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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석 Jul 05. 2016

황금 파도
14화

최민석




뜻을 세우는 데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볼드윈(1867-1947)




#14



기혁과 정민이 대화를 나누기 불과 한 시간 전, 40대 중반의 진슬기는 자신의 원룸에 허망하게 누워 있었다. 


찌그러진 맥주 캔, 널브러진 육포 조각과 건오징어, 구겨져 있는 신문지. 진슬기의 원룸은 누가 보더라도 폐허 더미 같다. 방안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작은 창에 달린 환풍기 사이로 담배연기가 힘겹게 빠져나가고 있고, 책상 위에는 먹고 난 컵라면 용기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채로 쌓여 있다. 그 옆에 담배꽁초가 무덤 모양처럼 수북이 쌓여 있다. 누가 이혼남 아니랄까 봐, 그의 방은 홀아비가 사는 흔적으로 가득하다. 침대에 누워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진슬기의 눈빛은 허무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하긴, 지난 해 이혼을 하며 위자료로 거의 전 재산을 지급한 뒤, 달랑 남은 거라고는 몸 하나 누이고 있는 이 월세 원룸이 전부다. 


그는 담배를 꽁초까지 피운 뒤, 침대 옆 창틀에 있는 종이컵에 아무렇게나 비벼 꼈다. 아까부터 신호음이 계속 울리는 휴대전화기를 들었다. 액정에는 부재중 전화가 15통, 문자 메시지가 여섯 통 와 있었다. 


진슬기전화 안 받냐?


부장님이 엄청 화나셨어요.


너 오늘도 안 나오면 잘릴 줄 알아


진 기자님데스크에서 난리 났어요


이 새끼야너 당장 나와!


지금 지방지라고 무시하는 거야?!!


경기일보 산업부 진슬기 기자는 전화기를 다시 침대 위에 툭 던져 놓았다. 그리고 숙박업소 용 사이즈의 간이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하나 꺼냈다. 습관적으로 캔을 하나 딴 후, 벌컥 벌컥 마셨다. 혼자서 트림을 한 후, 아무도 듣지 않지만 욕을 했다. 


씨발


자기 자신에게 하는 욕인지, 자기 인생에게 하는 욕인지, 세상에 하는 욕인지 불분명했다. 하지만, 뭔가에 불만이 잔뜩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중앙 유력지 기자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평소처럼 취재를 갔을 때였다. 


씨발도대체 여기에 뭐가 있다고 가보라는 거야


언제나 욕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회부 진슬기는 경남 합천의 논두렁까지 차를 몰고 왔다. 


부장 새끼는 왜 가만히 처 앉아서 나만 시켜씨발그니까 배만 처 나오지.’


진슬기는 혼잣말이 아니면, 머릿속으로라도 불만을 토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어릴 적부터 늦게 퇴근하는 아버지의 회사, 머리를 짧게 자르게 한 학교와 한국 교육체계를 욕했고, 대학에서는 민주적 대의를 논하며 강압적으로 시위를 지시하는 운동권 선배들을 욕했다. 요약하자면, 진슬기는 천성부터 타고난 기자다. 만약, 그가 기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날 때부터 가졌던 비판적 시각과 엄마 뱃속에서부터 품었던 불평, 불만을 어떻게 해소하며 살았을지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씨발컴컴해 죽겠는데전조등은 왜 끄고 가라고 해


진슬기는 불만 가득 찬 입술을 놀리면서도 부장이 시킨 대로 새벽 두 시에 헤드라이트를 끈 채로, 그리고 엔진음도 들리지 않을 만큼 기다시피 논두렁 사이를 운전했다. 그렇게 십여 분을 가니, 정말 부장의 말대로 나트륨 등을 켠 비닐하우스 하나가 나왔다. 새벽 두 시에 전등이라! 아홉 시만 돼도 컴컴해지는 시골 분위기에 사뭇 어울리지 않는 정경이었다. 


