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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you Sep 06. 2022

놀멍 쉬멍 우리의 신혼여행 / JEJU DAY4

혼자의 기억에 하나를 더 하자.

 커피를 내리면서 시작하는 하루.

 짝꿍의 커피는 페루 코스코, 나의 커피는 콜롬비아여서  번을 내려야  잔의 커피가 완성된다. 내가 커피 내리는 소리에 잠이  짝꿍의 커피도 함께 내려주면서 오늘이 시작됐다.

 벌써 4일째의 아침이네.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뭐 할지를 궁리하고 있는데, 짝꿍이 수족관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 뜬금없는데 왜 수족관이야? 하고 물으니까.

 수족관에 가서 멍하니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대. 가끔 제주에 오면 늘 들르던 곳이고, 제주의 수족관은 엄청 넓다면서 신나게 꼬리를 왕왕 흔든다.

 가고 싶다면 가보자!



 어차피 성산 쪽으로 가야 하는 동선이라서, 성산에 있는 가고 싶었던 브런치 가게를 들르기로 했다.

 제주에는 점심에만 장사하는 곳들이 많은데, 이곳도 그중 하나.

 가정식 브런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고, 주인분은 저녁엔 프랑스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니 제주의 살림살이는 늘 여유로워 보인다.

 플레이트 하나, 토마토 치킨 수프를 하나.

 나는 화이트 와인을 잊지 않고 챙겼고, 짝꿍은 운전을 해야 해서 짜이티를 주문했다.

 풍성하게 나오는 한 상차림을 천천히 즐겼다.



 동네를 천천히 걸으면서 무인 책방도 구경하고, 빵집도 들렀다.  동네 주민들은 느릿하고 천천한 삶을 산다고 느꼈는데    트레이를 보면서 느린 우리 반성하기도 했다.

 천천한 삶을 위해서는 빠른 실행력도 필요한 것일까요. 재빠르게 빵을 사신 분들은 여유로운 오후에 빵과 커피를 즐기고 계시겠죠.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제주에 와서 빵을 한 번도 못 샀어. 빵순이인데… 어느 빵집이 맛있나요?



 그리고는 수족관으로 갔다.

 수족관을 보기 전에 공연시간이 다가와서 공연부터 즐겼는데,

 무슨 공연일까 궁금해했더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와서 다이빙을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죄다 한국인인데 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장기자랑을 보면서 즐거워야 하는 걸까? 를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저분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제대로 월급은 받고 있는지, 공연은 언제가 쉬는 날이나 쉬는 시간인지, 그런 노동에 관한 것들을 갑자기 짝꿍에게 늘어놓았다.

 분위기 깨서 미안하지만 너무 궁금했다. 어느 순간 공연은 저 멀리 떠났고 거기에 남아있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짧은 스커트와 타이트한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인 것도 거슬렸다. 그 앞에서 환호하고 있는 어린 남자아이들을 보는 것도 불편했다.

 다이빙 쇼에 꼭 짧은 옷의 치어리더가 필요한 걸까? 필요하다면 왜 전부 여자인 거지?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끝나기 전에 동물의 공연도 시작했다.

 바다를 누비다가 여기로 스스로 왔다는 동물의 소개 (거짓부렁이를 어린이들에게 말하다니) 도 싫지만, 동물들의 얼굴이 눈빛이 온통 먹이통에 가 있는 것이 너무 신경 쓰였다.

 하루 종일 굶기다가 공연을 하는 걸까, 여기서만 밥을 먹는 걸까.

 사람들의 환호성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스트레스는 괜찮은 걸까.

 나 같은 사람은 공연에 도통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린 친구들은 마냥 즐거워 보이는 것이 아이러니.



 그리고 짝꿍의 사랑하는 스폿 앞에 도착. 계속 신나 있고 들떠있던 짝꿍은 오히려 여기 앞에 도착하니까 차분한 느낌의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사진을 찍기 바쁜 곳, 그곳에서 이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앉아있었을까.

 각자의 속도대로 유영하는 물속 생물들은 마치 거리에 있는 사람들 기도 했다. 깊은 파아란 색에 나도 마음을 뺏겼다.

 나는  수족관 앞에서 시부야의 도로를 떠올렸다. 그곳 교차로 카페 창문에서는 차와 사람이 각자의 속도대로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풍경을 너무 사랑한다.

 그것과 같은 마음일까, 이 사람은.

 내 사진을 찍어달라, 인생 4컷을 남기자, 하고 정신없이 그를 끌고 다녀서 예전 같은 느긋한 시간은 보낼 수 없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슬퍼하거나 외로울 새가 없이 같이 살자.


 

 가까운 곳을 찾아 커피도 한잔 했다.

 위치도 마음에 들고, 프로그램이 다양한 것도 좋아서 남은 일정은 이곳에서 보낼까 하고 찾았는데 방 구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예약을 미루었다. 며칠 더 늘어난 일정을 어디서 보낼 것인지 이제 슬슬 결정해야 한다.

 뭐 일단 커피를 마시자.

 베이글도 한 입 먹자.


 

 

 저녁은 지난번에 정말 맛있게 먹은 집을 다시 찾았다. 이름이 같을 뿐 같은 곳은 아니었는데, (지난번엔 애월, 오늘은 성산) 여기는 늘 가마솥 연기와 향이 나를 자극하는 곳이다.

 기분 탓인지 지난번 같은 맛은 아니었는데 그것도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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