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땅 미국 속 앨커트래즈 교도소
황금연휴를 기점으로 코로나 감옥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전국에 쏟아졌다.
예상했던 일이다.
부산행과 킹덤의 좀비는 한국인을 잘 파악한 캐릭터다.
원조 서양 좀비들은 느긋하게 제자리에서 맴돌던데, 한국에서는 선비였던 사람도 좀비가 되면 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뛰어다니고 다른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일도 근면 성실하게 한다.
나태지옥에 가면 한국인은 나밖에 없을 것 같아서 영어 공부를 좀 해야겠다.
좀비도 느리면 못 참는 한국인들이 이 정도 얌전하게 집에 있었던 쪽이 신기한 일이다.
집에서도 생산적이고, 활동적이고, 발전적인 일을 하려 하는 사람들이 커피, 달걀, 초콜렛 휘젓기의 무의미함을 깨달을 때가 되긴 했다.
때맞춰 카페들이 달고나커피를 사 먹을 수 있는 메뉴로 만들었으니 이제는 팔이 아닌 지갑에 힘을 주고 밖으로 나갈 차례다.
코로나 좀비들은 제주도를 선두로 전국 관광지로 향했다.
이성을 잃은 계기가 휴가와 여행이라니.
한국의 자유란 여행의 자유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감옥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활동적인 한국인들과 달리, 코로나 전후로 딱히 삶에 변화가 없는 나는 문제없이 살고 있다.
원래 외출을 싫어하고 심지어 코로나보다 쓸모없는 백수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못간다는 점은 좀 아쉽지만 코로나 직전에 장기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텅장을 생각하면 이런 핑계로 가만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감옥 생각이 나긴 난다.
코로나가 없던 2019년의 마지막에 다녀왔던 감옥.
물론 죄를 짓고 방 안에 갇혔던 경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악명 높은 범죄자를, 지금은 들떠 있는 관광객을 수용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앨커트래즈섬 감옥을 말하는 것이다.
낭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관광 명소 교소도 말이다.
자유의 땅 미국에도 감옥은 있다.
아무리 자유가 중요해도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놈들까지 풀어 놓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갔던 앨커트래즈섬의 미연방교도소는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교도소 역할이 끝났다.
지금의 앨커트래즈는 샌프란시스코의 피어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인기 관광지다.
샌프란시스코 피어 부근을 다니면 종종 보일 정도로 육지와 가깝다.
얼핏 보면 탈옥이 가능해 보이지만 물살이 거세서 불가능에 가깝고, 실제로 탈옥 중 익사한 죄수들도 있다고 한다.
섬 속에서도 언덕 위, 언덕 위에서도 철창 안에 갇혀서도 탈옥을 시도했다고 한다.
목숨을 건 인간의 자유의지란 대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안 된다.
익사를 감수하고서라도 탈출하고 싶었던 폐쇄성을 가진 앨커트래즈는 범죄자들의 지옥이었다.
하지만 살인자나 강도 같은 범죄자에게 감정이입 할 이유가 없는 선량한 시민에게 알카트라즈는 좋은 전망대다.
이 섬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적당한 거리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인다.
언덕 위에 촘촘하게 들어찬 도심에서 배를 타고 떠나 섬에 도착하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도 든다.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 들어가면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이 범죄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여기는 미국이고, 나는 돈을 내고 들어간 관광객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유란 자본의 자유다.
돈을 냈다면 내지 않은 사람보다 몸도 마음도 도덕성도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양반이 상인을 무시하던 조선 이후에 세워진 대한민국을 사는 유교걸이다.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는 아니지만, 북한을 적으로 알고 컸음에도 은연 중 자본주의를 얕잡아 보는 시각이 있었던 것 같다.
미국 여행 중에는 그 시선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커지는 물약과 작아지는 물약을 먹듯이 커지고 작아지고를 반복했다.
자본으로 굴러가는 세상에 치가 떨릴 때도 있었지만 합리성을 인정한 순간도 많았다.
뉴욕에 간다면 꼭 봐야 한다는 ‘슬립노모어(Sleep No More)’라는 공연의 공연장에는 의자가 없다.
