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하게 삽니다
대부도로 가는 길은 아마도 두번째였다. 내 형편없는 기억은 다만 초행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고 이전의 방문이 한 번이었는지 두 번이었는지에 대한 확답은 없었다. 123번 버스를 정류장에 거의 다 와서, 눈 앞에서 한번 놓쳤고 아쉬운 마음으로 정류장을 서성이다 근처 카페에 커피를 사러 들어간 사이 그 다음 버스를 놓쳤다. 그렇게 거의 1시간 30분을 길바닥에서 허비하고야 버스에 탔고 나는 거의 처음으로 '뚜벅이 신세'를 비관했다.
이유를 따져보니 꽤 복합적이었다. 1. 신뢰하던 애플리케이션의 버스 알람과 실제 버스 시간이 차이가 있었고 '상황에 따라 버스시간이 변경될 수 있음'의 가능성을 무시한 대가(?)로 눈 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2. 정류장을 지나는 123번 버스가 대부도행과 시내종점행이 교대로 온다는 사실을 몰라 허둥댔고 이는 정류장 전광판만 유심히 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3.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더위였는데 전날 비가 와 습도까지 높았으므로 온몸이 끈적끈적했다. 4. 생리 이틀째. 흔히 쓰는 표현으로 밑으로 굴이 빠져나오는 느낌이 지속됐다.
사실 이런 환경과 상황은 뚜벅이로 살면서 종종 마주한다. 헌데 그날은 유독 마음의 여유가 없어 짜증이 났다.
마침내 버스에 탔을 때, 다행히 앉아갈 수 있었으며 머리 위로 에어컨바람까지 나오고 있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시내에서 섬(아닌 섬)까지 가는데는 족히 1시간이 걸렸으므로 가방에서 묵히다시피한 타블로이드판 무가지를 꺼내 읽었다. 지면에는 2020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지난 몇 년간 문학판에서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진 작가들이었다. 사진 속의 젊은작가들은 수식 그대로 젊은 총기가 느껴졌다.
한때 신예작가들의 출생연도를 살피며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를 신경쓰던 때가 있었다. 어쩌다 내 또래가 있으면 부러움 섞인 감탄, 아니 이 사람은 어찌 이리도 이른 나이에! 이 사람은 천재일꺼야 천재가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등단할 순 없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문단에도 90년대생이 대거 진출해 활약 중이고- 나는 언젠가부터 신인작가들의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습작을 하지 않은지 수년 째, 이제는 의지도 의욕도 없어졌다. 아니 그건 거짓말일까. 쓰지도 않는 주제에 연말이면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마감일을 체크하고 매년 발표되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꼬박꼬박 사들이는 것.. 수상 작가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톺아보는 것... 습작시절 졸작을 앞에 두고 건네던 문우들의 위로를 여러 번 상기하는 것.... "발효의 시간도 필요하니까...."
그럴 때마다, 나만이 아니라 아마도 키친 테이블 노블을 끄적이는 30대 문청들이 떠올리는 한 사람. '박완서'.
늦은 나이에 등단한 이가 어디 그 분뿐이겠냐마는, 한국문학에 족적을 남긴 큰 이름이다보니 그가 불혹에 등단했음은 수차례 쓴맛을 봐온 문단고시생에게 희망을 주는 사례로 무던히도 많이 회자되어왔다.
나는 성큼 불혹에 가까워졌다. 데드라인이 코앞이면 뭐라도 쓰게 될지. 어쩌면 발효가 지나쳐 썩기 일보 직전은 아닐는지. 뚜벅이를 태운 123번 버스는 한참동안 시내를 돌았다. 온갖 아파트단지는 다 들르고서야 시의 경계를 넘어갔고 조금 졸음이 밀려올때 즈음 바다가 나타났다. 서해 풍경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느껴지면서도 이 바다의 행정구역이 '경기도'임을 생각하면 조금 특별해졌다. 경기도의 바다는 바다가 있어선 안될 곳에 바다가 있는 느낌이랄까. 긴 방조제의 왼편은 호수 오른편은 바다, 다리 건너편은 섬이지만 섬이 아닌 것 같은 육지같은 섬. 버스는 그 애매한 물길 위를 한참동안 달렸다. 차창 밖 풍경으로 감상에 젖었냐면, 아니 그건 아니었다.
밑은 수문개방 한 듯 쓸모없는 혈액이 쭉쭉 밀려나오고 있었고 내 머릿속엔 얼른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 초경도 일렀는데 폐경은 빨리 안하나 뭐 그런 생각들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불혹의 데드라인에서 진실로 원하는 바, 등단이 아니라 완경은 아닐는지.
그러므로 시속 4km의 풍경이니 걷기의 즐거움이니 뭐니 다 때려치고 직접 악셀을 밟고 시화방조제길을 내달리고 싶었던 것이다...
대부도의 한 칼국수집 화장실에서 급히 바지를 내렸을 때 나는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123번 좌석의 핏자국이 지금 누구의 엉덩이로 닦이고 있을지, 그만 아연해졌다. 동전만한 자국이었다면 안도했을 것이나 이건 어떻게 수습이 안될 지경으로 칠갑한 상태였다. 어지럽다 어지러워...
