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홈스쿨을 시작했다
소복이 내리는 눈과 함께 아홉 살이 저물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난 상황
나는 더 이상 저학년이 아니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에는 저/중/고학년으로 나눴다)
나는 더 이상 코 흘리는 2학년도 아니며
(대신 코 흘리는 3학년이 될 터였다)
더 이상 내 나이의 앞자리가 한자리도 아니다
삶을 개척해 나갈 나이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두 자릿수의 나이로 죽지 않나)
그리고 나는, 초등학생도 아니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아홉 살,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태양이 밝아서' 그만둔 건 아니었다. 그 정도의 인문학적 소양은 없었다. 단지 방학숙제를 하기 싫었다. 겨울방학을 시작했던 12월에 나는 학교를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친구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던 시절 이야기다.
학교는 재미있었다. 놀 때 놀고, 쉬는 시간이면 반 뒤쪽에 있는 책장에 가서 손에 집히는 대로 읽었다.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서 뛰거나 한쪽에 있는 놀이터에서 정글짐 같은 데 올라타며 놀았다. 하교하고 나면 학교 도서관으로 가 만화책을 뒤적거렸다. 그때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 만화책이나, 각종 한국사 만화책과 위인전들을 섭렵했다. 머릿속에 노는 것 밖에 없던 천진난만한 어린 날. 학교는 놀기에 딱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방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만나기 어려웠고, 방학숙제라는 무시무시하게 귀찮은 노동이 함께 찾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그때의 방학숙제들, 특히 일기 쓰기는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남이 내 사생활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이런 이유로 학교에 가기 싫다 말했고, 홈스쿨을 생각하시고 계시던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 말이 나온 일주일 동안 관련 절차가 진행되었다. 담임선생님과 면담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나는 학교를 나왔다.
부모님께서 홈스쿨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서로 조금 달랐다. 아빠는 일전에 들었던 한 교수님의 홈스쿨링-대안학교 강연으로 홈스쿨을 시켜보고 싶다 생각하셨다. 그러나 망설이셨던 까닭은 세 가지였는데, 첫째로는 학교에 가지 않으면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 둘째로는 과연 애들을 잘 교육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가지고 계셨고, 마지막으로는 신앙의 전수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이 고민을 해소시킨 것은 동료 목사님의 권유였다. 먼저 홈스쿨을 시작한 목사님이 아버지에게 “애들은 공부하라고만 안 하면 알아서 공부한다”라고 말씀하시며 홈스쿨을 독려하셨다.
어머니는 꿈을 꾸셨다고 한다. 중국이라 생각될 만큼 거대한 건물 안의 큼지막한 스크린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서로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이 멍하니 스크린만 쳐다보는 사람들. 그 옆에는 흰 옷에 검정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와서 앉아있는 이들을 줄로 묶는, 그리고는 벼랑 끝에서 내던지는 꿈. 사람이 네 명씩 묶여서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이들을, 엄마는 보았다.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바깥으로 뛰어내려 탈출했다. 이런 꿈을 아빠는 홈스쿨을 하라는 뜻으로 해몽하셨고,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나왔다.
후일담) 학교를 나오기까지는 조금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내 위주의 기억으로 날조되고 미화된 위의 글을 본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 당시 학교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내게 홈스쿨을 제안하셨던 것은 초등학교 2학년 초반쯤이었는데, 나는 방학이 곧 오니 조금만 더 다니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래~하며 기다려주셨다. 방학이 끝나니 가을운동회가 있었다. 나는 운동회가 하고 싶었고, 부모님은 또 그래 그때까지 다니라고 하셨다. 가을운동회가 끝나고 나니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인 나는 아이들을 모아 생일잔치를 하고 싶었다. 부모님은 또 기다려 주셨다. 드디어 길고 긴 기다림과 함께 나의 학교 생활도 끝났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숙제와 함께. 그제야 나는 홈스쿨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기억하지 못했던 이야기다.
그렇게 홈스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