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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you Jul 22. 2023

여름방학엔 고전을 읽습니다. _ 도연명의 귀거래사

80일만에 사직서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일기.

도연명(陶淵明)

시대 : 위진남북조시대, 동진(東晋) 말~남조(南朝) 송(宋) 초

약력 : 심양군(瀋陽郡) 시상현(柴桑縣) 사람이다.

본명은 잠(潛), 자는 원량(元亮) 또는 연명(淵明)이라고도 하고, 자는 원량(元亮)이며, 남조(南朝) 송(宋) 나라가 들어선 뒤 이름을 잠(潛)-은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자기 집 대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어 스스로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가 죽은 뒤 지인들이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는 시호를 부여했다.


 칡건을 쓴 초상화가 대부분인데, 머리에 얹어져 있는 모자 같은 두건이 칡건이라고 한다. 아주 거친 망 같은 이 칡건을 벗어서 술을 걸러먹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술을 걸러먹을 수 있도록 채비를 하고 다니는 분이시라니, 사랑하는 것을 대하는 이런 자세 배워야 하는데.


이 도연명의 귀거래사 (歸去來辭).

귀거(歸去)-돌아가다-와 귀래(歸來)-돌아오다- 가 함께 쓰이는 단어인 것이 재미있는 점인데, 돌아가고 돌아오는 3차원적인 이야기기 흥미롭다. 떠나온 곳을 떠나고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속세에서 일하기 싫고 그저 자연을 벗 삼아 술이나 한잔하고 싶은 철없는 아저씨의 이야기. 내가 나가서 일하지 않으면 부인과 자식과 딸린 노비를 먹여 살릴 수 없는데, 그래도 세상 사람들과 부딪히고 싶지 않다니, 한량의 팔자는 참 부럽네요.


내용을 알게되면 더 재미있게 보인다는 오원 장승업의 귀거래도.


歸去來兮여

田園이 將蕪하니 胡不歸오

旣自以心爲形役하니

奚惆悵而獨悲오

悟已往之不諫하고

知來者之可追로다

實迷塗其未遠하니

覺今是而昨非로다

돌아가야지!

전원이 장차 묵어가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기왕에 나 스스로 마음을 육신의 종이 되게 하였으니,

어찌 상심하면서 슬퍼만 하랴

이미 지나간 일, 간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앞으로 나마 제대로 가야 함을 알았도다

실로 헤맨 길이 그리 멀지 않으니,

오늘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닫노라


舟搖搖以輕颺이요

風飄飄而吹衣로다

問征夫以前路하고

恨晨光之熹微로다

乃瞻衡宇하고 載欣載奔호라

僮僕은 歡迎하고 稚子는 候門이라

三徑은 就荒이나 松菊은 猶存이라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출렁이고,

바람은 살랑살랑 옷에 불어온다

길가는 사람에게 앞길을 묻고,

새벽빛이 희미함 을 한스러워하노라

이내 오두막집을 보고 기뻐하며 달려가노라.

머슴은 기쁘게 맞이하고, 어린 자식들은 문에서 기다린다

세 갈래 길은 묵어갔으나 소나무와 국화만은 아직 남아있구나


携幼入室하니 有酒盈樽이라

引壺觴以自酌하고 眄庭柯以怡顔이라

倚南窓以寄傲하고 審容膝之易安이라

園日涉以成趣하니 門雖設而常關이라

어린아이 손을 잡고 방안에 들어서니 동이 한가 득 술이 있다

술병과 술잔을 당겨 스스로 잔을 치고, 뜰의 나무들을 보며 낯을 푼다

남창에 기대어 거드름을 피우고, 무릎 들일 만한 곳의 편안함을 깨닫는다

동산을 날마다 거닐어 흥취를 이루니, 대문은 비록 있지만 항상 빗장이 걸려 있다


策扶老以流憩라가 時矯首而遐觀하니

雲無心以出岫하고 鳥倦飛而知還이라

景翳翳以將入하니 撫孤松而盤桓이로다

지팡이 짚고 가다가 쉬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나오는데, 새는 날다 지쳐 돌아올 줄 아네

해그림자 뉘엿뉘엿 지려 하니, 외로운 소나무 쓰 다듬으며 서성이도다


歸去來兮여

請息交以絶遊호리라

世與我而相違하니 復駕言兮焉求리오

悅親戚之情話하고 樂琴書以消憂로다

農人이 告余以春及하니 將有事于西疇로다

돌아왔도다!

일체의 교유(交遊)를 끊으리라

세상이 나와 서로 어긋나니, 다시 나가서 무엇을 구하리

친척들의 정겨운 이야기에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근심을 없애리라

농사짓는 사람들이 봄이 왔노라 일러주니, 장차 서쪽 밭에 일이 있을 것이다.


或命巾車하고 或棹孤舟하야

旣窈窕以尋壑하고 亦崎嶇而經丘하니

木欣欣以向榮하고 泉涓涓而始流로다

羨萬物之得時하고 感吾生之行休로다

혹은 작은 수레를 타거나 혹은 외로운 배를 타고서

깊숙한 산골짜기를 찾아갔다가 울퉁불퉁한 언덕길을 지나가리니

나무는 무성하게 영화로움을 향하고, 냇물은 졸졸졸 흐름을 시작하네

만물이 제때를 얻음을 부러워하면서 끝나가는 내 생을 느끼도다


已矣乎라 寓形宇內復幾時 오

曷不委心任去留하고 胡爲乎遑遑欲何之오

富貴는 非吾願이요 帝鄕은不可期라

관두자! 이 몸뚱이 우주 안에 붙어사는 시간 얼마나 된다고

어찌 마음 가는 대로 맡기지 않을 것이며, 무엇 때문에 허겁지겁 어딘가를 가려고 할까

부귀는 내가 원하는 바 아니고, 신선 세상도 기약할 수 없다


懷良辰以孤往하고 或植杖而耘耔로다

登東皐以舒嘯하고 臨淸流而賦詩라

聊乘化以歸盡하니 樂夫天命復奚疑아

좋은 날 잡아 혼자 노닐 거나, 혹은 지팡이 꽂아 두고 김을 매리라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고, 맑은 강가에 나가 시를 지으리라.

