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산책 발견
요즘은 아침마다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 결심 이후 결연한 의지로 아침 운동을 실천하는 동생이 아니었다면 저는 여전히 해질 무렵에나 겨우 동네 도서관 언저리를 돌았겠지요. 동생은 제가 늦잠을 자면 기어이 저를 깨워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확실히 함께 걷는 사람이 있으니 몸도 마음도 덜 게을러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해도 동생이 공원 둘레길을 뛰고 있을 때 저는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가 많지만요.
올해는 장마 기간이 이름값하듯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밤 사이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아침이면 뚝 그쳐서 도대체 제게 휴일을 주지 않더군요. 은근히 비를 핑계로 나가지 않고 싶었던 날도 여러 날이었는데 폭풍우가 아닌 다음에야 우비를 챙겨 입고 나서는 동생을 따라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비가 그쳐도 내내 흐린 하늘이었기에 그간은 뙤약볕을 피해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따금 구름 걷힌 푸른 하늘이 드러나면 뜨겁긴 해도 기분이 청량해지더라고요. 땅이며 공기며 온통 축축하다보니 가끔은 기분도 축축해지는 것 같았거든요.
어제는 그만 개똥을 밟았습니다. 공원을 나와 번화가 쪽으로 향하는 인도에서요. 한쪽 발이 똥을 밟고 쭈욱 앞으로 미끄러졌어요. 사람똥인가 싶을 정도로 역겨운 냄새가 불시에 콧속으로 들어왔고 불쾌했어요. 똥을 싼 개가 아니라 그 개를 키우는 인간을 욕했습니다. 개똥을 치워야 할 거 아냐! 개똥을 뭉갠 신발을 애꿎은 길섶 풀에 열심히 문댔어요. 빗물이 고인 움푹 팬 땅에 밑창을 행구기도 하고요. 동네 산책 중에 이렇게 제대로 무른 똥을 밟은 건 처음이었죠. 동생이 허리를 펴고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걸어야 한다고 여러 번 얘기했기 때문에(저는 어깨가 구부정한 편이에요) 자세를 신경 쓰다보면 두 발을 내려다볼 여유가 없습니다.
가끔 누군가에게 위로랍시고 무심하게 건내는 그 말, '똥 밟았다고 생각해!'
그쵸. 살다보면, 또 걷다보면 똥 정도는 밟을 수 있어요. 불쾌하지만 헤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 있어요. 가볍고 우연한 사고, 아니 이벤트라고 해야할까요. 물론 똥 밟은 신발이 고가의 명품 브랜드라면 조금 더 불쾌할 수는 있겠죠. 똥을 밟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대부분은 피해가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는 똥들이 있거든요. 인생, 꽃길만 걸으면 좋겠다지만 꽃길에 개똥이 없으란 법 없죠. 죽다 살아난 이들은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말할 거고요. 주구장창 똥길만 걷다가도 똥밭에 피어난 꽃 한 송이에 감동하고 행복해할 수도 있고요. 나조차도 매일 싸는 게 똥인데 개똥 한번 밟은 일이 뭔 대수겠어요.
대충 묻은 똥을 제거하고 걸어가는데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더라고요. 눈앞이 안보일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비였어요. 다행히 가방에 우산 하나를 챙겼어서 동생과 저는 서로 꼭 붙어 우산을 나눠 쓰고 보폭을 맞췄어요. 동생이 그러더라구요. "다행이야, 빗물에 개똥이 다 씻겨지겠어"
저도 맞장구를 쳤어요. 다른 때 같았으면 신발 젖는다고 찡찡댔을텐데 말이죠. 인생 참....
똥에 대한 근사한 격언이나 속담으로 글을 끝맺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질 않네요.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만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요. 아으...! 어쨌든, 저는 내일도 산책을 나가기 전 화장실에 들르겠죠. 그리고는 또 먹을테고요.
김훈, 『연필로 쓰기』
'똥'에 대해 쓴 작품이 있나 책장을 쭈욱 살피다가 어렵지 않게 발견한 이름이 '김훈'이었습니다. 그의 산문집은 아마도 모두 다 소장하고 있는듯 해요. 저는 어느 책에 똥이 묻, 아니 쓰였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을 발견한 즉시 그의 작품에 똥이 없을리가 없다고 확신했어요. 그리고 그의 산문집을 모조리 꺼내 하나씩 들췄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똥'과 '김훈'을 함께 검색하면 어떤 책, 몇 페이지에 나올지 바로 알 가능성이 높았지만 왠지 제가 일일이 확인하고 싶더군요. 그리고 역시나! 『연필로 쓰기』에서 '밥과 똥' 챕터를 찾았습니다. 똥을 주제로 한 저술이 어디 한 두권이겠냐마는 제 좁은 독서 경험에서 이보다 깊이 있게 똥을 사유한 글은 없었습니다. 김훈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똥을 주어로 쓴 '김훈의 문장'을 어느정도 짐작하시겠지요. 네, 전체는 (오로지 똥으로만) 종과 횡을 아우르고 개체는 (오롯하게 똥으로만) 참담합니다. 김훈하면 떠오르는 모든 단어들이 똥에 가닿아 있습니다. 약육강식, 생로병사, 문명과 야만, 노동, 냄새, 허무, 실존.... 저는 도저히, 그가 연필로 써내려간 문장들을 앞서 전한 개똥을 밟은 일처럼 이곳에 옮길 수가 없습니다. 아아.. '똥'으로 이렇게 진지해지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죠!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642213
* 김훈의 말들이나 문장들이 몇 차례 논란을 일으켰기에 상대에 따라선 김훈을 말하기가 조금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그의 시선과 생각, 문장들을 읽고 좋아해온 저로서는 그 논란들이 전체가 아닌 파편에서 비롯된 것 같아 다소 아쉽긴 합니다. 빤한 말 같아서 삼키고 싶지만 굳이 '쉴드'를 치자면 그는 진실로 물리적인 '힘', 삶을 추동하는 힘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날 이때껏 연필로 글을 써왔고(편집자는 죽을 맛이겠죠) 글을 쓰는 힘은 머리가 아니라 어깨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 힘이 태생적으로, 혹은 사회제도적인 문제로, 혹은 소멸의 과정에서 강하게 추동하지 못할 때 그는 비애를 느낍니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자주 '약자'를 향해 가닿는데 그에게 여성은 생명의 아름다움인 동시에 태생적 약자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따금, 이런 생각의 베이스에서 나온 그의 일부 문장(말)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 시대와 기민한 사람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역시 격동의 한국에서 나고 자라 살아온 아저씨, 아니 이제는 노인이 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