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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Jul 11. 2020

아슬아슬한 두 남녀의 줄타기, <비포 선셋>


이 한 장의 장면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영화





영화가 끝나면 그 영화를 대표하는 컷 하나가 머릿속에 남는 편이다.


<비포 선라이즈>에 이은 9년 후의 이야기 <비포 선셋>에서는

교태 부리는 셀린을 바라보는 제시, 다른 여자와의 결혼반지를 하고 셀린의 소파에 앉아있는 제시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한껏 배어 나오는 눈을 한 제시.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았던 <비포 선셋>은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초반부에 전(前) 편의 강렬한 장면들이 언뜻언뜻 나올 때, 나는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뜨거움이 직통으로 전달됐다. 조금 비현실적이고, 적당한 것보다 훨씬 더 뜨거워서 현실주의자의 감성으로는 충분히 공감하긴 힘든 영화였다. 두 사람, 셀린과 제시의 흥분 섞인, 격양된 말투와 대화와 몸짓도 받아들이기엔 좀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다. '저러다 쉽게 식을 텐데'라는 걱정 때문이었을까.


이 영화는 9년 후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프랑스 여자와의 하룻밤'에 대한 본인 작품의 취재를 당하는 제시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미국인들이 그렇다지만, 정말 한껏 늙어버린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으로 취재에 응하던 중, 역시 영화 설정 상 셀린과 9년 만에 재회를 하게 되고, 파리의 길거리, 카페, 그리고 공원 벤치와 유람선에서 둘은 또다시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나는 이 대화의 주제이자 키워드가 '섹스'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공원에서 했었잖아. 기억 안 나?"


10년 전 몸을 섞었었고, 그 기억이 또렷한 채로 상대와 다시 마주했을 때, 과거에 단 한 번(두 번?)뿐이었던 그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튼다는 것은, '나 너와 다시 할 준비되어 있어'라는 말과 같다.


그 후에도 이들은 계속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가' 오늘 죽는다면 뭘 가장 하고 싶어? (나와 사랑을 나누고 싶지?)


제시의 대답을 듣곤 벤치에 앉아 친구의 불만족스러운 섹스 이야기를 꺼내는 셀린.

'자긴 어떤 말을 듣고 싶어?' 아주 구체적으로 묻는 셀린.

나는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줄 수 있어- 의 암묵적인 표현일 것이다.

'너와 자고 싶어'라는 말을 돌려 돌려 서로에게 전달하려고 애쓴다.


심호흡을 하고 제시의 결혼에 대해 묻는 셀린


9년간의 갭을 자각하고, 그 사이를 채웠던 상대의 상대를 생각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제시와 셀린.

여기서도 현실로 먼저 돌아오는 쪽은 셀린이다.


넵넵... 언니 말이 다 맞습니다...


분노와 원망과 사랑이 섞인 채 차 안에서 폭발(폭주)하는 셀린.


"I don't believe in anything that relates to love. I don't feel things for people anymore. 

In a way, I put all my romanticism into that one night and I was never able to feel all this again. Like, somehow this night took things away from me and I express them to you and you took them with you, it made me cold like love isn't for me."


"지금 난 사랑을 못 믿게 됐어. 그날 밤 내 모든 걸 쏟아부어서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자기가 내 모든 걸 다 가져가 버린 것 같애."



아내와 10년 간 4번뿐이 하지 않았다는 제시는 기어이 셀린의 집까지 입성한다.



"Baby, you're gonna miss that plane"

"I Know"


알아. 내가 비행기를 놓칠 걸 알아. 내가 너의 남자가 될 걸 알아. 너와 평생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을 알아. 이번에는 너를 놓치지 않고 잡을 걸 알아.



제시는 이 장면에서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가까이 있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져서 좋았던 영화. 내가 딱 원하는 텐션의 영화.

용기를 낸 여자와 당시로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 남자.

Play the waltz가 take this waltz로 변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그려낸 영화.


부끄러울 땐 딴 곳을 보자

대표

눈을 못 마주치고 제시를 유혹하는 셀린

그리고 셀린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제시


셀린은 당연히 알고 있다. 본인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셀린은 노골적으로 보여주기 싫어한다. 본인이 그를 원한다는 것을

제시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황홀해하면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본다.



첫 장면에서 매우 늙고 지치고 안되어 보였던 제시는 

마지막에 총기와 활력을 되찾고 삶의 의지를 찾은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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