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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리뷰

소리와 색의 막강한 에너지를 온 몸으로 느껴라.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미친 영화가 탄생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적 체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준다. 소리와 색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사운드 시설이 좋은 관에서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엔터테이닝 무비는 아니다. 누군가는 '이걸 왜 추천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술 영화에 가깝다. 오락물을 찾는 관객에겐 적합하지 않으니 관람에 참고하길 바란다.

이 영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아무것도 없는 화면 위로 기이한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좋은 소리는 아니다.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운을 풍기는 소리가 한동안 흐른 뒤 화면이 전환된다. 기대했던(?) 무서운 장면이 아닌 초롯빛과 햇살 가득한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그리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일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한 폭의 인상파 작품을 옮긴 듯한 장면이다. 그럼 불쾌한 사운드는 대체 뭐였지?


카메라는 이 가족의 일상을 한참 동안 훑는다. 평온한 가정의 모습이다. 아빠는 출근하고 엄마는 정원을 가꾸고 아이들은 사이 좋게 뛰어논다. 별 탈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일상 위로 불쾌한 사운드가 공기처럼 흐른다.

엄마 헤트비히는 정원 가꾸기에 열심이다. 온갖 꽃으로 가득한 정원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담 너머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다. 불쾌한 소리의 정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이 소리 때문에 구성원들은 매일같이 밤잠을 설친다. 담장 너머의 상황은 독일 장교인 아빠 루돌프 회스 외에는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심지어 관객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머리카락을 쭈뼛 세우는 공포를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 유대인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소리와 붉은 화면, 굴뚝의 연기로 전달한다.


영화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인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사는 '꿈의 왕국'의 일상을 통해 나치즘의 잔학성을 알린다. 정교하게 연출된 소리와 색으로 역사의 공포를 표현한다. 폭력의 사운드는 루돌프 가정의 화목한 일상과의 괴리감 때문에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제목인 'The Zone of Interts'는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주요 군사조직이 관리하던 아우슈비츠 주변 지역을 뜻한다. 폴란드 인구를 제거한 농경지에서 수용소 수감자를 재교육하고 농산물 판매로 재정적 이득을 쌓기 위해 생긴 공간이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 군상인가!

보이지 않는 공포는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일상의 균열을 만들고 영혼을 파괴시킨다. 나치즘 하에선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꿈을 이뤄도, 지배자 신분이어도 매한가지다. 누구에도 안온한 일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루돌프는 가정적인 아버지이지만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헤트비히는 자택을 꿈꿔온 삶이라 말한다. 다른 이를 무자비하게 불태우고 짓밟으며 쌓아 올린 삶을 꿈, 행복이라고 말하는 루돌프 가족들의 모습에서 악이 일상이 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기존의 홀로코스트 영화들과는 확실한 차별점이 있다. 잔혹한 장면 하나 없이 극강의 불쾌함을 전하는 미친 연출력으로 인간의 잔혹성을 이야기한다. 12세 이상 관람 가능한 작품인데, 개인적으론 등급을 올려야 할 것 같다. 최소 15세 이상으로...

그렇다고 비극만 있는 건 아니다. 네거티브 열화상 시퀀스를 장식하는 폴란드인 알렉산드라는 유대인들을 위해 남겨둔 사과와 '햇살'이라는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으로 희망을 전한다.


연출을 맡은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제9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과 음향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사운드의 힘이 큰' 영화다. 중간중간 화면을 꽉 메우는 검정, 흰색, 붉은색은 나치와 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색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또 하나의 코드다.


개인적으론 엔딩 크레디트에 흐르는 음악이 굉장히 불쾌했다. 사운드는 나를 극장 밖으로 내몰았다. 도저히 참고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헛구역질을 하는 루돌프의 모습을 떠올리니 더 참기 힘들었다. 역겹고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조금이나마 체감하게 만드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리한 영화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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