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어떤 모습인가요?
당신은 좋은 어른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사람이 보여주는 행동이나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부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요. 세속의 삶을 접어두고 온전히 그 인생을 종교적 믿음과 신념에 맡긴다는 것은 보통의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인류의 평화>랄지, <공동체의 복원>과 같은 보다 넓은 가치를 지향하기는 쉽겠지만, 그걸 한 개인의 인생 안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뛰어넘어 직접 <행동과 존재함>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이 될 용기는 없지만 적어도 <몸으로 보여주는 삶. 행동하는 존재. 희생하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곧 제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이자, 제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인물의 조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진짜 어른’에는 아직 가닿지 못했습니다. 역시나 저는 범인(凡人)인지라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고, 행동에 이르기까지는 몸이 아직 너무 무겁다는 생각입니다. 가톨릭의 영향인지 어렸을 적부터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삶을 일종의 과제처럼 여기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지금의 공동체가 더 이상 그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붕괴했다고 생각합니다. ‘너와 나’가 없어지고 ‘나’만 존재하는 폭력적 상황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현실 인식이나 바로 잡으려는 생각들도 점차 희미해지는 이른바 ‘엉망진창’인 세계. 이 삭막함을 탈피하려면 <같이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진짜 좋은 어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저조차도 ‘나 먼저’를 생각하고 있으니 가끔은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아주 거창하고도 과격한 행동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아주 미세한 마음의 균열을 발견하고, ‘같이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진짜 좋은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조금 더 인간적인 존재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이번 코로나 시국에서 의료진들의 희생처럼 말입니다.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