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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작가 Dec 06. 2023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축의금은 보낼 거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여전히 어설픈, 30s


대학교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던 S가 나 모르게 결혼을 했다.



삶이 바빠서 인지 취업을 하고선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연락이 옅어져 갔다. 특별히 싸운 게 있냐고? 아니다. 없다. 같은 필드에서 일하고 있어서 대화거리도 많았다. 만남이 지루하지도 않았다. 일단 여기까지는 나의 입장.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야기다. 사실 정확하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우리는 야근이 너무 많다는 것에 크게 공감했고, 결국 이직이 답이라는 결론을 냈다. 야근을 하면서 이직을 준비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우리의 삶은 솔직히 좀 분주했다. 요령도 없으니 잘 해내기도 어려웠겠지. 무소식은 희소식이려니 하면서, 종종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만나면 잘 지내지? 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생일 축하 카톡도 안 보내는 계절이 두 바퀴 즈음 흘렀을 때, 친구 S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듣게 되었다. 결혼한다도 아니고 결혼했다라니. 그 자리에서 정말이냐고 묻기도 어색해서 그냥 입을 닫았다. 이 감정은 서운함일까. 야속함일까. 알 수 없다. 참담한 심정이라고 표현해 보겠다. 그 자리에서 S에게 카톡을 보냈다.




S야. 혹시 내가 너에게 축의금 보낼 기회도 못 얻는 거니




하루가 지나도 답이 없었다. 이제 카톡도 안 읽는 건지. 진짜 내가 차단이라도 당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근데 왜 차단까지 했을까? 연어처럼 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봤지만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 신혼여행으로 해외에 있고 이것은 모두 시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S에게 답장이 온 것은 내가 첫 카톡을 보내고 24시간이 지나고, 6시간이 흘렀을 무렵이다. 친구의 변을 들어보자. 카톡 답장을 못했던 것은 해외라서 확인이 늦었기 때문이고, 나도 네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며, 변명 같겠지만 너무 오랜 시간 연락도 없다가 결혼한다고 딱 알리기가 어려웠다고. 앞으로라도 자신이 먼저 안부 인사도 묻고 그러겠노라. 이해해 달라고.



역시 홍보실에서 일하는 친구답게 사과문도 담백하고 깔끔했다. 나도 그를 이해한다. 결혼 전에 청첩장 돌리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전화를 할까? 카톡을 할까? 축의금 내라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뷔페가 맛있다고 밥 먹고 가라고 말하면 좀 쿨 해 보일까? 나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청첩장 돌리는 일이 가장 벅찼다. 진짜 너무 벅차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 친구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



근데 S야 나는 네가 30년 만에 연락했어도 너의 결혼식은 갈 생각이었다고. 나는 속마음을 구질구질하고 처연하게 적어서 보내버렸다. 신혼여행을 재밌게 잘 다녀오고, 한국 오면 만나자고. 내가 축하는 하고 싶다고. 삐진 티는 내야 만나줄 것 같았다. 신혼여행 중인데 나중에 보내볼까도 했지만, 유치하고 찌질한 20살의 나로 돌아갔다.



낯선 대학에서 만난 S. 성공에 미쳐있는 나와 달리 모든 것이 평온하고 침착했던 친구였다. S가 먼저 군대에 다녀오고, 그가 복학했을 때 나는 군대로 떠났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고 뻔한 얘기다. 그러면서 같이 다녔던 친구 무리는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인연의 끈을 잡아왔지만, 그 손 힘이 서서히 풀렸다. 이런 얘기들이 너무 구구절절하니, 어른들은 세월이 참 야속하다라고 하시나 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조금 늦었지만 그럼에도 괜찮다는 것을.



결혼 소식조차 남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조금 늦었을 때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더 이상 20살이 아니다. 이제 30살 하고도 중반이다. 어쩌면 후반? 이제는 조금 늦었지만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늦었지만 만나서 축의금 봉투를 건네면 된다. 좀 오글거리지만 축하한다고 카드도 써서 줘야지. 그럼 그게 축사가 되겠지. 결혼식을 못 본 것은 아쉽지만, 결혼식 동영상 하나는 남겨놨겠지. 그걸 보면 되겠다. 어쩌면 친구 결혼식 때 내가 코로나나 독감에 걸려서 참석을 못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이런 일이 10년 전에 일어났다면, 동네방네 서운하다고 네이트판에 글을 휘갈겼겠지. 내가 S에게 얼마나 잘했는지만 떠올리면서 말이다. 손절하라는 베스트 댓글을 보면 비장하게 결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비로소 내가 나이 들어서 다행이라며 인정하게 된다. 나에게는 청첩장을 돌리던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뒤늦게 결혼 축하한다는 연락도 받았고, 그게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일인지. 이제는 너무 잘 안다. 잠시 멀리 살았지만, 다시 가까워지면 된다. 어쩌면 이게 또 마지막 만남이 될지 모르지만, 괜찮을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로 다시 가까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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