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용 Feb 08. 2021

Day 23, 다큐멘터리 만드는 피디의 고민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지금 당신의 삶에서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는 뭘 제일 하고 싶으냐?’ 입사하고 피디 선배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물음에 ‘다큐멘터리요’라고 해맑게 이야기를 하던 풍경이 떠오릅니다. 뭔가를 진득하게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자세가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답변은 참 터무니없는 대답입니다. 그건 마치 ‘오늘 점심 뭐 먹을래?’라고 물었을 때 ‘밥이요’라고 답하는 것과도 같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인 거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피디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제가 고민해야 할 것은 ‘다큐멘터리’ 그 자체가 아닌 ‘OO에 대한 다큐멘터리’, 그러니까 무엇을 탐구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 의식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지금 제가 주저하는 것은 ‘다큐멘터리’ 그 자체입니다. 이 세상일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다큐멘터리가 어렵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죠. 직접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 나의 견해를 가지고 카메라를 비춘다는 것인데, 이 ‘나의 견해’라는 부분에서 끊임없이 과도한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거든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혹은 해야 될 것만 같은) 이야기를 찾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최근 몇 개월은 의도적으로 티비를 잘 안 보게 됩니다. 직업적으로는 아주 치명적이지만 도통이지 볼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보다 보면 딜레마에 빠진 저의 초라한 모습이 상기되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런 때일수록 뚝심으로 정면 돌파해서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까진 용기가 회복되지는 않았나 봅니다. 이번 휴식이 일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 더 회복하고 진짜 내가 원하는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무엇에 지향점을 찍고 탐구해나갈지를 모색하는 시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Day 22, 이준이가 기억 못할 우리의 교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