호텔이었던 건물 전체를 개조해서 만든 공연장 전체가 무대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건물 곳곳을 뛰어다니며 연기하고 관객은 배우를 쫓아다니며 연기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계단과 건물 전체를 뛰어야해서 공연 중간부터는 다리가 풀린다.
그런데 이런 공연을 휠체어 탄 사람과 함께 봤다.
그 사람이 장애인이었는지 잠깐 다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스텝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끌며 함께 배우를 따라다녔다.
한국에서는 장애인과 마주치는 일이 비정상적으로 적기 때문에 활동적인 체험을 휠체어와 함께하는 경험은 꽤 신선했다.
사실 장애인이 존재하는데 만나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한 일이다.
평생을 산 한국에서 만난 장애인보다 미국에서 한 달 동안 만난 장애인이 더 많았던 기억이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내가 경험한 미국에서는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이 저상버스에 스스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올라오면, 버스기사는 노약자용 좌석을 접어 장애인용 자리를 만들고, 휠체어에 고정장치를 달아 준다.
이 과정은 당연히 세일러문의 변신 시간 보다 오래 걸리지만 승객들은 그냥 기다린다.
버스 운행이 늦어진다고 총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사회 전반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분되지 않는, 장애인을 평범한 대중으로 보는 복지의 예시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미국에서 장애인의 장애 자체가 차별받는 일은 한국에서보다 적었고, 그들 역시 평범한 대중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 끝 무렵엔 그건 다 내 착각이 아니었나 하는 자괴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이유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해야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버스의 승객들이 오랜 탑승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는 자신이 차를 소유할 돈이나 택시를 탈 돈이 없어서 장애인과 같은 버스를 탔다는 자본의 논리를 인정하기 때문 같았다.
도덕성이나 인간성은 내던진, 논리성에도 문제가 있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했다.
그리고 그게 별로 나빠 보이지 않았다.
여행 끝 무렵의 나는 조금 엉망진창이 된 시각도 몇 개 갖게 되었으니까.
공연장에서 휠체어 탄 사람을 보고, 시내버스에서 장애인을 태우기 위해 운행을 멈춘 기사를 보고 놀란 이유는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을 광경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런닝맨처럼 뛰어다녀야 하는 공연이 있다면 장애인이 관람 할 수 있을까?
버스는커녕 병원에서도 장애인을 보기 힘든 나라에선 아직 조금 어렵다고 본다.
여행 전의 나는 인간 활동의 범위와 기준을 장애와 비장애로 봤고, 이후의 나는 정당한 요금을 냈는가로 봤다.
장애인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을 냈다면 남들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장애인들이 같은 돈을 내게 하려면 그들에게도 돈을 벌 직장이 있어야 한다.
직장과 소득이 생기면 비장애인들이 돈을 내고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비이성적인 생각을 하면 장애인들에게 더 높은 요금을 받으면 비장애인들도 할 말이 없다.
독창성 없고 일차원적이며 무례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라는 것이 경제논리와는 별개로 참 단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대표이자 상징인 만큼 그것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보여준다.
얼핏 보면 법과 공권력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이유가 성숙한 시민의식과 강력한 법 때문 같지만 실상은 벌금이 많아서다.
그래도 자본주의국가에서 살던 사람인데 원조 자본주의는 너무나 날 것이라 이해할 수 없는 범주였다.
앞으로도 이해하긴 틀린 것 같다.
자유국가 미국에도 감옥은 있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
선악의 개념이 있는 상태라면 돈으로 공정하게 만들 수 있는 부분 정도는 그렇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들은 장애인에게서도 요금을 받기 위해 모든 버스에 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공간을 확보하고, 같은 요금을 낸다면 평등하게 태울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이 버스요금을 벌게 만들기 위해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
자본과 법으로 보장되는 자유라면 무슨 수를 써도 얻을 수 없는 자유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자유란 돈의 자유니까.
돈이 떨어진 백수의 혼란스러운 생각이다.
조금 더 이성적인 생각을 하려면 일거리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