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현대미술은 어려울까?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하는 고민이 있다. 쏟아지는 정보와 문화의 세례 속에서 성장한 대학생들에게 예술에 관한 고전적 문법을 학습시키는 것이 과연 얼마나 필요한 일이며, 또한 얼마나 흥미를 끌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 현재를 사는 학생들의 니즈는 즐거움, 진로, 혹은 (직면한 현실의) 문제 해결일 테니까 말이다. 아마 지금 예술대학생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SNS 팔로우 늘이기'나 '유튜브 콘텐츠의 효율적인 노출 방법들' 등의 이러한 것들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능한 흥미가 떨어지거나 구체성이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를 습득한다'는 교육목표에 부합하는 다소 진부한 기초문법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느 정도 과거의 줄기를 이해하거나 현재의 복잡 다난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알아야 하는 '개념'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몇 가지 개념으로 요약하는 것을 통해 쓸데없이 길고 소모적인 고민들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우리는 클래식을 접해야 하고, 앞서간 저명한 작가들이 설명했던 작품과 해설들을 통해서 좀 더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몰라도 작품 제작은 가능하고, 진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더욱이 넘쳐나는 시간을 때우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다만 우리가 2차 3차 가공된 정보나 문화상품들을 소비하며 감각적인 감정에 매몰된 소비자가 될지, 또는 나만의 표현법을 조금씩 성장시키며 삶에서 나만의 유니크한 글쓰기나 작품을 창작해 낼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문화에 관련된 글들을 읽거나 공부를 하다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용어들 중의 하나인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가장 간략한 요약을 한번 아래 3개의 그림으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조금 인문학적인 바탕이 있고 텍스트 위주로 문화를 접했던 586세대 이후의 그림/영상 세대(?)들에게는 조금 애매한 용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핵심 도표로 모더니즘과 현재의 문화 예술의 태도들에 관해 한번 정리해 보고자 했다. 가능한 부가적인 설명 없이 (사실상 내가 더 깊이 설명할 능력도 없기도 하고) 일종의 요점정리로 한번 짚어 보려고 한다. 그러니 한 번쯤은 이러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태동배경을 통해 현재의 문화 예술적 흐름에 관해 접근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갑자기 생각난 거지만, 결국 대학교육이라는 것은 현재를 준비하는 인큐베이터의 역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난 과거의 문법요소들, 혹은 저자들의 세계에 관한 개념정립이 현실과 현재로 이어주는 의미있는 문고리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1. 모더니즘
첫째는 이른바 모더니즘 시대이다. 우리가 예술이라는 전통적인 영역을 이야기할 때 이 모더니즘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모더니즘은 몇 가지 유파를 특정적으로 일컫는 이름이기도 하고 하나의 경향을 일컫는 흐름이기도 하다. 칸트와 헤겔 철학과 미학을 근대의 태동으로 대체로 이야기하는 데, 학자들은 이러한 미학적인 사상을 토대로 20세기 전반의 예술 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칸트의 이성적 비판의 태도, 계몽주의의 심화된 사상을 기반으로 모더니즘 예술이 발전해 왔다.
20세기 초반은 기술과 합리성에 대한 낙관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맑시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유럽과 러시아에 걸쳐 폭넓게 나타난 추상회화, 카프카나 샤르트르의 실존문학 등이 모두 이 시기의 미래와 과학적 태도에 관한 낙관적인 정신에서 태동했다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은 기본적으로 선험적인 질서, 상징적인 것, 총체적인 것들을 정제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처럼 기존의 경직된 것을 파괴함으로써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래서 모더니즘은 상징처럼 요소를 부각하는 경향, 절제된 극도의 단순함, 충격적 제시 등이 외형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부분들이 모더니즘 예술을 해석해야 하거나 또는 너무 단순하거나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 (특히 70년대 일본의 선사상과 결합한 미니멀리즘은 단순함으로 미묘한 느낌을 준다.)
모더니즘은 그 철학적 바탕에 의해서, 요소들을 사용해서 또한 기존의 질서를 재구성하려는 변증법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요소들을 구성하고 재해석 하는 부분은 (창조와 파괴라는 변증법적 방법론의 모더니즘의 태생적 지향점이기에 그렇다.)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현대예술을 참으로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70년대부터 결국 모더니즘은 예술을 재해석하는 경향, 강박적으로 분석적인 경향을 띄게 되어 스스로를 부정하는 그러한 해체적인 상황으로 이르게 한다. 초기의 초현실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추상적 표현주의라는 모더니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주의적 낙관성은 예술적 아우라 (종교적 숭고함)와 함께 20세기 현대미술에 있어서는 강력한 철학적 사상적 토대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더니즘은 예술행위와 함께 신학적 미학 이론이 아울러 이를 뒷받침해주는 문화의 사회적 기반으로 함께 성장해 갔던 것이다.