결국 칠칠맞고 정신없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다만 내 엉덩이를 보시더라도 모른척 해주소서. 제발 놀란 얼굴로 '저기..'하고 부르지 말아주소서. 어디서 스카프라도, 몸빼바지라도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육지화된 섬이 도시화까지 된 건 아니어서 주변은 온통 칼국수집들뿐이고 취재처인 사찰마저 내가 내린 곳에서 1.3km 떨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생리중'인 여자는 국도변을 걸어 절로 향했으니, 설마 시속 70~80km로 달리는 자동차 운전수들이 내 엉덩이를 유심히 보진 않겠지, 등에 맨 가방을 최대한 아래로 끌어내리며 걸었다.
사찰이라기엔 암자에 가까운 작은 절, 수각을 닦고 있던 노인이 극락보전 앞에서 연방 사진을 찍던 내게 기어코 한마디를 던졌다. "화장실을 가보셔야 겠는데...." 햇볕 때문인지 염려 때문인지 노인의 얼굴은 한껏 찡그린 채였다. "네..알고 있어요. 바지를 벗어서 빨 수도 없고 갈아입을 옷도 없어서 그냥 이러고 있습니다." 노인은 더이상 말을 잇진 않았다. 그러나 표정에서 '그래도 어떻게 해봐야하지 않겠냐'는 채근이 읽혔다. 수각에 모인 물은 가까운 전각에서 비롯된 긴 호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용왕각이라 현판을 건 작은 법당은 바위샘 하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전각 안에 툭 불거져 나온 바위, 그 아래에서 솟은 물은 이 작은 절의 자랑이었다. 조선시대에 한 승려가 그 샘을 발견하고 절을 지었다고 했다. 절에서 기르는 개도 약수인걸 아는지 떠다 놓은 물은 눈길도 안주고 굳이 수각까지 와서 물을 핥는다고 했다. 수각을 닦던 노인이 해준 얘기다.
내가 "저도 마셔도 되죠?"라고 했을 때 노인은 조금 주춤했다. "코로나 때문에...." 내가 "바가지에 입은 대지 않고 마실께요"하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였다. 바가지에 입을 대지 않은 채 물을 흘리지 않고 마시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나는 결국 약수로 가슴팍을 적시고 한쪽 귀에 걸어둔 마스크도 적셨다. 제기랄...
절을 빠져나와 다시 한참을 걸었다. 한껏 뜨거워진 오후의 볕이 엉덩이도 말리고 가슴팍도 말렸다. 나는 나대로 쾌적하지 못한 의복과 몸 상태에 익숙해졌다. 다시 시내버스를 탔으나 내차 시내까지 가지 못하고 갯벌에 내려 사진을 찍었다. 그래, 서해는 이런 맛이지. 이 비리고 찝찔한 맛. 저..저... 생리혈같이 진득한 뻘 좀 봐. 해루질 하는 사람들은 장화에 앞치마에 중무장을 하고 잿빛 진흙을 파헤치고 있었다. 나는 그 뻘을 그저 뻘하게 쳐다볼 뿐 그 근처로 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수시간 뒤면 내가 서있는 자리까지 차고 들어올 바닷물을 상상했다. 그게 다 달 때문이구나 생각하면 참 신비롭지만 이제껏 마주한 만조의 밤바다는 대체로 무서웠다. 달이 차고 기우는 동안 견고하게 벽을 쌓고 또 허물기를 20년 넘게 반복한 내 자궁은 언제쯤 달거리를 끝낼까. 더이상의 달거리가 없을 때 나는 지금 바람대로 개운할까, 중력에 굴복한 젖가슴과 주름투성이 얼굴에 서글플까.
시내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20분쯤 더 걸렸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시내 곳곳이 혼잡했다. 신호대기 중 옆차선을 무심코 봤는데 멈춰선 두 차의 앞범퍼와 뒷범퍼가 서로 물려 있었다. 뒷차는 택시, 앞차는 준중형 승용차. 접촉사고가 일어난 바로 직후를 내가 목격한 듯 한데 두 차의 어느 누구도 나와볼 생각을 하지 않아서 잠시 '저 차들은 서로 붙은 채 움직이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신호가 바뀌고 버스가 막 출발할 때 앞차의 운전자가 드디어 차문을 열고 나왔는데 극도의 짜증이 얼굴에 묻어있었다. 짜증이 안날수가 없겠지. 어쩌면 오늘 하루 중 가장 짜증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이번 달 중 가장....
나 였다면 일어날 일이 기어코 일어났다는 자포자기의 담담한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싶다가,
그래, 운전은 못할 것 같아. 뚜벅이로 살아야지. 암..
그리곤 반나절의 대장정을 마치고 드디어 123번 버스에서 해방, 시외버스터미널을 눈 앞에 두고 터미널로 잰걸음을 할 때, 그 피날레는 주머니에서 빠진 핸드폰이 보도블럭을 강하게 내리치는 이벤트로 장식했다. 마침 엊그제 보호필름을 시원하게 떼버린 핸드폰의 액정은 쩌억- 사방으로 금이 갔다. 내 표정이 '일어날 일이 기어코 일어났다'는 자포자기의 담담한 표정이었는지는, 음, 장담하지 못하겠다.
불혹이 되면 초연해질까. 좌절한 소설가의 꿈에서, 좌절한 자궁의 하혈에서.
초연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걷고 있겠지.
하릴없이 걷고만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