인생 참 일관성 있다후배 일 시켜 승진하고정보원 소스로 쳐 먹고살고사람 안 바뀌어


갓 마흔이 넘은 진슬기 기자는 자동차를 갈대밭 뒤에 정차했다. 추수를 앞둔 시기의 갈대밭이라 차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부장의 말대로 시동은 끄지 않고, 카메라를 챙겼다. 그는 몸을 낮춰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가갔다. 


씨발내가 피부병 있다고 구라 쳐서 훈련소에서도 포복 안 한 새낀데.’


다가갈수록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불빛은 밝았다. 그리고 비닐하우스는 사방으로 어깨 높이만큼 붉은 양탄자와 검은 격자형 비닐 덮개로 가리어져 있었다. 비닐하우스의 문 앞에는 건장한 ‘어깨’ 두 명이 남근에 양손을 포개놓은 자세로 서 있었다. 


이건 또 뭔 미장센이야!’ 


진 기자는 카메라를 신생아를 안 듯한 손으로 들고, 어깨들의 시선을 피해 갈대밭 사이의 우측으로 돌아갔다. 진 기자가 지나갈 때마다, 간혹 갈대가 흔들리기는 했으나, 그때마다 바람이 불어와 어깨들은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진 기자가 드디어 비닐하우스의 반대편에 다다랐다. 


씨발아니기만 해봐라.’


진 기자는 속으로 또 한 번 부장 욕을 한 뒤에, 조금씩 몸을 일으켜 비닐하우스 안을 보려했다. 몸을 일으킬수록, 두려움도 함께 일었다. 간만에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마침내 용기를 내 고개만 살짝 들어 양탄자 안을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오만 원짜리 다발 수백 개가 쌓여 있었다. 


진짜잖아씨발!’ 


진 기자는 잽싸게 몸을 다시 숙였다. 그리고 주체 없이 떨려오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셔츠 주머니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물도 없이 삼켰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사진이 있어야 한다!’ 


증거 사진을 찍을 타이밍만 노리고 있는 진 기자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앞쪽 문이 덜컹 열리더니, 한 남자가 말했다. 


오늘 X나게 안 붙네한 대 줘봐


형님


그러자 어깨 한 명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자신의 입에 문 뒤, 익숙하게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았다. 그러고선 아무 말없이 형님이란 자에게 담배를 건넸다. 


별 밝다


형님이란 자는 갑자기 감상에 빠졌는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뿜으며 말했다. 


너 별 몇 개냐?


그러자, 왼쪽 어깨가 말했다. 


참모 총장입니다


오오포스타구나열심히 살았구나


형님은 장하다는 듯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곤, 오른쪽 어깨에게 물었다. 


넌 몇 개냐?


대령입니다


오른쪽이 주눅들은 투로 말했다. 대령이라면 육군에선 높을지 몰라도, 이들 사이에선 아직 별 하나 못 단 신참이다. 


시발업계에 몸담으면서 아직 경력도 없냐내가 저기 합천 하늘에 있는 거 하나 떼 줘아님나한테 한 번 개아리 피우면서 하나 달래?


형님은 아직 앳된 오른쪽 어깨에게 복싱 선수처럼 가드 자세를 취한 후, 장난으로 한 대씩 툭 툭 쳤다. 


얌마형님이 옥수로 격려하면 너는 배경음악을 깔아야 할 거 아냐


그러자, 왼쪽 어깨는 형님이 한 대씩 칠 때마다 주크박스처럼 노래를 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 


이때였다! 진슬기 기자는 잽싸게 몸을 일으켜 비닐하우스 안의 풍경을 카메라 안에 담았다. 


차차차차차차차찰칵!

