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유 Jul 01. 2024

그러니까, 공부는 어떻게 했다고?

안 했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인강을 들으려고 노트북을 틀었는데

화면에는 어느새 1시간이 넘도록 웹툰 창이 켜져 있다.


쓰지도 않는 영어를 왜 그리도 열심히 배우라고 하는 걸까

그때는 몰랐다.


어쩌다 보니 문과의 삶을 살고 있으나

어릴 적 내 꿈은 화학자, 로봇공학자였다.



홈스쿨을 한다고 말하면 빼놓지 않고 묻는 것들 몇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그중 공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아홉 살 때 홈스쿨을 시작했다고 하면 초등학교는 의무교육 아니냐고 묻는다. 맞긴 한데 학교는 그만둘 수 있다. 대신 아이가 방치되지 않고 잘하고 있는지 장학사가 나와서 몇 가지 문제를 풀게 한다. 초등학교만 나와도 풀 수 있을, 아니, 유치원만 나와도 풀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를 주어 풀게 하고는 '음 이 아이가 방치되는 게 아니군'이라는 묘한 자기만족을 보인다. 좀 더 어렵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는데.


홈스쿨러는 어떻게, 무엇을 배울까? 가정마다 천차만별이라 딱 어떻다 말할 수는 없다. 홈스쿨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입을 목표로 매진하는 가정은 학교만 다니지 않을 뿐이지 스케줄이라든가 학원, 공부는 학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아이가 자유롭기를 바라는 가정은 교과목을 공부하라고 하기보다는 다양한 것을 경험하는 걸 중요시한다. 이 외에도 종교적 신념(많은 경우, 기독교)에 따라 시작하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이런 것들이 일정 비율로 섞여 있다. 만약 당신이 홈스쿨링을 고민 중이라면 이 부분을 반드시 생각해 보시길. 왜 홈스쿨을 시작하고 싶은지.

 덧붙이자면, 어떤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게 싫어서’라는 생각에서 홈스쿨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조금 더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싫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벗어나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면 다시 어떤 점이 싫어질 때 쉽게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공부했지? 어린 시절에는 논 기억밖에 없다. 뭔가 각 잡고 공부했던 기억이 딱히 없다. 정확히는 실패했다.


앞선 글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나는 그다지 성실하지도 않았고 유혹에도 약하다. 웹툰을 보느라 인강을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집중력은 좋은 대신 무척 제한적이다. 내 마음이 끌리는 곳에만 집중한다. 인생을 대체로 날로 먹으려는 경향과, 효율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서인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임기응변과 벼락치기로 때우며 살아왔다. 얼마 전에도 기능사 시험을 하나 봤는데, 시험 접수 기록을 위해 접수한 터라 굳이 공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시험이 닥쳐오니 그래도 붙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이틀을 빡세게 공부한 결과-60점 커트라인에 57점으로 떨어졌다. 하루만 더 공부했으면 붙었을걸... 아쉬울 뿐이다. 물론 이틀 공부해 놓고 붙기를 바라는 게 부끄러운 줄은 알아서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저 다음에는 넉넉잡아 일주일은 공부해야 하는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을 뿐이다. 보아라. 지금도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다시 퀴퀴한 옛날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ADHD가 아닐까?


다행히도 나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걸 배우기를 좋아했다. 정말 어렸을 때-6~9살 남짓-는 집에 있는 백과사전 전집 같은 걸 끼고 살았고, 15살까지는 과학에 온통 빠져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지금처럼 야박하지도, 온통 불안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집집을 돌아다니며 세계전집이나 학습지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있었고, 그런 방문판매원이 찾아오면 물이라도 한 잔 내어주던 시절이었으니까. 내가 아홉 살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는 <과학소년>이라는 월간지를 소개했고, 나는 거기에 딸려있는 부록이 맘에 들었는지 구독해 달라고 졸랐다. 가격 때문에 조금 고민하셨던 것 같으나 성화에 못 이기셨는지 결국 구독해 주셨다. 그 후로는 기약 있는 기다림을 하는 동안 한 호를 적어도 스무 번은 돌려봤던 것 같다. 지구과학에는 정말로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화학에는 주기율표를 달달 외울 정도로 빠져들었다. 그때가 대략 12살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에 다니며 과월호도 열심히 모았다. 2003년도 이후 간행본부터는 몇 권을 제외하고는 전부 모았던 것 같다. 나름 열심이었다.


그러나 서로 먼저 보겠다고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던 동생과의 다툼으로 과학소년 구독은 중지되었고, 그때부터 과학과도 차츰 멀어졌다. 나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즈음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홈스쿨 모임을 시작했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