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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혜 Aug 16. 2020

이름이 뭐예요?

오늘 산책 발견 

역대 최장 기간의 장마로 며칠 동안 산책을 하지 못했습니다. 비가 와도 폭우만 아니라면 우산을 쓰고 나갈 법도 한데, 사실 마음이 좀 게을렀어요. 산책 덕분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겨우 바꿨는데 요 며칠 다시 낮과 밤이 바뀌었습니다.  정오 전후로 일어나는 저를 동생이 한심하게 쳐다볼 때마다 '새벽까지 정신적인 노동을 했다'고 핑계를 댑니다. 뭐, 깨어있으면 읽든 쓰든 뭐라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자괴감이랄지, 부끄러움 같은 게 있어요. 정신이 또렷하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어서에요. 반대로 몸을 움직이려면 정신이 깨어있어야겠죠. 맞아요, 요샌 조금 혼미합니다.

내일은 꼭, 폭우에도 꺾이지 않고 의연하게 견디고 성장한 풀, 꽃, 나무들에게 안부를 물어야겠어요. 


엊그제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자신을 별명으로 부르는 친구가 드물었다고요.  정작 본인은 주변 친구들에게 곧잘 별명을 만들어 불렀고 그 별명을 다른 친구들도 이름처럼 즐겨불렀대요. 서로의 관계가 가깝다는 걸 증명하는, 일종의 애칭인거죠.  저와는 알고 지낸지 15년쯤 된 친구인데 저 역시 돌이켜보니 그 친구가 제게도 여러가지 별명을 지어 불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친구 말대로 그 친구에게 이렇다할 별명을 지어 불러준 적이 없던 것 같더라고요. 친구 말로는 저 말고 다른 친구들도 별명이 아닌 자신의 실명을 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대요. 해서 '별명없음'이 혹 친구들이 자신에게 거리감을 느끼는건가, 그래서 별명을 지어주지 않는건가 의아했대요. 저는 손사레를 쳤죠. 제게 그 친구는 '지음'이라 칭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니까요. 왜 별명을 따로 만들어 부르지 않았는지는 저도 몰라요. 그냥 그 친구의 실명이 좋아서였을까요? 친구가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말고 그 친구의 다른 친구들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그 친구와 달리 이름보단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편이에요. '많이'라고 하기엔 관계망이 좁은 편이라서 저를 실명과 다르게 호칭하는 이들은 다섯손가락 안에 들지만요. 가족도 마찬가진데요, 부모님은 저더러 '기둥'이라 부르고 동생은 저더러 '돼릉이'라고 불러요. 동생이 저를 부르는 별명은 그때그때 달라져서 별명에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저도 동생을 부를 때 마찬가지고요. 저는 그래서 저를 별명으로 부르던 그들이 갑자기 실명으로 호칭하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져요. 무슨 심각한 얘기라도 하려는 건가, 내가 뭔 잘못을 했을까 갑자기 긴장도 되고요. ㅎㅎ 


한편 업무 상으로 만난 사람들끼리는 당연히 직함으로 호칭하지만 저의 직함은 다른 이들과 비교할 때 다소 광범위하게 호칭되는 편이에요. 과장님, 팀장님 소린 어디까지나 업무상으로 만난 사람들끼리의 호칭이지만 '작가님'의 경우는 업무 외적인 만남에서도 자주 불리게 되더라고요. 어디에서 만난 사이든 저의 직업을 소개하는 순간 호칭이 '작가님'이 되는 마법...! 저는 사실 지금도 작가라는 직업, 호칭에 대한 저만의 경외심 같은 게 있어서 제 스스로가 작가님으로 호칭되는 게 좀 겸연쩍다고 해야할까요. 글 지어 밥 벌어먹고 살면 장르가 뭐가 됐든 작가인건 사실인데 왜인지 저에게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다소 성역화 된 직업으로 여겨졌었어요. 그 이름의 무게가 마치 대문호에게만 써야 할 것 같은 호칭으로 느껴진달까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텍스트로 '여행작가'라고 하는 건 괜찮은데 음성으로 '작가님' 소릴 들으면 '작가 자질 부족'인 제가 작가 소릴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답니다. 변태같나요?

책을 두 권 쯤 냈을 때였나요, 업무 상으로 알게 되어 저를 '승혜씨'라 부르던 분이 어느 순간부터 '작가님'이라고 호칭을 하시더라고요. 뭔가...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아니라 관계가 멀어진 느낌이어서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친구들에게 별명이 아닌 실명으로 불리는 친구의 심정과 비슷하려나요?


호칭, 참 중요하죠. 익명의 존재가 어떤 관계에서의 존재로 규명되는 수단이니까요. 


나이 먹고는 누가 제게 이름을 물어보는 일이 드물어서, 가끔 이름을 물어보는 이를 만나면 묘하게 설렐 때가 있어요. "이름이 뭐예요?" 

