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잘 걷습니다. 걷는 자세가 올바른지 걸음걸이는 보기에 나쁘지 않은지 보폭은 적당한지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 집이 동네 맨 끝집인 이유로 등하교를 위해 하루 왕복 4km를 매일 걸었습니다. 8살에게는 꽤 장거리인데 그때만 해도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고 또 그 아이들 대부분이 걸어 다녔기 때문에 서로 말동무가 되어줬지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집에 자전거가 한 대 생긴 덕분에 학교를 오가는 길이 훨씬 수월했습니다. 혼자 걷는 동무가 보일 때에는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전과 같이 걷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어린 동생을 뒤에 태우고 달리기도 했고요.(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니 덩치 차이가 많이 났지요)
중학생이 되어선 교복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탈 수가 없어 다시 걸었습니다. 그치만 이때는 엄마가 차로 교문 앞까지 저를 데리러 오신 적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때 우리집 차종은 프라이드 베타였는데 저는 그 차가 창피해서 교문 앞에서 엄마가 저를 기다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참 별게 다 창피했던 나이죠. 그때보다 철이 조금 더 든 지금이라면 엄마가 리어카를 끌고 오셨더래도 반가워하면서 달려갔을 텐데요.
제 생애 가장 걷지 않았던 시기는 고등학교 때인데 그 이유야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다 짐작할 테지요. 성인이 되고 나서 저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시골 출신인 저로선 서울 구경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라고요. 제일 많이 걸었던 거리는 광화문부터 종로 3가까지입니다.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도 열심히 걸었어요. 다이어트를 한다고 걷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걷고 데이트를 한다고 걷고... 광화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광화문부터 홍제동 집까지 걸어서 퇴근하곤 했어요. 이 시기 자전거는 거의 타지 않았습니다. 마음먹고 한강고수부지로 나가야 자전거를 탈 수 있었으니 제 기억으론 아마 데이트한 남성들의 숫자만큼(?) 자전거를 타지 않았나 싶네요. 죄다 일회성에 그친 건 참 아쉬운 일입니다.
여행작가가 되고 난 후로 저는 더욱 열심히 걸었습니다. 여행 안내서가 한 권, 두 권 출간될 때마다 제가 걸은 거리는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측정해본 적은 없지만 하루 10km 이상 걸을 때가 많았으니 걸음수로 환산하면... 글쎄요, 아무튼 많이 걸었겠지요. 저는 아예 '뚜벅이 작가'를 제 아이덴티티로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전국 드라이브 여행'이라든가 '전국구 산간 오지 여행' 같은 테마의 여행 안내서는 기획하기 망설여질 테지만 뭐, 상관없었습니다. 걷기도 걷기지만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를, 여러 곳을 돌아보기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선호하는 저로선 앞으로도 뚜벅이 노선을 벗어날 것 같지 않았거든요.
아, 물론 운전면허는 일찌감치 취득했지만 지금은 운전법과 교통법을 몽땅 까먹었을 정도로 장롱면허입니다. 그럴 거면 도대체 운전면허를 왜 땄나 싶죠. 그래도 운전면허증은 스페어 신분증으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말을 좀 보태면 사실 자동차를 사고 유지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저는 말 그대로 두발로 걷고 뛰면서 여행지를 취재했는데 그러다 보니 취재 마감 기일이 다가오면 아무래도 기동성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서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벽지나 장거리를 오가야 할 땐 차가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아예 택시를 하루 단위로 대절해 타고 다니기도 했는데요, 그렇지 않을 때에는 무조건 자전거를 탔습니다. 다행히 제가 취재했던 도시들은 일부 구역이나마 자전거를 타기 용이했어요.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탄 지역은 경주입니다. 경주는 일단 터미널에 도착했다 하면 자전거부터 빌리는 일이 루틴이 됐죠. 강릉은 경포대 일대 바닷가를 취재할 때 이따금 자전거를 이용했고요. 군산은 공공자전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금강하구둑, 선유도, 구도심 등 두루 여러 지역에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후, 그러고 보니 제주는 우도와 가파도에 갔을 때 외에는 자전거를 탄 적이 거의 없네요. 워낙 큰 땅덩어리의 섬이기도 하고 그와 별개로 올레길은 걷는 자의 길이니 버스를 타지 않으면 주로 걸었습니다.
앙코르와트 취재 때는 뚝뚝이 기사들이 서운해할 만큼 자전거를 탔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씨엠립에서 그렇게 열심히 자전거를 탄 한국인은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바구니가 달린 시티바이크를 타고 시내부터 앙코르와트 사원에 이르는 7~8km의 길을 예사로 달리곤 했습니다. 톤레삽과 가까운 프놈끄롬도 이따금 갔고요.
낙향 후 아쉬웠던 점은 주변에 자전거 탈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농복합단지답게 동네 주변은 온통 논밭과 띄엄띄엄 자리한 공장들인데요, 언뜻 보면 자전거를 탈만한 농로가 있을 법하지만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아마도 농로가 있을법한 곳까지는 4차선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안성-평택을 잇는 도로라 교통량도 만만치 않고요. 자전거 타기에 천변만 한 데가 없는데 최근에서야 알게 된 천은 집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데다 그곳 역시 번화가로 가로막혀 접근이 용이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최근에 지은 아파트인데 언젠가 동생은 나중에 돈이 생기면 그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했죠. 그 아파트 안에는 입주민 전용 실내 수영장도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동생더러 자전거를 마음껏 타기 위해선 그 아파트로 가야겠다 말했습니다. 이건 뭐, 서울 살 적에 했던 말들과 다르지가 않죠. 그때도 한강변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로또 1등 당첨되어도 한강변엔 못살겠지, 했으니까요. 하핫.
그런데 문득,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싶더라고요.
왜냐면 저는 자전거가 없기 때문이죠.
이런... 어쩌겠나요. 오늘도 걸을 수밖에요.
어제 산 책 발견
김훈, 『자전거여행』
소설가이기 앞서 '자전거 레이서'인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기입니다. 김훈 작가의 저서들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죠. 아, 김훈의 문장은 연필을 쥔 그의 손아귀가 아니라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두 발에서 나왔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그처럼 연마된, 강철 같은 문장을 쓸 수 없다는 게 제 결론이었죠.
자전거를 타고 싶을 때, 그러나 탈 수 없을 때『자전거 여행』의 프롤로그를 일부러 찾아 읽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주어로 쓴 글 중 이렇게 유려하고 단단한 글을 이전에 본 적이 없습니다. 프롤로그는 또한 김훈을 읽어본 적 없는 이들에게 아주 훌륭한 '고농축 액기스 김훈소개서'(이런 싸구려 표현 죄송합니다!)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롤로그의 첫 문장은 이러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제가 좋아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그는 또한 제가 아는 한 숲과 갯벌을 가장 잘 묘사하고, 또 그것들을 생의 은유로써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본문을 읽다 보면 그가 두 바퀴로 돌아본 대한민국 산과 바다 곳곳을 저 또한 모두 돌아보고 싶습니다. 겨우 시티바이크나 빌려 타는 저로선 그가 페달을 굴린 흙길, 돌길을 똑같이 자전거로 달려볼 엄두는 내지 못하겠지만요. 그래요, 저는 자전거 레이서를 꿈꾸진 않지만 자전거 레이서가 쓴 자전거 여행기는 동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