연속 촬영이었다.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 카드에는 하우스 안의 녹색 양탄자가 담겼다. 그리고 그 위에 쌓인 수억 원대의 현금 다발, 그 앞에 양반 다리를 하고 담배를 꼬나문 농부, 사장, 교수, 아낙네, 복부인. 그야말로 다양한 군상들이 눈이 벌게진 얼굴로 화투장을 조이고 있었다. 촬영음이 ‘차차차차찰칵’ 들리자 이와 동시에 대사가 터져 나왔다. 


어떤 쥐새끼야


형님과 어깨가 홱 돌아 두리번대자, 갑자기 하우스 뒤편의 갈대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 기자는 갈대밭 사이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면서 속으로 외쳤다. 


씨발내가 이병 때도 호흡곤란으로 구라쳐서 구보까지 뺀 놈인데!


진 기자는 쫓아오는 건달들을 뒤로 한 채, 평생 달릴 에너지를 그날 다 썼다. 더 이상 쓸 에너지가 없을 즈음, 가까스로 정차해놓은 차 앞에 다다랐다. 다행히, 시동은 아직 걸려 있었다. 진 기자가 엑셀을 밟자마자, 세 어깨가 배기가스만 남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가픈 숨을 헉헉 내쉬었다. 



비닐하우스알고 보니 수억 원대 판돈 불법 도박장!’ 


다음날 기사로 특종을 터트린 진 기자는 새벽까지 기사를 작성하느라 노곤했다. 기자의 일상이 그렇듯, 특종을 한 건 했다 해서 포상휴가를 바라는 건 사치다. 피곤한 채로 퇴근길에 집에 가려다 스스로에게 위로주라도 한 잔 건네자는 심산으로 바에 들렀다. 온 더 락 잔에 담긴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어느새 노곤해져, 기사를 쓸 때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갔다. 한 모금을 더 넘기니, 기사 작성 이전의 취재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그 때 흥분을 느꼈던 거야. 간만에 떨렸던 다리, 오금이 저렸던 기분, 그리고 입안에 털어 넣었던 진정제!


씨발이게 얼마 만이야


간만의 흥분을 느끼며 다음날 진 기자가 곧장 달려갔던 곳은 취재 현장이 아니라, 불법 도박장이었다. 그는 당구장 쪽방, 기원 커튼 뒤 골방, 장어집 안방, 카센터 소파 등, 도박꾼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끼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한 번 쪼아보자씨발!”


퇴근 후면 곧장 도박장으로 달려갔고, 밤을 새운 진 기자의 눈은 퀭해져만 갔다. 집에는 아침에 들어가 옷만 갈아입고 출근을 했고, 출근을 하면 쪽잠을 자며 다시 퇴근해 도박장으로 갔다. 신문사에서 이른 나이에 퇴물이 되어갔고, 월급은 도박 빚으로 차압을 당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가정은 이미 깨져 있었다.


그나마 이혼 후, 가까스로 대학 선배가 데스크에 있는 지방지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폐인 생활에 이골이 난지라 제대로 출근조차 않는다. 진슬기 기자는 다시 담배를 한 대 붙인 후, 습관적으로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리고 옆에 있던 TV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바로, 이때였다. 진슬기가 무심코 TV에서 장기혁을 본 것이. 


부자세를 도입할 겁니다


진 기자의 눈에 비친 기혁은 거침없었다. 


대기업 사내 유보금으로 조세 충당할 겁니다! 1%씩만 내도 6조 원입니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진 기자는 기혁을 보고 다른 기운을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 국회의원은 고리타분하고,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젊은이는 어떠한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수하게 돌진한다. 진슬기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뜨끈해지는 걸 느꼈다. 도박에 빠질 때처럼 흥분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그가 다시 도박에 빠진 것은 아니었으니. 그의 몸이 뜨끈해진 것은 바로, 냉동된 기자 정신이 해동되었기 때문이다. 진 기자의 체온이 상승한 그때, 기혁이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물론한강 맥주도 유보금을 내야 합니다!


진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뱉었다. 


씨발!


물론, 이 소리는 불만이 아니었다. 욕이 몸에 밴 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자의 취재 의욕이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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