아휴, 이 시는 호칭이나 존재 같은 주제로 너무나 넘치게 쓰여온 탓에 저는 쓰지 말아야지 했는데 도저히 안가져올 수가 없겠네요.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꽃들의 80%는 이름을 몰라요. 제가 아는 꽃 이름은 민들레, 패랭이, 무궁화, 개망초 정도죠. 그런데 모습이 너무 고와서 이름을 반드시 알고 싶은 꽃들은 꽃 이름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요. '모야모'라는 앱인데 꽃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사람들이 직접 댓글을 달아 이름을 알려주는 앱이에요. 다음이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의 앱에서도 꽃 사진을 찍으면 빅데이터를 통해 꽃 이름을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지만 100% 정확하게 맞추지는 못해요. 정답률이 60% 정도? 모야모는 식물원에서 오래 일을 하신 저희 엄마가 알려주신 앱이고 실제로 제가 사용해보니 사용자가 많아 훨씬 정확하고 빠르더라고요. 사람이 직접 답을 달기에 답변 속도가 많이 느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거의 10초도 안되어 답이 달립니다. 또 답변이 복수로 달릴 때도 많고요. 정확성은 거의 100%. 누군가 답을 잘못 달면 다른 누군가가 수정해주죠. 


 

 



어제 산 책 발견

위화, 『내게는 이름이 없다』


비극을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풀어 독자에게 더욱 강렬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작가, 위화의 단편모음집입니다. 표제작인 <내게는 이름이 없다>는 자신의 이름은 물론 다른 별칭으로도 불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고아 라이파의 이야기입니다. 라이파라는 이름도 약방 천선생이 '알려준' 이름이니 실제 그의 부모가 라이파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라이파는 평생 마을 또래들의 놀림감으로 살아왔는데 그들은 라이파에게 "어이!"라고 부릅니다. 라이파 역시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라이파가 이름을 숨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릴 적, 태생이 외로웠던 라이파는 마을을 떠돌던 작은 누렁이 한마리를 집에 데려가 키웁니다. 심지어 마을의 못된 무리들은 라이파더러 '그 개가 니 마누라구나'라며 짖꿎게 놀려대지요. 라이파는 남들이 자신을 부르듯 누렁이에게 '어이'라고 부릅니다. '어이'로 불리는 주인, '어이'로 불리는 반려견은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는데요, 어느날 마을 놈들이 라이파의 개를 잡아먹으려고 수작을 부립니다. 놈들에게 쫒긴 라이파의 개는 라이파의 침대 아래 들어가 나오지 않는데, 놈들의 대장인 쉬아산이 교활한 작전을 피웁니다. 천선생으로부터 '어이'의 이름이 라이파임을 알아내고 라이파를 교묘하게 설득한 것이죠. 


쉬아산이 다가와 어깨를 잡아당기며 나를 불렀다.

"라이파.."

심장이 쿵덕쿵덕 뛰기 시작했다. 쉬아산은 나를 끌고 자기방으로 가며 말했다.

"라이파, 너와 난 오랜 친구잖아...라이파, 개를 불러내봐..."


라이파는 결국 쉬아산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에 마음이 약해져 침대 밑에 있는 개 '어이'를 불러냅니다.

"어이!"


리아파와 동거동락하던 개 '어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라이파는 그 사건 이후 평생 이름이 없는 채로 삽니다. 아니, 살기로 합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308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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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 *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투게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만배우 류이호에게 홀딱 빠졌어요. 투게더(Twogether)는 우리의 국민남동생 이승기와 대만의 국민 첫사랑남 류이호가 동반 출연한 여행 예능물인데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며 나름의 미션을 수행하고 해당 지역의 팬들과 만남을 가지며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둘다 선하게 생긴 미남들인데다 나이도 비슷하고 배우, 가수로 활동한다는 공통점도 있죠. 근데 저는 이 프로그램에서 승기가 보이지 않는 마법... 어우 이호야..... 이호야.... 이호 앓이 한바탕하면서 그가 나온 작품들 하나씩 보고 있는데요, 그중  류이호가 주연으로 나온 <모어 댄 블루>라는 작품이 우리나라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리메이크 한 버전이더라구요. 그 작품에서 여주, 남주의 설정이 각각 다른 이유로 가족을 잃고 청소년기부터 서로 의지해가면서 산다는 얘길 기본으로 하는데요. 이때 여주는 자신의 이름과 남주의 이름을 새로 짓습니다. 케이와 크림이라는 이름 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의미가 없어보입니다만, 전체 서사 측면에서 보면 꽤 의미 있는 장면입니다. 가족을 잃고 삶의 의미를 상실했던 그들이었지만 서로의 이름을 새롭게 부여한 순간부터 '가족' 이상의 특별한 관계로 다시 묶였으니까요. 

글과 연결을 지어보려고 구구절절 써봤는데, 그냥 하고 싶은 말은 그거에요. 류이호 사랑한다...! 내가 중국어를 배운다면 그건 너 때문이야. 


투게더 보다가 발캡쳐 좀 해봤어요. 이호야 웃는 건 넌데 왜 내 잇몸이 마르냐. 



*사족 2*


친구가 선물해준 라벤더에요. 씨앗이 6~7개쯤 들어있었는데 단 한 개의 씨앗만 발아에 성공했어요. 아직 이름은 짓기 전인데... 이름을 뭘로 할지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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