그러다 자연의 조화를 타고 모든 것 끝날 테니, 하늘의 명을 즐거워할 뿐 다시 무엇을 의심하랴


이 귀거래사의 원사를 살펴보면,


余家貧하여 耕植이 不足以自給이라 幼稚盈室호되 甁無儲粟하여 生生所資 未見其術이라 親故多勸余爲長吏일새 脫然有懷하되 求之靡途러니 會有四方之事하 여 諸侯以惠愛爲德하니 家叔이 以余貧苦라 하여 遂見用於小邑이라

나는 집이 가난하여 농사를 지어도 먹고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방안에 가득 하나 쌀독에는 저장해둔 곡식이 없어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하려 해도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친지와 친구들 중에 내게 관리가 되라고 권하는 이들이 많아서 불쑥 그래볼까 생각했으나 구할 길이 없었다. 마침 사방에 전쟁이 벌어져서 제후들은 은혜와 사랑을 미덕으로 삼자, 숙부가 가난으로 고생한다며 나를 생각하여 마침내 작은 고을에 부임하 게 되었다.


於時에 風波未靜이라 心憚遠役이나 彭澤은 去家百里 요 公田之利 足以爲潤이 라 故로 便求之라

少日에 眷然有歸與之情이 라 何則質性自然이요 非矯勵所得이며 飢凍雖切이 나 違己交病이라

당시에 풍파가 잦아들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나가 벼슬하는 것이 마음에 꺼려졌으나 팽택(彭澤)은 집에서 백리의 거리고 공전(公田)의 이익이 윤택하게 살만해서 그 자리를 구했다.

얼마 뒤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본성이 저절로 그런 것이고 애써서 그런 것이 아니며, 굶주림과 추위가 비록 절박하지만 나와 위배되는 일을 하는 것이 병이 되기 때문이다.


嘗從人事가 皆口腹自役이 라 於是에 悵然慷慨하 여 深愧平生之志로되 猶望 一稔하여 當斂裳宵逝러 니 尋程氏妹喪於武昌이 라 情在駿奔하여 自免去職 하니 仲秋至冬에 在官八十 餘日이라 因事順心하여 命 篇曰歸去來兮라하니 乙巳 歲十一月也라

남의 일에 종사한 적이 있었는데 모두 입과 배의 종이 되는 것이었다. 이에 서글프고 분해지면서 평소의 뜻에 깊이 부끄러웠으나, 그래도 1년은 지나서 짐을 꾸려 조용히 떠나야 했다. 그런데 얼 마 뒤 정씨(程氏)에게 시집간 누이가 무창에서 죽어서 빨리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면직하고 떠났다. 중추(仲秋)부터 겨울까지 관직에 있은 지가 80여 일이다. 관련된 일과 마음에 따라 글을 ‘귀거래혜(歸去來兮)’라 명명하였으니, 을사년 11 월이다.


엄청 고심해서 떠나서 엄청 일하고 돌아온 것 같지만, 80일의 속세생활인 것이 너무 웃긴다. 서글프고 분해진 일도, 젊은 암행이 평택으로 와서 관리가 젊은 친구한테 가서 인사도 좀 건네고 부드러운 관례를 위해서 힘써보라고 한 것이 사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여기 갈 때가 이미 나이가 좀 지긋한 편이라서 젊은 능력자 친구가 와서 나이도 어린 친구한테 허리 굽히는 일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선생님, 원래 밥벌이라는 것은 그렇게 아니꼽고 힘들고 드럽고 치사한 것을 참으면서 하는 것이라고요. 하고 말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피식 올라왔다.

아니 요즘 애들 참을성이 있네없네, 금방 사직을 하네 마네 혼낼 문제가 아니지 않나요. 엄청난 문장가 선생님도 자기 자식들이 굶어죽는데 고작 80일 일하고 다 던지고 다시 가난뱅이 생활로 돌아간다고요.

세상 이치 다 파악한 듯이 이미 지나간 일을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앞으로나마 제대로 가야 함을 알았다(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했는데, 그랬다면 다른 곳으로 다시 일하러 떠나 제대로 사는 힘을 얻으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나오는데, 새는 날다 지쳐 돌아올 줄 아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라며 세상의 흐름에 나를 비유했는데, 자기를 구름에 비유하면서 돌아올 지를 모르지만 새는 자기의 한계를 알고 돌아온다니요, 고작 80일에 돌아온 사람의 세상이라고 말하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귀엽다 싶습니다. 호호.

세계일주에도 100일이 걸린다는데, 도연명 선생님 20일은 더 참아보시지. 애초에 마음먹은 1년이라도 해보셨으면 집에 바글거린 어린 자식들이 뭐라도 배불리 먹지 않았을까요. 흑.


오래된 고전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며 개인적인 기록을 남겨둡니다. 위대한 작품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 것은 아니지만 친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기억하면 더 재미있게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요.(제가 잘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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