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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유 Jun 25. 2024

홈스쿨 모임을 시작했다 (1)

모임에서는 무엇을 할까?

지금도 역사를 싫어한다.

고정되어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열한 살 쯤이었을까? 부모님이 홈스쿨러 모임에 가자고 하셨다. 당시 친구에 굶주려 있던 나는 좋아라 하고 나섰다. 한달에 한번 정도 모이는 그 모임은 영국의 교육가 샬롯메이슨의 교육철학을 주축으로 함께 고민하는 곳이었다. 물론 그 당시 내게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로 잔뜩 기대했기 때문. 애들끼리 모여 노는동안 부모님들은 샬롯메이슨의 책을 한 챕터씩 읽고 모여서 홈스쿨의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임에서 한 사모님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열정과 추진력이 대단하신 분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계셨다. 그 분을 만나고 몇 주나 지났을까? 엄마들끼리 몇 번 만나 이야기하더니 모임이 하나 뚝딱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우리 집과 그 가정 둘이서 모여 공부하고 놀았다. 이후 점차 커진 그 모임에서는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교양있는 우리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를 주 교재로 삼아 역사를 배웠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도 쉽게 풀어져있고, 그와 연계되는 체험 학습 활동도 상당히 잘 되어있어서 교재로 사용하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모헨조다로 유적을 공부하고는 점토로 조그맣게 벽돌을 만들어서 건물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앗시리아 제국의 왕, 아슈르바니팔을 공부한 날에는 그의 유명한 부조 '사자 사냥'을 본딴 그림을 색칠하고 놀았다. 색연필이 칸을 벗어나지 않도록 꼼꼼하게 색칠했던 기억이 난다. 이외에도 파라오 복장 만들기, 흑사병 의사 가면 만들기 등등 여러 활동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걸 어떻게 다 준비하셨을까 싶다. 모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확 늘어났기 때문.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그 체험학습책에는 즐거운 체험활동 내용과 함께 배운 것을 제대로 기억하는지 테스트하는 문제도 함게 수록되어 있었다. 문제를 내면 화이트보드에 답을 적어 번쩍 들고, 맞추면 자를 한 획씩 적는 골든벨 형식이었는데, 나는 이게 상당히 힘들었다. 나는 내 머리를 과신하는 경향이 있기에(현재형이다) 책을 읽을 때 '이건 시험 보면 당연히 기억나겠지'하며 넘어가곤 했었고,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은 적어도 내게는 진리였던 모양이다. 한 1/3~절반 정도만 기억이 났다. 어떻게 그만큼이나 났냐고? 책을 모임 전날이나 당일에 읽었으니까.


시험을 못봐서 창피한 것은 싫었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컨닝과 점수조작에 공을 들였던 기억이 있다. 옆에 앉은 애의 화이트보드를 훔쳐보다가 똑같은 답으로 틀린다든지, 몰래 의 획을 하나 더한다든지. 열한 살의 범칙은 너무나 미숙한 탓이었는지 금방 적발되고 말았고, 그럴 때면 멋쩍음과 부끄러움도 배가 되었다. 이게 동화나 소년만화라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마침내 매번 백점을 맞게 되었다는 훈훈한 결말이었겠으나, 안타깝게도 이 뒤의 부분은 하이퍼리얼리즘의 노선을 따른다. 나는 창피한 것은 싫고, 부끄러운 것은 더 싫은 까닭에 적당히 하기로 타협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 더 사실을 파헤쳐보자. 내가 골든벨을 정말로 싫어했었는지, 적당히 하기로 타협했는지, 경쟁심 가득했던 내게 자극이 될만한 사람이 있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 한번씩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저 이 글을 쓰며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아, 컨닝과 점수조작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이처럼 가장 모호한 부분으로 남아있다니 슬플 뿐이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그 때 나는 상당히 게을렀다고 한다. 아무래도 타협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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