교사업에 재정적 지원(선생님들 회식비용 찬조 등)을 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바 만일 내가 학생회장이 된다면 적어도 1년간 학교 업무추진비 예산에 구멍이 생길 것이 분명했고, 반면 이번 학생회장 선거에서 경쟁을 치른 친구의 부모님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의사 선생님으로서 이미 과거부터 학교에 상당한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었던 사실도 나는 알고 있었다. 선거활동을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미안했고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학교운영의 관점에서 본다면 내가 깨끗하게 물러나주는 것이 맞았다. 당선된 친구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선거활동을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5. 

그날 이후 인생의 전환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나는 그동안 가정 내에서 얻을 수 없었던 안정, 사랑, 인정 등을 학교에서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어두운 가정으로부터 스스로를 이격시킨 후 학교 내에서 직접 나의 영역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학교활동에서도 일정한 수준(이를테면, 학생회장이 되는 것)에 이르러서는 가정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가정환경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 내가 처한 환경에 대한 억울한 감정이 슬쩍 나타나려 하기도 하였지만 이내 이러한 감정은 사라졌고 나는 내 한계를 인정하기로 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아 그 범위 내에서 나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6.

이 사건 이후 나는 학창시절 내내 단 한번도 모임의 대표자가 되거나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내가 나의 힘만으로 일구어낼 수 있는 영역이었던 공부와 성적에만 집중했고, 비록 결과가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부끄럽지는 않을 정도의 대학 간판을 얻어냈다(대학입시 준비 과정에서 겪었던 또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정리할 예정이다). 한편 나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서지 않는 삶'에 익숙해졌고  어느덧 인생의 관성이 되어 학교를 졸업한 후 아직까지도 어느 조직에서든 전면에 나서는 일에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은 편이다(물론 직업적 영역에서 이와 같은 업무가 주어진다면 직업소명의식에 따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7.

갑작스러운 재개표와 당선인 변경이 있었던 그 날의 일이 나에게 약이 되었는지 독이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노력의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일 재개표 없이 학생회장에 당선이 되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결국 또 다른 한계에 봉착한 뒤 더 큰 실망감과 무력감에 고통받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만 이와 같이 내 한계를 인정한 뒤로 더 이상 내 환경에 분노하거나 억울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는 점은 명확한 것 같다. 



8.

누구나 다른 환경을 가지고 살아가며, 다른 환경 속에는 '결핍'이 내포되어 있다. 채울 수 없는 결핍을 바라보며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살아갈지, 아니면 그 결핍을 인정하고 내가 채워갈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며 살아갈지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이 자기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하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겠으나, 아무쪼록 너무 애쓰지는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세상에 결핍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더라도 당신은 충분히 매력있고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문의 : 정현석 변호사 (법무법인 다우)

연락처 : 02-784-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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