2.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와 사회적 기반이 동시적으로 기존의 질서를 재해석해서 새로운 총체성으로 예술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예술 이론들은 80년대의 기술발전과 대량 소비사회의 등장으로 상당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한 작가가 생산한 추상회화나 조각품이 MTV, 포토샾, 디지털 플랫폼의 이미지 배포가 더 혁신적일 수 있을까? 현실세계의 부조리를 드러내기 위해 해체했던 미적 해방들이 대중문화의 이미지들보다 더 자유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회의들이 70년대 이후 태동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는 모더니즘은 지루했다. 사람들은 모더니즘 예술에 관해 회고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가치는 상대적으로만 의미 있었고 기존의 예술 유파는 특정적 시간에만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동시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 그러니까 모더니즘 예술의 절대적인 형식들은 작가나 대중들이 부분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일종의 단편들로 변했다. 형식은 곧 스타일로 변해갔던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곧잘 신-표현주의, 뉴-아방가르드, 하이퍼-리얼리즘, 트랜스-아방가르드와 같이 '새롭다'라는 미사여구를 붙여 쓴다. 이는 더는 새롭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 작가들은 영화예술 처럼 대중문화의 기법과 그 이미지들을 차용하기를 즐겨한다. 또한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고 비즈니스를 하며 대중들과의 유희를 즐긴다. 그들은 전통적인 모더니즘 작가들과 같은 제스처를 취하지만, 또한 활동가, 비즈니스맨, 환경운동가, 철학적 순례자, 다양한 상대주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탁월한 기술적 방법론을 취사선택하지만 그 절대성을 신봉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시대를 곧잘 우리는 포스트 모던 시대라고 명명한다. 이때의 이러한 환경과 상대성, 다양성의 공존에 관한 태도들이 태동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대중 소비사회의 문화는 강력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3. 포스트 모더니즘 그 이후?
200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은 어떻게 변모했고 어떻게 변모해 가는 것일까? 자 다 끝나간다. 집중하자! 글쎄 내가 본격적으로 내가 컨템포러리 아트(동시대의 문화 트랜디)에 관해 조사해 보지는 않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런데 나같이 클래식을 접하면서 성장한 사람들의 특유의 짬밥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예상이라고 할만한 몇 가지 징후들은 예측해 볼 수는 있다.
1. 한 가지는 직관, 경험적 요소들의 증가이다. 이 부분은 형이상학과 개념이 지배했던 20세기가 저물면서 당연히 기술시대에 중요한 지점이 될 수밖에 없다. 모더니즘 시대의 이성이 모든 것을 통제 가능하다고 믿었던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성은 현실을 대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여러 차례의 전쟁, 강력한 자본주의, 주요한 믿음이 되어 주었던 인문학 사상들의 문제 해결 능력의 상실에서 점점 더 이러한 태도의 부작용 역시 증대되어 왔던 것이다. 직관 경험 요소의 부각은 문제 해결의 과정, 기술적 프로세스, 네트워크, 공동체를 주요시하는 경향으로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다.
2. 또 하나는 행동주의와 공동체적인 경향이다. 이 부분은 점점 더 예술미학이 독점적 권위와 영역에 머무르지는 않게 된다는 말이다. 예술이 정치적인 사회적 발언에 도구로 또는 이를 지지하는 자들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경향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대학과 미술관의 역할도 계속 앞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정적 공동체의 작가, 영역에서의 사회적 경향들, 발언들, 미적 태도들은 21세기의 예술을 지칭하는 주요한 경향으로 대두되고 있다.
3. 앞에서의 행동주의적인 경향의 연장에서 공공 프로젝트와 공간 연출 등의 기획적 요소들의 부각이다. 좀 더 일상적 문화의 연장에서의 공간 연출, 도시 재생 등은 아마도 앞으로 더 주요한 예술 문화적 흐름으로 나타날 것으로 본다. 이것은 단지 작가나 문화 종사자들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나 지방정부와의 연계들로 가시화될 것이다. 개념이나 서구 미술의 미학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전시하는 비엔날레 등도 아마 지역이나 제3세계의 공간의 해석이나 재배치 등의 적극적 모색 등으로 다소 중심이동이 있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어찌 되었건 예술에서의 기획적 요소는 점차 굉장히 주요한 요소들로 작품 그 자체 못지않게 더욱 중요한 경험과 학습의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 대학의 기능 변화가 필요하다면 이러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4. 마지막 한 가지는 융합적 경향이다. 예술 영역과 접점이 있는 경계에서 일어나는 활발한 교차들이다. 이러한 융합은 단지 시각적인 기술적 융합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예술적 요소가 가미되는 게임, 비즈니스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예술,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적인 설루션, 코딩이나 시물레이션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스토리, 이러한 각 영역과 기술 과정에서의 창의적 아이디어의 기여들이 미학적인 배경과 기술과 융합하면서 사회적 솔루션들과 결합하는 것과 함께 광범위하게 교차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처음에 짚어 보았던 직관과 경험 요소들이 주요한 과정으로 체득되거나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모더니즘 이후의 시각예술을 예측해 본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예측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과거를 학습한다. 그 과거는 생명력이 있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게 하기보다는 어떤 잘 짜여진 요약된 그림들을 보여준다. 미래는 아직 그려지지 않았고 아무도 내게 그저 선물로 주지는 않는다. 다만 적극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고 또한 나의 그림을 조금은 매력적으로 스스로 그려볼 수 있다. 이런 접근들은 그런 점에서, 상상의 부산물로 단지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나만의 비전을 가지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