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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혜 Jun 08. 2020

구두와 목련

애매하게 삽니다 


오랜만에 구두를 신고 S캠퍼스에 갔다. 정확히는 과거 한 대학의 단과대 캠퍼스였던 부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단장한 곳이다.  옛 단과대 부속 건물들은 외관상으로 보기에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고 내부만 손을 본 듯 했다.  건물들은 예술가들의 창작공간과 이 공간 전체를 주관하는 지역문화재단의 사무실 등으로 쓰이고 있었다. 나는 재단에서 근무하는 K선생님과 그분이 몸 담고 있는 부서장님을 뵙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이전에 부지의 용도 그대로 '캠퍼스'라 이름 붙인 공간에 들어서자 곧바로 경사 진 잔디밭이 펼쳐졌다. 산성 안쪽의 땅처럼 경사가 있고 고르지 않은 잔디밭이었는데 잘 다듬어진 판판함이 아니어서 퍽 입체적으로 보였다. 잔디밭 가장자리로 서 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은 울창하고 건장하기로 이루 말할 데 없었는데 그 중 한 그루가 목련나무임을, 나를 마중나온 K선생님이 알려줬다. 


세상에. 그렇게 큰 목련나무는 처음 봤다. 목련나무가 느티나무처럼 저렇게나 거대해질 수 있다니. 

처음 대면한 두 분과는 앞으로 진행할 일들에 대해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캠퍼스에서는 가장 젊은 건물이었는데, 그럼에도 서른 살이 넘은 건물이었고 붉은 벽돌 외벽으로는 담쟁이들이 세력을 확장해가는 중이었으므로 다른 건물들에 비해 새 것 같은 인상을 주진 않았다. 대화를 마치고, 두 분은 나서는 내게 책과 휴대용 간이의자,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크로스백 같은 것을 챙겨주었는데 사무실을 뒤적이며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는 마음 씀씀이에 나는 고맙다는 말보다 고마움을 표현할만한 다른 수사가 없을지 골몰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곤 건물을 나서며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나, 그 말들이 성대 어딘가 지문처럼 남아있는 것처럼 마른 침을 삼켰다.

K선생님은 나를 그냥 보내지 않고 건물 앞 작은 매점에서 커피 한 잔을 사주셨고 우리는 울울한 나무들 아래서 이야기를 좀더 이어갔다. 그 이야기를 통해 나는 K선생님의 생각과 의도를 조금 더 투명하게 읽을 수 있었고 내가 수차례 언급한 '궁극적인 목적'은 선생님의 말들을 거쳐 방향을 달리했다. 

K선생님의 말들은 그가 생각하는 가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나를 배려하는 것이어서 나는 그의 말들 사이에 여러 번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마도 -수차례-, '상업적 글쓰기'에 대한 '공허함'을 말했고 내가 좇는 가치 또한 K선생님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동의했다. 


K선생님이 사무실로 돌아간 후, 나는 그 캠퍼스 잔디밭 평상에 앉아 아무렇게나 구두를 벗어두고 그 큰 목련나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렇게 큰 목련나무가... 꽃이 피었을 때 모습은 어떨까.  

정말 오랜만에 신은 구두였다. 여러 구두 중에 특정 구두가 아니라 내가 가진 서너켤레쯤 되는 신발 중 단 한 켤레의 구두다. 나머지는 해진 운동화들. 

거의 2년 만일까. 인간관계가 좁아 특별히 의복을 갖춘 행사에 참여할 일도 드물었다. 

스무살적 성인이 되어 처음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을 때의 불편을 회상했다. 뒷꿈치에 반창고를 붙이는 날들이 예사였고 발볼이 넓다보니 발가락마다 물집이 잡히는 날도 허다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 시절 내내 구두를 고집했다. 그 시절...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의욕 넘쳤던 시기였을테지만 돌이키면 부끄러운 감정이 훅 올라와 삭제해버리고 싶은 순간이 많은 때이기도 하다. 그때도 어렴풋이나마 내가 '닿을 수 없는 지점'에 대해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그땐 그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더 나대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어떤 신발을 신켜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두 발을, 만원짜리 싸구려 구두로 혹사시켰는지도.  


나는 다만 딱 내 그릇에 맞는 글쓰기 활동(감히 '창작'이라는 단어는 붙이지 못하겠다)을 해오면서,  사실 이건 내 그릇이 아니라고(폄하하며), 마지못해 하는 일처럼 허세를 부리고 앓는 소리를 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선생님의 말에 동조한다고, 실은 저도 저만의 글을 쓰고 싶었다는 그 말의 뿌리는 나를 장악하고 있었는가, 오랫동안 간절했는가, 꽃 피울 가지는 있었던가...  

캠퍼스를 어정어정 걸어 나오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스무살의 캠퍼스를 회상했고 그 큰 목련나무의, 내가 본 적 없는 봄 풍경을 상상했다. 구두는 언제 다시 신을 지 기약이 없고 역으로 향하는 차창 밖 야산은 온통 초록동색,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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